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보다 축적을 선택하며

by 아트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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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는 TV 속 멋진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똑같은 시간에 등교해서 친구들과 똑같은 하루를 보내고,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가는 반복되는 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며 여러 가지를 도전하는 20대의 모습이 근사해 보였다.


하지만 막상 20대가 되고 보니,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선택의 폭은 넓어졌지만 그만큼 책임도 함께 따라왔다. 몸은 커졌는데 겁은 오히려 늘어만 갔다. 실패를 상상하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그 상상은 나를 쉽게 멈춰 세웠다.


그래도 올해는 스스로에게 크고 작은 도전을 허락해 보기로 했다. 오래 고민만 하던 일들을 무작정 저질러 보기도 했다. 다만 문제는 도전 그 자체보다 그 이후였다. 준비도 덜 된 상태로 시작하다 보니, 도전보다 수습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된 일들도 있었다. 아니 대부분이 그랬다. 한동안은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설렘도 있었지만 '이걸 어떻게 정리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더 많이 차지하기도 했다.


도전을 많이 하면 실패도 함께 늘어난다는 말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실패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다가올 줄은 몰랐다. 도전 그 자체에만 의미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실패의 순간이 왔을 때 마치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결과를 마주할 준비보다는 시작했다는 사실에만 스스로 안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도전 자체에 의미를 두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결과가 어떻든 다 경험이 될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도전의 크기가 커질수록 기대감도 함께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그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왔을 때 나는 직전의 실패뿐 아니라 과거에 해왔던 결과물들까지 의심하게 되었다. 잘해왔다고 믿었던 시간들마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도전이란 결국 나의 현 위치를 확인하는 일이다. 어디까지 왔는지 알게 되면, 그만큼 부족한 지점도 선명해진다. 그래서 작은 도전조차 두려워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주변에서는 각자만의 페이스가 있고, 20대는 축적의 시간이라고 말해주지만, 정작 나만의 레이스에 서있는 입장에서는 그 말들이 전국 마라톤 대회 현장에서 스쳐 지나가는 소리처럼 흩어진다.


내가 상상해왔던 20대는 멋있고 찬란한 시절이었는데, 현실의 나는 왜 이렇게 불안정한지 스스로를 자책하기 바빴다. 요즘은 Love Yourself라는 말처럼 자신을 돌보는 법에 대한 책과 영상들이 넘쳐난다. 상황이 괜찮을 때는 그 말들이 위로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마음이 무너진 상태에서는 결국 지금의 감정조차도 스스로를 챙기지 못한 내 탓처럼 느껴진다.


어렸을 때는 늘 평범한 게 싫었다. 특별해지고 싶었고, 남들과 다른 길을 가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평범하게 버텨내는 것조차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잘 놀아야 하고, 앞으로의 커리어도 고민해야 하고, 연애도 해보고, 여행도 다니고, 동시에 여러 도전까지 해내야 한다는 '20대의 모습'은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조급하게 만든다.


나답게 살고 싶다고 다짐하면서도 사회가 만들어 놓은 20대의 프레임과 나를 자꾸만 비교하게 되고, 그 비교는 조용하게 다가와 나를 흔들었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20대를 결과의 시간이 아니라 축적의 시간이라는 말을 믿어보려고 한다. 눈에 띄는 성과가 없어 보여도, 방향이 조금 흔들려도, 무작정 저질렀던 선택들까지 포함해서 이 모든 시행착오가 결국은 나를 설명하는 재료가 될 거라고.


얼마 전 내년의 나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실패에 무뎌지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도전을 해서 실패라도 해보는 게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분명 나을 것이라고. 그 문장을 쓰면서도, 사실 지금도 완전히 확신하진 않지만 적어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분명했다.


아직은 불분명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결국 무언가를 쌓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 보려고 한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을 떠올리면서. 자신만의 속도로 묵묵히 시간을 견뎌내다 결국은 빛났던 그 사람처럼. 나 역시 언젠가는 이 시기를 지나왔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조금은 흔들려도, 조금은 조급해져도 괜찮다고. 잘 놀지 못한 날과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처럼 느껴지는 하루까지 전부 포함해서 나는 지금 축적의 20대를 통과하는 중이라고. 완성되기보다는 실패에도 조금씩 무뎌지면서 나만의 속도로 차근히 축적해 나가는 시간이라고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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