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20살 이후부터 거주하기 시작한 서울에 주기적으로 오셔서 놀다 가신다. 내가 대학생 혹은 대학원생이었을 때는 내가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엄마가 직장에 다니시느라 서로 잘 만나지 못했던 반면, 이제 내가 직장인이 되고 나니 나는 여유가 없어졌지만 최근에 은퇴한 엄마는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많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도 엄마가 서울에 오실 때면 주말을 이용하여 같이 단기 서울 여행을 다니듯 같이 놀러다니는데, 그때마다 주도면밀한 계획형인 나는 이번 10월 여행에서도 어디로 갈지 계획을 세부적으로 세워서 엄마와 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서울에 산 지도 10년 가까이 된 주거 경험이 있는 나는 서울 여행 코스에 대한 (다분히 주관적인) 나만의 데이터베이스가 잘 구축되어 있다고 스스로 여겨왔다. 이는 엄마가 서울 여행 코스에 대해 주는 피드백인 '만족(하지만 빡셈)'에 근거하는 것이지만, 왜인지 모르게 이번 10월의 여행에는 뭔가 다른 변주와 이탈을 가하고 싶다는 마음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사실 '서울 여행 코스'라고 해봐야 이름이 거창하지 여행의 코스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경치 좋은 곳을 걷고, 그리고 공연을 보는 코스로 구성된, 그래서 이제 어느 정도 레퍼토리가 있는 다소 '뻔한' 여행 코스로 구축된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 공연을 보고 경치 좋은 곳을 가는 건 이미 정해졌으므로, 먹게 될 맛있는 음식 카테고리에 변주를 주고 싶었다. 음식에 변주를 가하고자 결심하게 된 것은 뜬금없게도 최근 들어 자주 가게 된 단골 디저트 가게의 사장님이 하신 말씀에 기인한 것이었다.
사실 엄마랑 서울 어딘가를 같이 가려면, 내 선에서 컨펌이 될지 말지를 먼저 경험해보고 난 이후에 엄마와 여행을 같이 가는 루트가 안정적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평화롭고 원활한 여행의 당락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디저트 가게는 우연히 알게 된 것도 모자라, 왜인지 맛집일 거라는 직감이 들어 나의 자체 사전 컨펌 시스템도 거치지 않은 채 엄마와 함께 방문을 감행했던 곳이다.
엄마와 맛집을 갔을 때 엄마가 그 음식이 입에 맞는지를 확인하는 기준은 사실 간단하다. 그건 바로 그릇이 닳을 정도로 싹싹 긁어 드실 때다. 그럼 내 컨펌 없이 감행한 도전의 결과는 어떠했을까? 도전의 감행은 꽤 성공적이었다. 그 디저트 가게에 들어가 예약한 망고 조각 케이크와 체리 초코 타르트를 한 입 베어먹자마자 엄마와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기 때문이다.
그때 이후로 나는 보문동의 그 디저트 가게를 디저트 메뉴가 바뀔 때마다 방문하는 단골손님이 되었다. 이 말의 의미는 그만큼 자주 방문했다는 의미다. 왜냐하면 그 가게는 주로 제철 과일로 디저트를 만들기 때문에, 판매되는 디저트가 자주 바뀌기 때문이다. 또한 그때 이후로 음식 사진을 SNS 계정에 잘 올리지 않던 내가 내 계정의 피드를 점차 그 가게의 디저트 사진으로 채워가기 시작했다.
내 피드에 올라간 디저트 사진은 죄다 그 가게의 디저트뿐이라, 한날 내 피드를 우연히 본 가게의 사장님이 내 피드에 자기 가게의 디저트 사진밖에 없는 게 사실이냐며 놀라워하셨다. 그런데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사장님의 말에 대해 이상한 포인트에 꽂혔다. '그러게, 왜 그동안 이곳에만 왔던 걸까? 이제 다른 가게도 가볼 법하지 않나?'
사장님은 자기 가게를 이렇게 자주 와줘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내게 해주신 말씀이었지만, 나는 이제 다른 디저트 가게도 스리슬쩍 탐색해볼 여력이 생기지 않았나 하는 일말의 발칙한 생각을 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10월 여행에서 또 다른 감행을 시도했다. 사장님의 말마따나 '보문동의 그 가게만 가보라는 법은 없지'라며 평소에 눈여겨보던 한남동의 한 가게를 엄마와 가보기로 했다. 그 가게는 한남동 번화가의 한 가운데 있는 소위 핫플레이스 중 한 곳이었고, 디저트를 먹고 가려면 예약을 하더라도 한 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하는 곳이었다.
10년 동안 구축한 나의 서울 탐방 데이터베이스에 의하면, 나는 '한남동-프렌들리한' 인간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서울 중심부인 한남동에,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과일과 미소 된장, 참깨라는 신선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디저트는 '나와 엄마에게 색다른 맛의 향연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 속에 한남동으로 발걸음을 향한 것이다.
오픈 직후에 갔음에도 역시나 내 앞에 벌써 대기하는 무리가 더러 있었다. 디저트는 정성스럽고 화려하게 진열되어 있었지만, 최대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는 직원의 안내를 듣자 엄마의 표정이 굳어졌다. 대기하는 동안 다행히 앉을 자리가 있었지만, 그 뒤로도 수없이 많은 사람이 다녀간지라 가게 안은 장터처럼 어수선했다.
다행히 한 시간이 안 되게 기다려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가게는 커피는 팔고 있지 않고 차와 위스키 종류만을 팔고 있었다. 엄마는 소박하게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어 했는데, 메뉴판을 펼치자 보이는 놀라운 가격대에 엄마는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디저트는 맛있겠지' 하며 기다리다 보니, 차와 함께 디저트가 준비되었다. 엄마와 내가 디저트를 한 입 먹은 순간, 둘 다 아무 말이 없었다. 내 경험치로는 우리 둘 다 생각보다 맛이 그저 그랬기에 반응이 바로 오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고 확신한다.
그곳은 보문동 가게보다 더 고급스러운 분위기이긴 했지만, 아늑하지는 않았다. 옆 테이블 사람들은 연신 사진을 찍으며 맛에 대한 감탄을 연발했지만, 엄마와 나는 그저 말없이 남은 디저트를 먹을 뿐이었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솔직하게 얘기했다. "보문동 그 집이 생각나.." 10년 차 정도 됐으면 내 데이터 베이스를 좀 더 신뢰했어야 했는데, 사람들이 한남동 가게에 남긴 수많은 호평에 마음이 쏠려 어느샌가 그리로 가고야 만 것이다. 보문동 가게보다 한남동 가게가 더 유명하니, 내심 한남동 가게의 디저트가 더 맛있지 않을까 하고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평가지만, 유명하고 좋은 리뷰가 많은 곳을 간다고 해서 그곳이 나에게 딱 맞는 곳이라는 법은 없다는 점을 여실히 깨달은 날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글이 한남동과 성수동을 깎아내리기 위한 목적의 글은 아니다. 다만, 나는 조금 더 고즈넉하고 투박하지만 편안한 장소에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토요일 오후 한남동에 가본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표현할 뿐인 글이다. 이에 더해서, 나는 중심부보다는 중심부에서 '조금' 변방에 있는 그런 위치가 편한 사람이라는 것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