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과 함께 에디터 활동도 끝에 접어들고 있다. 일주일에 글 하나는 거뜬하게 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만큼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약 4개월 동안 쓴 글 중 만족스러운 것이 별로 없다. 어떤 글은 차마 읽지도 못할 정도로 부끄럽다. 활동을 마무리 짓기 전 아무래도 초심을 되돌아봐야겠다.
나는 왜 글을 쓰려고 했나?
잘 살고 싶어서 글을 썼다. 혼란한 삶이 조금이라도 명료해지기를 바라고, 지긋지긋한 내가 더 나아지기를 바라서 일기를 썼다. 허공을 응시하며 골똘하는 것만으로는 생각을 전개하는 게 어려운 사람이었으므로 키보드를 치든, 펜으로 적든 손을 써서 생각해야만 했다. 그래서 일기를 쓰며 궁리했다. 문제를 짚어보고, 문제에 고통받는 나를 달래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구상하고. 그러다가 영혼을 파고드는 문장을 추출해내면 작은 희열과 해방감을 느꼈다. 그 문장은 내가 발견한 금싸라기, 보물, 생각만 해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뒷배가 되었다.
그렇게 나에게서 나온 문장들을 한 번 더 정비해 남들에게 보일 글로 벼리는 과정도 즐거웠다.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정제되고 단정한 언어로 빚어내는 것이 좋았다. 내 손으로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은 늘 재미있었다. 동시에 꼭 보여주고 싶었다. 때로는 내가 이렇게 생겨 먹은 사람인데 어쩔 거냐고 선언하고 싶었고, 때로는 나에게 이렇게 소중하고 든든한 뒷배가 있다고 자랑하고 싶었다. 그런 식으로 나의 가치를 나 스스로와 남들에게 납득시키고 싶었다.
그런데 지난 3개월 동안 내가 원래 글을 쓰려고 했던 이유에 걸맞은 글을 거의 쓰지 못했다. 아쉬울 따름이다. 금덩이 같은 문장과 생각을 캐내려면 땅굴을 파야 하는데, 여기저기 모종삽으로 조금씩 들쑤시고 다니기 바빴다. 굴 하나만 내리 팠다가 금덩이가 안 나오면 어쩌지, 혹은 다른 데서 더 큰 금덩이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하느라. 연초부터 조급해 하지 말자고 다독였지만 여전히 불안에 쫓겼던 것이다.
이제는 불안해하지 않고 땅굴을 팔 수 있겠느냐 묻는다면, 생각해 보니 하나만 무모하게 파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하나에 몰두하는 사람도 적지 않게 보이고, 이런 경험이 나중에 사는 데 정신적으로나 실용적으로나 은근히 도움도 될 것 같아서. 그래서 머릿속을 스치는 주제와 생각을 잘 파보고 싶다. 한 삽의 사심 말고 세 삽 가득히 진심을 파서, 어제보다 더 뚜렷하게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씀으로써 글을 쓰려고 했던 이유를 넉넉히 충족시키고 싶다. 부디 그럴 수 있기를 미래의 나에게 빈다. 꼭 차분하고 담대하게 글을 쓰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