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미 중 하나는 ‘마트 가기’다. 번화가에 있는 대형 마트에 갈 때도 있고, 동네에 있는 전통 시장에 갈 때도 있다. 전자는 주로 주변에 다른 일정이 같이 있거나 느긋하게 구경하고 싶을 때 가고, 후자는 비교적 가까운 편이라 간단하고 명확하게 장을 볼 일이 있을 때 간다. 하지만 꼭 무언가를 사기 위해서 가는 건 아니다. 내 취미는 ‘마트 가서 쇼핑하기’가 아니라 그냥 ‘마트에 가기’다. 마트에 가서, 그 안을 걸어 다닌다. 그러면 많은 것들이 보인다.
‘아이 쇼핑(eye shopping)’이라는 말이 있다. 물건을 사지는 않지만, 눈으로는 마치 쇼핑하듯이 구경하며 즐긴다는 뜻의 단어다. 마트에 가서 진열된 다양한 물건들을 구경하는 건 실제로 재미있는 일이다. 형형색색의 과일과 채소들, 갓 만들어져 나온 따끈한 음식들, 첨벙대며 물속을 헤엄치는 활어들과 새로 나온 신상 과자들, 개중 어떤 게 더 맛있게 생겼고 어떤 게 더 싼지 비교하고 흥정하고 대화하고…….
이렇듯 상품 보는 재미가 있어서 마트에 가는 것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 ‘아이 쇼핑’의 시야를 조금 넓혀 보면, 결국은 온통 사람이다. 그 물건을 진열하는 사람, 운반하는 사람, 홍보하는 사람, 안내하는 사람, 요리하는 사람 등. 손님층도 다양하다. 혼자 온 사람, 연인과 온 사람, 친구와 온 사람, 가족과 온 사람. 심지어 요즘은 한국이 꽤 글로벌화 되면서 외국인 손님들도 폭발적으로 늘어서, 대형 마트의 경우엔 그 안을 한 바퀴만 돌아도 온갖 나라의 언어들을 들을 수도 있다.
물건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비워지면 같은 것으로 채워질 뿐이다. 하지만 사람은 매일, 매시간, 매 순간 바뀐다. 일 초마다 다른 사람과 스치고, 지나치고, 가끔은 낯선 사람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히 눈이 마주치기도 하고, 모르는 아기에게 웃어주기도 한다. 물건들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말을 한다. 같이 온 동행에게 질문하기도, 걸려 온 전화를 받기도, 점원들과 정답게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물건들은 열을 내뿜지 않는다. 아무리 성능 좋은 발열 제품이라도 진열되어 있을 땐 결국 조용하고 차가운 상품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시끄럽고, 따뜻하다.
마트 안을 돌아다닌다는 것은 사람들 속을 돌아다닌다는 것과 진배없다. 결국은 사람 구경을 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 붐비는 곳이면 어디든 그렇듯이, 별별 일이 다 일어난다. 기계 쓸 줄 몰라서 발을 동동 구르는 노인, 장난감 사달라며 드러누워 엉엉 우는 어린아이, 사소한 시비로 언성 높이며 싸우는 사람들. 시장의 경우엔 그나마 좀 더 친근하다. 손님이며 사장이며 이미 서로 아는 사이가 많아서 길을 가다가도 ‘아니, 00 아니야!’며 즉석 반상회가 열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 번은 속옷 바람으로 홀로 내달리는 꼬마애를 뻥튀기집 사장이 붙잡아 부모 찾는다고 온 시장이 시끌벅적해진 적도, 길을 잘못 든 차가 좁은 시장 안에 꽉 끼는 바람에 모든 손님이 욕을 한 바가지씩 하며 죄다 밖으로 비켜나 줘야 했던 일도 있었다.
뭐, 당연히 안 좋은 일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더니 ‘내 손녀 같애’하며 덤을 듬뿍 담아주던 반찬집 할머니, 엄마를 잃어버리고 엉엉 우는 아이 손을 꼭 쥐고 서 있던 시식 코너 아주머니, 헤매는 노인을 도와주던 학생들, 앞 사람이 계산대에 놓고 간 지갑 돌려주러 전력 질주하던 뒤 차례 손님, 모르는 사람 주머니에 손난로를 꾹 눌러 넣어 주던 아저씨…….
나는 운동은 많이 못하더라도 산책은 주기적으로 나가려고 노력하는데, 자주 가는 나만의 루트가 있다. 먼저 집을 나선 뒤 좋아하는 카페에서 음료 한 잔을 사고, 동네 초등학교 옆길을 지나 시장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충분히 둘러보며 시간을 보낸다. 그 뒤 번화가 쪽으로 약 삼십 분 정도를 걸으면 대형 마트가 나오는데, 여기에도 잠깐 들러 느긋하게 ‘아이 쇼핑’을 한다. 그다음 집까지 걸어오면 약 한 시간에서 두 시간짜리 산책이 끝이 난다. 찬 바람이 아무리 몰아쳐도 희한하게 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 오면 몸이 후끈해진다. 어쩌면 마음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온기인지도 모르겠다.
연말의 마지막 글로 어떤 내용을 올려야 할지 고민을 정말 많이 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사람 구경을 하고 돌아온 뒤 결국은 소소하게 우리 주변의 얘기를 하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결국은 다 사람 사는 이야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