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엄마에게 차를 사주는 것이다

by 아트인사이트


내게는 꿈이 있다. 내 꿈은 엄마에게 차를 사주는 것이다. 그냥 그런 차 말고 이왕이면 간지작살 새 차를 사주는 것이 내 꿈이다. 일평생 중고차만 타온 엄마에게 새 것을, 설레임을, 특별함을 사주고 싶다. 그래서 내 꿈은 그 꿈이 시작된 지 이십년이 넘도록 이루지 못한 꿈이 되었고, 그사이 엄마나 차나 많이 늙었다. 가죽시트는 점점 찢어지고 흰머리는 점점 늘어났다.


전화가 왔다. 아버지였다. 엄마가 대로변에서 교통사고가 났으니 얼른 뛰어가보라는 내용이었다. 엄마는 어쩔 줄 몰라 주저 앉아있었고, 차는 반파되어 있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어보였다. 그렇게 엄마는 병원으로, 차는 폐차장으로 향했다. 올해 3월의 일이었다.


새 차를 사주고 싶었다. 컴퓨터를 켜고 자동차 회사 홈페이지에 접속한다. 차량을 고른 뒤 색상을 선택하고 네비게이션과 후방카메라 같이 필요한 옵션만을 넣어본다. 그러니 아반떼는 2500만원 즈음 하고, 쏘나타는 3500만원 즈음 한다. 경차는 2000만원은 줘야 한다니 그것 참 되게 비싸네. 할부를 돌리고 리스를 돌리고 렌트를 돌려봐도 그것 참 답이 안 나온다. 현실을 자조하고 12월이 되었다.


12월은 춥다. 그중 아침 출근길이 가장 춥다. 엄마는 옷을 겹겹이 쌓아 입고는 이제 막 걸음마를 땐 아이처럼 아장아장 걷는다. 옷을 겹겹이 쌓아 입는 이유는, 밖은 추운 반면 안은 덥기 때문이고. 아장아장 걷는 이유는 피부를 최대한 밀착시키기 위함이다. 주말이면 버스를 타고 대형마트를 가 30만원 어치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낑낑. 택시 좀 타라고 잔소리를 해도 딴 건 몰라도 택시비는 아까워 못 쓰겠단다. 서른을 앞둔 나와 환갑을 앞둔 엄마와 나 사이, 짜증에 짜증을. 잔소리에 잔소리를 주고받으며 돌아보니 9개월이 자났다. 내 꿈이 다시 떠올랐다.


내 꿈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엄마에게 차를 사주고 싶다는 이 이타적인 꿈은, 정말 이타적인 꿈이었나. 간지작살 새 차를 사주고 싶다는 이 이타적인 꿈은, 정말 이타적인 꿈이었나. 현실을 무시한 이기적인 꿈은 아니었나. ‘현실을 무시한 이상은 현실을 비루하게 만든다’ 라는 글까지 써놓고 정작 나는 그 말을 지키지 못했다.

자조는 짧게, 해답은 빠르게.


통장잔고를 확인해보고 예산을 설정한다. 나의 근시안이 위험하지 않을 정도로 예산을 설정하고, 컴퓨터를 켜 중고차 매매 홈페이지에 접속한다. 사고로 차를 바꾸는 것이니 너무 작은 것보다는 어느 정도 크기가 있는 것이 좋겠다. 디자인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으나, 주변 아줌마들 사이 쪽팔림을 겪는 일은 없도록 개성 있는 생김새 보다는 무난한 생김새가 좋겠다. 성능이 우수한 것도 좋지만, 차에 무지한 엄마가 기름만 넣고 타도록 잔고장이 적은 차라면 좋겠다. 그렇게 일주일을 홈페이지를 뒤지고 뒤져, 발품을 팔아 팔아 차를 한 대 골랐다.


십여년 된 1,800cc 검정색 세단. 안전도 검사에서 별 다섯개를 받아 마음에 들고, 디자인이 무난해 마음에 들고 잔고장이 적어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한 차주가 애지중지 관리함이 느껴지는 차계부가 마음에 들었다. 속전속결로 차를 계약하고 집으로 가져왔다. 엄마가 퇴근하기 전, 들뜬 마음으로 기름을 가득 넣고 고사용 막걸리를 한 병 산다. 문구점에 들러 휴대폰 거치대와 충전기를 산다. 9개월만의 운전이 서투를 엄마를 위해 초보운전 스티커도 하나 산다.


엄마의 퇴근길,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고서는 주차장으로 데리고 나간다. 피곤한데 무슨 일이나며 짜증 짜증인 엄마에 반면, 나는 들뜬 마음이다. 무심한 듯 차 키를 건네주고 이게 엄마 차라고 했다. 환갑을 앞둔 엄마가 말괄량이 여고생처럼 들떠 차를 이리저리 살펴본다. 활짝 웃는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일찍 사줄 걸.


엄마가 많이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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