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에서 얻은 것

by 아트인사이트


아침해가 전투포의 불빛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한 지역의 사계절을 연이어 볼 수 있던 것이 언제였는지 아득하다. 근 몇 년간, 날씨가 극단으로 치닫을 때쯤이면 항상 이사를 했으니까. 달팽이같은 생활이라고 농담 섞인 푸념을 가끔 하는데, 사실 한곳에 가만히 못 있는 내 유난 탓도 있다. 처박혀 있는 걸 좋아하면서도 지루함을 못 견디는 모순적인 성정 때문에 틈만 나면 여기저기 쏘다녔다. 다니는 동안 묵은 빨래가 마를 때쯤 또 다시 짐을 싸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결국 지난 겨울엔 지구 반대편까지 가지 않았던가. 반 년 가량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들어온 건 겨우 이번 달의 일이다.


솔직히는, 이 정도의 기간은 한국에서도 금세 지나가는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눈에 띄는 변화가 있기도 힘든 시간. 실제로 그간의 생활을 돌아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야, 정도의 감상이었다. 해외 생활이라고 하면 으레 기대하는 내적인 성장이나 새로운 발견 같은 것은 단번에 꼽아내기 어려웠다. 따지자면 '경험'보단 '체험'에 가깝지 않을까. 1월과 5월이 별반 다르지 않은 곳에서 지내서인지, 그동안의 시간이 현실감 없이 뚝 떼어내진 것도 같았다.


하지만 의외로 민감하게 반응한 건 내 신체였다. 너 많이 그을렸네, 주근깨도 생기고. 빠듯한 식비 때문에 감자 튀김 따위를 자주 먹어댔더니 살이 약간 붙었다는 소리도 들었다. 귀국 후 한동안은 붕 뜬 것처럼 멍한 기분으로 지내다가, 모든 게 꿈은 아니었구나 싶은 것도 발목에 튀는 빗물 때문이었다. 그곳에선 좀처럼 비를 보기 힘들었다. 수건으로 물기를 훔쳐내지 않아도 곧 온몸이 바싹 말라버리던 서부의 햇살은 습기와 함께 눅눅하게 달라붙는 한국의 열기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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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달라진 것을 꼽자면, 안 그래도 대범했던 거리감각이 더욱 대범해졌다는 것? 넓고 낮은 건물이 띄엄띄엄 서 있는 그곳에서 도보 15분 거리의 패스트푸드점은 코앞이라고 봐야 했다. 내 발로 나서지 않으면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책임의 무게감 속에서 걷고 또 걸었다. 생활 구석구석을 스스로 운영하는 경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난도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가령 운전을 할 수 없는 나에게 가장 가까운 식료품 마트는 버스로 편도 30분이 조금 넘는 거리에 있었다. 양손 가득 장바구니를 든 채 버스를 타고 있으면 여러 감상이 들었다. 수고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지금의 느린 템포가 그리워질 것임을 예감했다. 겨우 달걀 몇 개, 생수 몇 통 따위를 사려고 하루를 쓸 수 있을 만큼 자유로운 날이 앞으로 몇이나 될까 싶었으니까.


그중에서도 압권은 달리고 달려도 비슷한 풍경이 이어지던 고속도로 혹은 철도에서 하루 대부분을 보낼 때였다. 여기도 선인장, 저기도 선인장인 길 위에서는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체감하기 어려웠다. 단순히 목적지로 향하는 일에 수 시간, 십수 시간을 쓰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곳. 시간의 밀도가 훨씬 성긴 이곳의 도로를 달릴 때면 또 다시 예전의 생활에 위화감을 느꼈다. 모든 것이 손에 바로 닿을 듯한, 쉽게 잠들지 않던 도시... 매사가 지척인 만큼, 치열하게 압축한 일과로 매일을 채워야 하던 한국의 밀도가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지금의 느슨함이 이방인으로서의 특권인지, 정말로 절대적인 비교 우위인 건지를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도착지에 가까워지곤 했다.


고장난 거리 감각과 함께 삶에 대한 감각도 덩달아 가뿐해졌다. 떠나면서 챙겨온 중간 크기의 캐리어 두 개, 백팩 하나, 캔버스 백 하나. 어디에 있든 이것들 이상으로 무언가 필요한 적이 없었다. 내 삶의 부피를 두 눈으로 확인하는 일은 기묘했다. 조금씩 사모은 자질구레한 살림들을 제외하면, 겨우 그 정도의 짐만으로 나라는 존재가 요약되었다. 물론 그 안에서도 위계는 존재했다. 매일 쓰는 필수품들, 적당히 필요하고 적당히 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들, 그렇게 필요하지는 않지만 도저히 내다버릴 수 없어 지고 가는 것들. 무엇을 취하고 버릴 것인지를 생각하며 그 순서를 매기다 보면 스스로의 최저방어선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지구 어디에 있든 이 정도의 윤택함과 정교함 그리고 약간의 사랑은 나에게 필요한 것이겠구나, 그리고 이 이상의 것들은 어디까지나 덤일 뿐이구나. 이 덤들에 집착하며 고통스러워 하는 것만큼 미련한 일은 없겠구나.


다시 돌아온 지금은 또 다시 메인 트랙에 올라야 한다는 조급증과 불안함이 습관처럼 스물스물 몰려오지만, 설령 트랙을 벗어나게 되더라도 예전만큼 큰 유감을 느끼지는 않을 것 같다. 숱한 포기와 버림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그 최소한의 것들만 지켜낸다면 내 생활에 큰 차이는 없으리라는 확신을 체득했으니까. 높이 올라가고 싶다는 열망은 애초부터 없었고, 시민적 삶을 영위하기 위한 노력의 종류 역시 크게 가리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마땅한 편지지가 없어서 노트를 찢어 쓰고, 버스비가 부담스러워서 4-50분 거리를 걸어다니더라도, 아침해가 전투포의 불빛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만으로 나는 충분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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