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밴드와 텍스트힙

by 아트인사이트


애인과 양재천을 거닐다, 칸트 동상 뒷좌석에 잠시 앉았다(정확히는 왼쪽 대각선이었다). 제 목줄을 끌고 가는 강아지들과 전깃줄에 올라가 끌어올 것을 모색하는 비둘기를 번갈아 구경하던 중, 옆에서 화들짝하는 소리가 들렸다. 비둘기 녀석이라도 날아들었나 싶었는데, 생뚱맞은 소리를 하는 것이다. 자기가 아는 사람이란다. 그럼 가서 인사하면 되는 걸 웬 호들갑인가 싶었는데, 자신이 열광했던 밴드의 보컬이란다. 말하면서도 그는 좀체 시선을 옮기지 못하였다.


확실해? 물어보니, 그는 8할 정도 확신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신을 확인해 봐, 멀찍이서도 보이는 그의 오른팔을 가리키며 말했더니, 잠시 후 인스타그램에 기재된 사진 하나를 보여주었다. 백분 환한 낯꽃으로. 인사라도 해, 사인이라도 받아, 아 종이랑 펜이 없네, 하필 오늘 두고 왔네, 툭툭 말을 던져도 그는 어쩔 줄 몰랐다. 당혹감에 짙게 배어있는 미소가 낯설면서도 여간 보기 좋았다.


하천 부근에서 잠시 멈춰 사진을 찍고 있는 그를 우리는 쫄래쫄래 따라갔다. 애인은 답지 않게 얼굴이 빨개지고 말이 빨라졌다. 그가 그 밴드를 좋아했단 사실을 막연히 알고 있기는 하였다만, 막상 그 광경을 목격하니 묘함이 일렁였다. 나 역시 요전에 그의 추천으로 그 밴드의 음악을 몇 곡 들어보았지만, 오래지 않아 그쳤다. 분명 좋은 노래였고, 제법 취향에도 맞았지만, 그들을 좋아할 마땅한 추억이 내겐 없었다.


그러나 애인은 달랐다. 그는 소규모 공연장에서 하는 공연도 하나하나 따라다닐 정도로 그 밴드를 열렬히 좋아하였다. 영화 용어를 명함으로 내세운 그 밴드는 신에서는 나름 유명하나 절대다수에게는 닿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알음알음 알 수는 있어도, 명확히 인지하는 사람의 수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는 사견이 아니라, 청취자 수만으로도 만만히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이윽고 그와 맞닿았을 때, 애인은 ‘혹시 누구 씨 아니세요?’라고 먼저 그에게 수줍은 대화를 건넸다. 놀라움은 그다음이었다. 그가 반사적으로 애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어 아무개님!’하고서 말이다. 그러고 그들은 별안간 얘기를 주고받았다. 멀찍이서 들은 바로는, 그는 잡지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사진사와 동행하고 있었고, 다음날 공연이 계획되어 있었고, 또 조만간 앨범이 나올 예정이었다. 생소했다. 인디 판에 머무는 사람들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내겐 그랬다. 밴드의 보컬이 팬의 이름을 알고 있는 장면이 신선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새삼 그가 홍대병을 앓았다는 사실은 환기했다. 물론 그것이 특별한 일이지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오늘날 대다수가 홍대병을 앓고 있다. 그 속성을 꼭 음악에만 국한하지 않고 취미의 영역으로 확장한다면, 누구나 쉽게 진단할 수 있을 것이다. 힙스터라고나 할까. 나 역시 홍대병을 자가 진단해 보았는데, 그 결과 ‘텍스트힙’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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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달구어진 ‘텍스트힙’은 올해도 여전하다. 식상해진 감이 없잖아 있지만, 화력이 식진 않은 모양이다. 사실 처음 그 용어를 접했을 때는 심히 못마땅했다. 말도 말인데, 현상이 아니꼬웠다. 책 한두 권을 깔짝 읽고서 자신이 독서인구인마냥 칭하는 모습에 달가운 시선을 보내기는 어려웠다.


나에게 텍스트는 항상 힙했다. 가타부타 설명하는 것보다, 국어국문과 재학증명서 정도면 그 증거가 될까. 혹은 생활기록부에 적힌 작가들과 그들을 만났던 시기의 나를 지켜본 친구들이라면 그 증인이 될까. 명백한 홍대병이었다. 그 증상에는 자신이 즐기는 무언가를 타인이 알아줄 때 발병하는 선민의식도 있지만, 그보다는 몰랐으면 하는 위기의식이도 있다. 양자를 갈팡질팡하는 어떤 이기심이 내게는 확실히 두드러졌던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유행이 금방 식을 것이라며 혀를 끌끌 찬다. 그러나 그다지 우려되는 부분은 아니다. 이제는 이런 관행이 반갑다. 잠깐이나마 출판계가 살아나고, 독서 인구가 유입되는 것만큼 흔연한 일이 있을까. 냄비근성이니 뭐니 해도, 그 냄비를 계속 쓰는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 강풍이 지나간 후에도 뿌리 깊은 나무는 그 자리 그대로이듯 말이다. 유행 아닌 취미가 어디 있겠냐마는, 단 한 가지 명징한 사실은, 독서만큼 유구한 시간 동안 호들갑을 목도한 취미는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홍대병이 감기가 되어버린 시대이다. 세상엔 즐길 거리가 다양하다. 그러니 살아가면서 홍대병을 앓는 일은 그리 낯설지 않다. 오히려 그러지 않는다면 이상할 따름이다. 또 평생토록 하나의 홍대병을 겪지도 않는다. 마치 더 강력하고도 새로운 바이러스가 변이되는 것처럼, 우리의 관심사도 옮겨간다. 그럼에도 냄비 하나 쓸 만큼의 시간 동안 그 대상을 애호한다면, 그 사랑은 충분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그 바이러스는 완치되지 않고 영원히 잠복할 테니까. 또 그런 상황에 가끔은, 감복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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