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경험이 많지 않지만, 나에게 운전은 남들에게 노래방과 같은 공간이다. 사실상 노래방도 포함되어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운전을 할 때 나는 다른 차들과 부딪힐까 두렵기보다, 내가 어떻게 이 길을 파헤쳐서 목적지에 도달할까 기대된다. 진공된 공간에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밖의 풍경을 가로지르며 나아간다는 것은 해방감을 준다.
모두가 내 맘 같진 않겠지만, 나에게 이 공간은 행복한 일상 외에 특별한 기억 두 번을 더 선물했다.
빨간 오프로드 차, 꿈과 환상의 나라 디즈니랜드로
친구들과 마이애미에서 2박을 보낸 후, 우리는 디즈니랜드 오픈런을 하기 위해 새벽부터 렌터카를 빌려 출발하기로 했다. 렌터카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우리 앞에 놓인 차는 다름 아닌 빨간색 지프차였다. 우리의 열정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한 차였지만, 아무도 몰아본 적 없는 차종이라 다들 망설였다. 높은 차체, 묵직한 느낌의 운전대를 보며 친구들은 서로 눈치만 봤다. 평소 운전을 너무 좋아하던 나는 "내가 할게"라며 호기롭게 운전석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자 엔진의 우렁찬 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득 채웠다. 오프로더 차에 맞게 액셀과 브레이크는 다소 거칠었다. 일반 승용차처럼 부드럽지 않았고, 조금만 밟아도 차체가 크게 반응했다. 하지만 그만큼 나의 거친 여정을 감당하기에는 충분했다. 아니, 오히려 완벽했다.
새벽 3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우리는 출발했다. 380km, 5시간이라는 긴 여정이었지만 우리 차는 처음부터 끝까지 디즈니 노래로 가득했다. 'A Whole New World', 'Let It Go', 'Circle of Life'까지. 창문을 조금 내리자 플로리다의 따뜻한 새벽 바람이 차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하이웨이를 달리며 점차 밝아오는 하늘을 보았다. 넓디넓은 플로리다 평야 위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 장면을 보며 더욱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꿈과 희망을 노래하면서 달린 그 시간들. 어느덧 저 멀리 디즈니랜드의 상징적인 성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차 안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렸을 때, 우리는 피곤하기보다 오히려 더 들떠있었다. 5시간의 운전이 전혀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여정 자체가 디즈니랜드로 가는 마법 같은 시간이었다. 밝은 햇살 아래 펼쳐진 디즈니랜드를 바라보며, 나는 지금까지의 모든 순간이 정말 벅차올랐다.
직선으로 이어진 뉴질랜드의 길
나와 친구, 단둘이 뉴질랜드 남섬의 북쪽 넬슨에서 남쪽 끝 퀸스타운까지 한없는 여정을 떠나기로 했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니 약 480km, 총 9시간이 걸리는 여정이었다. 우리는 몇 번의 스톱 포인트를 표시해두고,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우리에겐 시간이 충분했고, 이 길 자체를 즐기고 싶었다.
아침 일찍 출발한 우리 차는 곧 뉴질랜드 특유의 드넓은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양떼가 한가롭게 풀을 뜯는 초록빛 목초지, 그 뒤로 펼쳐진 설산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도로는 끝없이 직선으로 뻗어있었고, 한참을 달려도 다른 차 한 대 보이지 않는 순간들이 많았다.
차로 떠난 여정은 굉장히 자유로웠다.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관광 명소만 가는 게 아니었다. 가다가 왼쪽으로 신비로운 호수가 보이면 그냥 차를 세웠다. 오른쪽에 이름 모를 야생화가 가득한 언덕이 보이면 또 세웠다. 포토존 표지판 같은 건 없었지만, 우리에게는 모든 곳이 포토존이었다.
한 번은 사람이라고는 우리밖에 없는 광활한 초원 한가운데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 펼쳐진 풍경을 보는 순간, 우리는 동시에 소리쳤다. "여기 완전 하이디 아니야?" 그렇게 우리는 알프스의 하이디가 된 마냥 초원을 뛰어다니고, 양팔을 벌려 포즈를 취하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누가 보면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말 자유로웠다.
점심때쯤 작은 가게에 들러 연어를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오후가 되자 풍경은 또 달라졌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내리고, 때로는 안갯 속을 지나기도 했다. 창문을 내리면 뉴질랜드의 차갑고 맑은 공기가 차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운전하면서 나는 옆자리 친구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친구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신나게 불러주고 있었다. 가끔은 말도 안 되는 농담으로 나를 웃기기도 했다. 졸음이 올 틈이 없었다. 아니, 졸고 싶지 않았다. 이 순간들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저녁 무렵, 퀸스타운에 도착했을 때 친구가 물었다. "혼자 운전해서 힘들지 않았어?" 나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힘들기는커녕,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9시간이었다. 옆에서 신나게 노래 불러주는 친구가 있었고, 끝없이 펼쳐진 길이 있었고,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자유가 있었다.
그날 밤, 숙소 침대에 누워 창밖의 별을 보며 생각했다. 이 여정을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이 작은 핸들 하나가 나를 어디로든 데려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는 가장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