[마음의 영속] 예술가는 침묵하지 않는다.
12월 3일 밤, 불안을 견디며 하루하루 살아나가던 일상에 금이 갔다. 철렁 내려앉은 마음은 진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당장 실시간으로 뉴스를 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새벽 내내 화면 너머 사람들을 보며 마음을 졸이다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세상이 요동치고 있다는 감각은 내 지독한 우울감을 무디게 만들었다. 그래도 일상을 살아내야 하지 않겠나. 아침이 찾아왔고 하루를 시작해야 됐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무력감에 빠지지 않도록 애를 써야만 했다.
주위에는 이번 사태에 무감각한 사람들이 꽤 많았다. 나와는 상관없다는 태도로 외면하는 친구들이 기이했다. 본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무너지는 모습을 직관하는 와중에도 이렇게 태평할 수 있을까. 우리가, 네가, 내가 예술을 하는 사람들인데, 이게 맞니.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허망함을 삼켰다. 우리가 이렇게 있어도 되는 게 맞을까. 예술의 본질인 표현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시대에 적어도 우리만큼은 저항해야 하지 않겠나.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사회적인 문제에 아무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술을 왜 하고 있을까.
근래는 쓸모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반복되는 상실과 그에 따른 무기력으로 반쯤 얼이 빠진 상태로 삶을 겨우 지속하고 있었다. 한순간에 깨지고 있는 세상을 보고 있자니 안 그래도 지끈거리는 머리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넘치는 생각을 가만히 삼키고 있다가는 큰일이 날 것만 같아 무거운 몸을 이끌고 홀로 집회에 나갔다. 어디 하나 쓸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뭐라도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어쩌면 이 세상이, 모두가, 그리고 내가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얻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역에서 나와 정처 없이 휩쓸리다 정신을 차려보니 앞에는 초록색 지붕이 보였고 애처롭게 소리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형형색색의 수많은 깃발과 사람들 한가운데 내가 서 있었다. 대학생들 사이에, 고등학생들 사이에, 응원봉을 들고 있는 아이돌 팬들 사이에,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어르신들 사이에, 아이와 함께 나온 가족들 사이에.
왜 사람들은 안 될 것 같은 싸움을 하는가, 희망이 있다는 단단한 믿음을 가질까. 절망하지 않고 본인을 내던지는 사람들을 보며 속에서 무언가 타올랐다. 삶이, 세상이 선명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이 폭력적이고 절망적인 세계에서 꿈꾸는 희망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구나. 세상을 향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 얼마나 끈질기고 독할 수 있는지를 상기한다.
세상의 절망과 나의 절망은 결코 따로 가지 않는다.
그러니 희망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무력감에서 빠져나와 목소리를 내야 한다. 침묵해서는 안 된다. 절대 냉소주의와 이기주의에 빠지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세상의 정의와 나의 정의를 믿을 것이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함께 조금이나마 따듯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절망 속에서도 열망을 찾을 수 있도록,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것이다.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달고 다녔던 날들도, 멋모르고 친구들과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16살의 어렸던 날도, 공장에서 일어난, 바다에서 일어난, 노동 현장에서의 억울한 죽음을 보고 분개했던 날도, 관련 기업의 물건을 사지 않았던 나날들도, 아픈 몸을 이끌고 집회에 나가 사람들과 함께 소리쳤던 어제도, 대단한 목소리를 낼 수는 없지만 매 순간 나에게 주어진 작은 몫을 해나갔던 날들을 기억한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나가면 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 된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 여기에 희망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