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 정답이 어디 있어?

by 아트인사이트


한국인 게임 플레이어 특징

ㄴ 일단 돈부터 번다


며칠 전 재미있는 글을 발견했다. ‘한국인 게이머’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 글은 한국인만의 필승 공식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힐링, 어드벤처, 타이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시작되는 한국인의 노동! 여유로운 산책이나 구경 대신 수련으로 스킬을 배우고, 반복 미션과 파밍을 통해 부를 쫓는 모습은 “일단 돈 벌고 보자!”라고 외치는 것 같다.


비록 이런 점들이 한국인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본 한국인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그랬다. 스킬을 먼저 배우고, 최단 루트를 검색한다. 게임에서든, 현실에서든,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게임인지 수행인지 모를 시간이 흘러간다.


공감을 내비치는 다양한 댓글과 웃프다는 반응들 속에 유독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었다.


게임을 게임으로 부딪히지 않고, 인생으로서 부딪힌다.


엉뚱하지만 사랑스럽고, 또 웃기지만 슬픈 이 글에 깊이 공감한다. 나조차도 어떠한 플레이의 전형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의 가치는 실패와 도전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어째서인지 자꾸만 쉬운 길을 찾게 된다. 실패를 겪지 않고 한 번에 최정상에 도달하고 싶다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지만… 때때로는 내가 게임을 제대로 즐기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 즐거워지자고 하는 게임에도 여러 가지 고민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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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넘어가고, 빠르게 쾌락을 누리고 싶다는 마음은 결국 게임 속 노동을 부른다. 매도 먼저 맞자는 것이다. 동물 주민들과 소통하며 느긋한 여유를 즐기도록 설계된 게임에서는 내 집 마련을 위한 대출금을 우선으로 갚는다. 동물 친구들과의 일상적인 수다는 사치다. 그 시간을 벌어 가게가 닫기 전 물건을 조금이라도 더 팔아야 한다.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는 배우고 싶은 스킬보다는 게임 운영에 유리한 스킬을 배운다. 타이쿤 형 게임 에서는 효율적인 작물 루트와 최적의 동선을 끊임없이 찾아본다.


나의 강박적인(?) 부분은 탐험과 파밍이 주를 이루는 오픈 월드 혹은 어드벤처 게임에서 두드러진다. 최단 동선에서도 길가에 있는 버섯을 줍고, 길에서 벗어난 동굴에 있는 보석을 캐러 달려가기도 했다. 무엇 하나라도 놓치기 싫은 본능과 효율의 사이에서 묘한 스트레스가 올라오기도 했다. 하나라도 놓치면 찝찝한 이 기분, 한 번쯤은 느껴본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효율, 최적, 속도와 같은 게임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머릿속을 채운다. 여유를 부리고 싶다가도, 어쩐지 급류에 휩쓸리듯 어떤 허상을 향해 계속 달려간다. 끝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 채 단순히 달리기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단순히 게임 속 모습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현실에서 익숙해진 생존 방식을 그대로 가져와 반복한다. 사람들은 게임을 일상의 쉼터로 여기지만, 결국 그 안에서도 생각을 멈추지 못한다. 숙제처럼 느껴지는 일일 퀘스트도, 무기한에 무이자라는 좋은 조건을 가진 대출금도, 투덜대면서 해결해 버리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건 유희가 아니라 관성이다. '빨리빨리'와 '최고'는 무의식 깊숙이 박혀버렸다. 데이터 조각에 불과한 것들 앞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성실한 개미가 되기를 선택한다. 그곳이 어디든 효율의 쳇바퀴를 돌리는 우리의 모습은, 어쩌면 이 시대가 낳은 가장 웃기면서도 슬픈 초상화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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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정답은 없다. 인생에 정답이 없듯, 플레이에도 정답은 없다. 인내와 고통의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 보상을 내놓기 마련이다. 그래도 가끔은 일부러 비효율을 선택해 보고 싶다. 허락된 낭비는 게임 속에만 있으니까. 망해도 괜찮고, 돌아가도 괜찮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게임을 다시 게임으로 대해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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