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가 파도에 지치면 어떻게 하죠
시간에 잡아 먹히는 기분이 들어요
마음의 유속을 따라서
안희연 시인의 신간 '당근밭에서'를 이제야 읽었다. 읽고 나니까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 시인이 보는 세상이 내가 보는 세상과 같은 곳이라는 것에 놀라게 된다. 그의 세상은 아름다운데 내 세상은 왜 이런가 하는 거지. 때때로 너무 지독해서 한껏 찡그린 내 얼굴에 도리어 내가 놀라고 마는데.
시를 필사할 때마다 단호하게 온점을 콱 찍어놓고선 아, 시에는 온점이 없지 하고 깊이 남아버린 온점 앞에서 머쓱한 얼굴이 된다. 끝이 어려워 매번 말줄임표 같은 마음으로 살면서 온점 찍기는 망설이지 않는 손끝이 우스워진다.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좋아하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 어느 주말에는 '귀에 맞으신다면'이라는 일본 드라마를 봤다. 좋아하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 마음이 죽어버린다는 대사가 나온다. 주인공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체인점의 음식들을 말하기 위해서 팟캐스트 채널을 연다. 그리고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과 그 음식에 엮인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자신에게 떠넘겨진 후배의 PPT를 잘 발표해보기 위해 시작했던 팟캐스트라는 수단은 무언가 생각날 때 가장 먼저 세상과 소통하는 연결고리가 된다. 좋아하는 프랜차이즈 음식을 앞에 둔 미소노의 얼굴은 반짝 반짝 빛이 난다.
자신이 왜 그것을 좋아하게 됐는지, 무엇이 그렇게도 좋은지 설명하는 목소리는 벅차서 가끔 지나치게 커지기도 한다. 귀에 맞으신다면은 점점 구독자를 늘리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사람들이 알아볼 만큼 큰 계정이 됐다.
얼마 전에는 빠더너스 채널에서 파리 브이로그를 봤다. 10년 전엔 어쩌다 간 프랑스였지만, 이번엔 자기가 사랑한 영화의 배경을 따라 떠났다고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 티켓을 끊고 카메라를 드는 기분을 느껴본 적 있어서 덩달아 설레기 시작했다.
필름이야 이제는 인터넷으로도 살 수 있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며 프랑스로 향하는 마음, 사뭇 긴장된 얼굴로 영화사와 미팅하는 모습들이 부러웠다.
나는 종종 알고리즘 안에서 어제까지만 해도 조회수 두 자릿수 대였던 영상이나 글이 순식간에 몇 만짜리 뷰의 영향력 높은 영상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나도 모르게 '운이 좋네' 라고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따끔해진다. 내 꾸준함은 보답받지 못하는 것 같아 작아지는 못난 마음이 부끄러워서 웃지 못한다. 즐거워 보이는 얼굴이 밉게 느껴져 축하의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파편화된 마음을 정리하다가 어떤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질투 중이다. 빛나는 사람은 사람을 부른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기분 좋은 열기로 가득 채워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낸다. 내 주변 사람들은 빈손으로 돌아가고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평생 내가 어떤 얼굴로 살아가는지 모르겠지만 기왕이면 좋아하는 것 앞에서 밝아지는 얼굴이었으면 좋겠다. 신나는 얼굴이었으면 좋겠다. 주변을 돌아보며 떠밀리느라 대충 웃는 척 지친 얼굴 말고 진짜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는 일을 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요즘은 조금 간절해진다.
말줄임표 같은 마음 말고 온점 같이 확실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마음이 죽어버리기 전에...마음의 유속이 눈에 띄게 느려지기 전에...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