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새해에는.

by 아트인사이트


안 그래도 월세 단칸방 신세인 주제에 책 욕심이 과하다는 건 알았다. 그래도 애써 외면하며 살아왔는데 이번 이사를 준비하며 그 벌을 받았다. 요즘 코맥 매카시의 책을 읽고 있는데 거기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죄보다 벌이 더 많은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던데. 나 개인 또한 내가 지은 죄보다 더 많은 벌을 받은 게 아닌가 싶다. 그냥 책을 사는 걸 좋아했을 뿐인데.


하지만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사놓고 안 읽은 것이 죄라면… 벌을 받을 만한 것도 같다. 정확히 센 건 아니지만 대충 책 표지를 보며 속으로 읽은 책과 안 읽은 책, 읽다 만 책과 목차만 읽고 읽은 척한 책 등등을 셈해 보니 완독한 책의 수가 과도하게 적었다. 나는 ‘냉장고에 안 먹은 음식이 있듯, 책장에도 안 읽은 책이 있는 게 정상 상태’라고 주장하는 사람임에도,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어질 만큼. 세상에 나온 책들이 억울할 만큼.


그래서 책을 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새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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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도전을 하게 된 데에는 환경의 변화도 있다. 우선 이사 후에는 도서관이 도보 5분 거리로 들어왔다. 이사 바로 다음 날에 시립 도서관에 회원가입을 해두었고, 이사 후 맞이한 첫 주말에 방문해 보았다. 작고 깜찍한 크기이긴 하지만(얼마나 깜찍하냐면 외국 문학 서가가 딱 책장 하나에 다 들어간다) 상호대차가 가능하니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책을 구경하는 맛은 없겠지만, 만화책이 많은 것은 마음에 든다.


전자책을 애용하고자 결심한 덕도 크다. 작년 10월, 장거리 비행을 하고 2주간 외국에 머물 일이 생겨 강경종이책파였던 내가 중고로 이북리더기를 사보았는데, 썩 나쁘지 않았다. 몸값이 절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후려쳐진 그 중고 친구는 대단히도 비실거렸지만 또 그만큼 맘에 드는 녀석도 없어 그 비실비실함마저도 아날로그하다며 거의 1년을 썼다. 그러나 기기 자체의 서비스가 종료되며 강제로 새 이북리더기를 장만해야 했고, 아직도 정은 들지 못했지만 어쨌든 빠릿빠릿하게 움직일 줄 아는 새 친구를 만났다. 그 김에 전자책 구독 서비스도 하나 더 늘려서 요즘은 전자책도 잘 본다.


이처럼 책과의 접근성이 여러모로 좋아졌으므로, 종이책을 구매하지 않는 것이 어려운 도전은 아니리라.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의지박약이라 아예 안 살 리는 없다. 애초에 나는 책이 아니라 책을 산다는 행위 그 자체를 위해 책을 사는 것 같다(이 부분도 길게 풀어보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이 원고가 어디로 갔으려나. 책과 산책을 비교하는 이야기).


그래도 마지노선을 두고자 기준이라도 정해볼까 싶다. 처음에는 중고 도서만 사려고 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핑계로 더 고삐를 풀 것 같다(하지만 6권을 19,000원에 얻을 수 있다면 누가 안 살 수 있을까?). 그래서 연간 도서 구매 비용을 15만 원으로 한정 지어볼 생각도 했지만, 그러면 책의 선발 기준이 책 자체가 아닌 그 가격이 되어버려 책의 본질을 흐리고 만다. 책에서 가성비를 따지는 내가 황당하면서도, 100쪽 초반의 책이 15,000원을 넘어가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책의 가격은 종잇장 수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간 인력으로 책정된다는 걸 알아도……(이 부분도 길게 쓰다가 말았다. 책과 김밥의 공통점을 찾는 이야기). 아니면 매달 한 권씩만 살까?


어떻게든 책을 더 살 궁리만 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내 새해 다짐은 책 안 사기다. 이런 목표를 세워두면 하루하루의 목표 달성률은 좋을 것이다. 아무리 내가 책 사는 걸 좋아한다고 해도 매일매일 책을 사는 건 아니니까. 매일매일 일기 쓰기 같은 건 매일 실패하고 매일 자책하며 잠들 확률이 높지만, 내 목표는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아 오늘도 책 안 사기에 성공했다!’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을 수 있다. 만약 하루 책을 사버렸다고 해도 그전에 사지 않았던 수많은 하루 떠올리며 ‘그래, 나 이만하면 새해 목표를 잘 지키고 있어’라며 위안 삼을 수 있다. 누구나 한 번은 실수할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실수 많은 한 해가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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