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앞에선 모두가 속수무책이었다

by 아트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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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에세이로 어떤 작별과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글을 쓰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늘 조금씩 버텨주셨기 때문에 이달 말에 있는 생신을 함께 보낼 거라 생각했고, 그렇게 추석까지, 어쩌면 다음 새해도 기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여름, 나이를 먹지 않는 어떤 생일을 하나 더 보내게 되었다.


장례식장은 두 곳을 두고 고민하다가 할머니가 오래 지낸 동네와 가까운 곳으로 결정했다. 왕래가 있던 친척들이 쉽게 올 수 있는 곳이기도 한데, 그러한 연유로 오랜 시간에 걸쳐 가족의 입원부터 누군가의 문병과 장례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번에 또 다른 기억이 적립되었다. 몇 년 전까지는 커다란 벚꽃 나무가 예쁘다 생각했는데.


장례의 시작은 할머니의 시신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회사에서 연락을 받고 집에 가서 필요한 걸 챙겨서 빈소로 가서 할머니를 기다렸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마지막 만남이었다. 연락을 받고 내려가자 하얀 천을 덮은 할머니가 있었다.


돌아가신 분을 보는 게 오래간만이었는데, 살아있지 않은 순간을 보는 건 힘든 일이었다. 똑같이 눈을 감고 누워있는 것 같은데 느낌이 왜 이렇게나 다른 걸까. 영안실에 시신을 안치하는 걸 보고 돌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등 뒤로 영안실의 철제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정말로 이별이었다.


3일장은 누굴 떠나보내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어른이 되고 나니 장례식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조문객이 없는 오전에는 한가하다고 생각했는데 점심부터 손님이 들고 저녁부터는 눈코 뜰 새 없었다. 밤이 깊으면 집에 가서 잠깐 눈 붙이고 씻고 일어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발인 때까지만 해도 입으로는 피곤하다고 내뱉어도 정신을 붙잡고 있었는데 장지까지 다녀오니 피곤이 쏟아져내렸다. 속수무책이었다.


사람이 없는 장례 2일차 낮, 어려서부터 교류가 많았던 친척 어르신이 오셨다. 이제 남은 어른이 본인 하나뿐이라는 말을 하셨다. 저녁에는 회사 분들이 퇴근하고 찾아오셨다. 이제 고인의 연세를 보면 본인의 부모님 나이와 비교하게 된다는 말을 들었다.


장례를 겪을 때면 사람이 떠나는 견디기 힘든 무게를 버거워했는데 이젠 그것보다 더 복합적인 일이 되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든가 내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고 나만 남는다든가. 아직은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의 예고였다.


집안 분위기마다 성향마다 종교마다 다를 텐데 우리는 삼우제를 지냈다. 장례식부터 매일 하루씩 이별하는 것 같아서, 49재가 남았지만 삼우제 때 할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한 것 같았다. 그런데 다 같이 모여 생신을 챙기니 아직 떠나지 않은 것 같았다. 영정 사진 대신 살아계실 적 찍은 어느 날의 사진을 스크린으로 켜놓고 저게 언제였지? 뭐하고 계셨더라? 하는 얘기를 나누었다.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데 앞으로 몇 번을 더 해야 한다. 견딜 수 있을 만큼 가능한 천천히, 가능한 적은 수의 작별만.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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