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은 나에게 늘 말이 사라지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입을 열 수 없고,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도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곳에서는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이 든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고, 같은 시간을 통과하며, 같은 장면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극장은 언제나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장소다. 무대 위에서든, 객석 안에서든.
나는 대부분 극장에 혼자 간다. 처음 혼자 극장에 갔을 때는 그 공간 전체가 낯선 언어처럼 느껴졌다. 표를 사고, 로비를 지나 객석으로 들어가는 모든 과정이 어딘가 어설펐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극장에 들어설 때마다 늘 허둥지둥한다. 티켓을 다시 확인하고, 좌석 번호를 몇 번이나 들여다본다.
객석 입장 전 로비는 늘 붐빈다.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꽉 찬 공간에는 앉을 자리도 마땅치 않아, 나는 종종 벽에 기대 서서 시간을 보낸다. 그 사이 누군가는 프로그램 북을 조용히 넘기고, 누군가는 일행과 배우 혹은 공연 이야기를 나눈다. 극이 시작되기 전의 그 소란은, 곧 닥칠 침묵을 준비하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이윽고 안내 멘트가 흐르고 사람들은 천천히 객석 안으로 흘러 들어간다.
나는 두 번 정도 지연 입장을 한 적이 있다. 둘 다 국립극단 공연이었다. 딱 1~2분 차이로 입장이 늦어져 객석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공연을 봐야 했다. 허탈함이 밀려올 틈도 없이, 숨을 가다듬으며 이미 시작된 극에 집중해야 했다. 복도에 설치된 텔레비전 스크린 속 무대는 한눈에 들어왔고 대사도 또렷하게 들려서 공연을 이해하기에 어떤 어려움도 없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무대가 오히려 안정적으로 느껴지고 막상 객석에 들어가 가까이서 보게 되자 전체를 조망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생기기도 했다.
그때 처음 알게 된 장면들도 있었다. 객석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무대의 가장자리까지도 창작진이 의도한 연출이 펼쳐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나를 놀라게 했다. 서늘한 복도에 혼자 앉아 공연을 바라보는 그 경험은 이상하게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혼자였지만 완전히 고립된 느낌은 아니었다. 같은 공연을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보이지 않는 연결이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나고 극장을 나설 때, 관객들은 좁은 통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 나온다. 그 사이 여기저기서 단편적인 감상들이 흘러나온다. 인상적이었던 장면, 가장 강렬했던 대사와 연기, 솔직하고 날 것 자체인 감상 등이 탄성처럼 튀어나온다. 누군가는 휴대폰 메모장에 빠르게 후기를 적고,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걷는다.
나는 늘 극장을 나와 한참을 걷는다. 공연을 곱씹으며, 마음에 남은 장면은 붙잡고, 잘 떠오르지 않는 감정은 그대로 흘려보낸다. 예전에는 공연의 모든 순간, 사소한 디테일까지 전부 메모장에 기록하며 날아가려는 기억을 애써 붙잡으려고 했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마음 속에 오래 남는 단 하나의 장면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러한 기억들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동안 나는 머릿속에 남은 장면으로만 다시 의미를 성찰하고, 오로지 나만의 언어로 그것을 구축한다. 그러한 과정은 이상하리만치 상쾌하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걸음을 옮기는 사이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극장은 혼자 들어가지만 결코 혼자 나오지 않는 공간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시간을 통과하고, 각자의 언어로 그 경험을 품고 돌아간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히려 더 많은 감정이 오간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극장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