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가 느끼는 글의 매혹

by 아트인사이트


올해 두 번이나 핸드폰을 고치러 수리점에 갔다. 제법 크게 고장이 나서 핸드폰이 작동하지 않게 되는 바람에 그 길로 수리점으로 달려갔다. 그때 새 핸드폰을 구매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비축하듯 쌓아둔 메모에 있었다. 평소 공부를 하다가도,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도, 책을 읽다가도, 친구와 함께 있다가도 메모장을 열어 갑자기 떠오르는 영감이나 잊고 싶지 않은 말을 적고는 했다. 어떤 메모에는 세 문단이 넘는 글이 쓰여 있기도 하지만, 어떤 메모에는 앞뒤 문맥도 알 수 없는 글이 쓰여 있기도 하다. 그런 흔적 같은 글들이 그렇게 귀중한 이유는 그 글을 가장 사랑하는 독자가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런 글이 마음에 와닿는 이유는 나 자신을 위해 큐레이팅하고 자신에게 바치는 글이기 때문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근래 이렇게 자신이 쓴 글에 위로받는 건 나 자신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느끼고 있다. 주변에 어떤 작품을 보고 느끼는 깊고 긴 감상과 특정 사안이나 일상에 관한 단상을 글로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자기표현의 일환인 것은 확실하지만, 시간을 들여 누군가 읽을지 읽지 않을지도 모르는 글을 쓴다는 건 그 동기가 외적인 요인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면 우리는 해방감뿐만 아니라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 누군가와 연결되었을 때의 기쁨 또한 느낄 수 있다. 분명 요즘 젊은 세대가 글쓰기에 부쩍 관심을 갖는 데는 글쓰기의 이런 기능이 한몫할 것이다.


사실 젊은 세대에게 글쓰기는 제 생각을 깨끗한 거울처럼 바라볼 수 있는 수단보다는 글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수단에 가깝다. 사회에 나가면 자신의 주관을 죽이거나 숨겨야 하는 순간도 있는데, 그런 일이 반복되면 자기 자신이 원래 어떤 사람인지 서서히 잊게 된다. 페르소나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며 자기 모습을 결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닌 환경이라는 진실을 마주할 때 우리는 무력함을 느낀다. 평소의 자신은 자기 생각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자신을 고립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누군가 오글거린다고, 현학적이라고, 꾸며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떨치고 진지하게 글을 쓰는 데는 그만큼 진지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언어를 통해 흐려져 가는 자신을 다시 그려내고 누군가와 같은 생각으로 연결되고 싶다는 명징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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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의 글쓰기가 자신을 브랜딩하고 자기 PR을 하는 데만 목적을 두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조금 서글픈 일이다. ‘텍스트힙’ 열풍이 꺼진 후에도 트렌드의 주역이었던 MZ 세대가 이를 독서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재미로까지 이어가고 있다는 게 우리의 진심을 증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름의 진지하고 긴 내용과 무게 잡힌 톤이 어색하게 느껴질지라도 ‘컨셉’이나 ‘척’으로만 보면 곤란하다. 비싼 선물보다 길게 쓴 손편지에서 큰 의미를 발견하고 수고롭게 손바닥만 한 핸드폰으로 장문의 글을 쓰는 일의 중심에는 ‘마음’이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마음만 전해지면 된다고 해도 글로 전하는 것만큼 뚜렷한 연결의 징표는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가시적인 연대와 애정, 위로로 만들어주는 것이 활자다. 그런 글쓰기를 하고 싶고 하는 한 사람으로서 글을 마치기 전, 글을 쓰는 모두에게 글쓰기가 자신에게 분명한 위로이기를 바라며 직접 쓴 미완성 시를 바친다.


입을 열고 햇빛을 들여

그러면 혀끝에서

작열하며 녹아 없어질 거야


짭짤한 여운이 입천장을 어루만지고

오늘 하루는 무로 돌아간 빛들을

뱃속으로 조용히 위로할 거야


그걸 알고 있니

생동하는 몸엔

곰팡이가 피지 않아

-2025년 6월 25일, 메모장에 쓴 짧은 시


오직 한 문장을, 한 줄의 진심을 전하고 싶어서 긴 글을 쓴다. 남에게 내보이는 글을 쓰는 것은 언제나 버겁고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글쓰기는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있는 우리와 단단한 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오늘도 이 감각을 느끼고 싶어 멈출 수 없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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