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라 그런지 여행을 떠난 친구들이 주변에 많다. 인스타그램 앱을 열면 너덧 명은 유럽에, 서너 명은 일본에 가 있다. 극성수기 휴가철이 아니더라도 꼭 1, 2월엔 다들 여행을 가는 것 같다. 나도 그랬다.
한번은 앞으로의 삶에 대체 어떤 선택지가 남아있을지 궁금해 혼자 멀리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살면서 처음으로 낯선 곳에 혼자 일주일 넘게 있어 보는 경험이었다. 그전까진 여행의 묘미를 전혀 몰랐다. 내 모든 물건이 갖추어져 있고 안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따뜻한 집에서 벗어나는 수고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여행에서 보게 된 것은 새로운 풍경과 음식, 처음 들어보는 소음과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진정한 내 모습이었다. 어떻게 낯선 환경에서 오히려 내 속을 들여다본단 말인가?
혼자 떠난 여행에선 나를 둘러싼 모든 숫자와 문자를 지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나이도 이름도 소속도 없는 사람이 된다. 누구의 자식도 친구도 언니도 동생도 아니다. 나를 아는 사람들 앞에서 보여야 했던 모습들, 학번을 부여받은 학생으로서 증명해야 했던 것들, 일터에서 이름을 단 직원으로서 갖추어야 하던 태도 같은 것을 벗어놓아도 된다. 그때부터 나는 완전히 흰 도화지로 돌아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일들에 정말로 나다운 반응을 그대로, 거리낌없이 그려 보일 수 있다. 하나둘 온전히 내 마음 가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일들이 쌓이면 나는 어떤 상황에서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이구나, 알게 된다. 바깥으로부터 나를 보게 된다.
나는 그저 아무개 이방인이었다. 사회에서 나라는 한 인간을 지칭하던 이름들이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 떠난 여행에서 외로움도 그리움도 아닌 완전한 홀로됨을 느꼈다. 자세히 보니 나는 사실 작은 것들에 집중하는 사람이었다. 아주 아주 작은 호의들, 사람 사는 냄새들. 관광객으로 가득 찬 명소나 필수로 방문해야 하는 맛집보다는 캐리어를 잠깐 들어주는 사람, 카페 옆자리에서 정겹게 떠드는 할머니, 아름다운 연인의 사진 찍는 모습, 여행객을 환영해 주는 식당 사장님, 산책하는 귀여운 강아지, 일 중간중간 나름의 뿌듯함을 찾던 직원, 지하철에서 들리는 버스킹 소리, 다정하게 헤어지는 친구들 모습, 놀러 와 신난 사람들, 친절한 캐셔, 길거리에서 웃어 보이던 얼굴 같은 것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완전한 자유를 느꼈다.
그때는 나의 상징계가 사라지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한다. 라캉이 정의하는 상징계는 언어와 법, 사회적 규칙의 세계다. 나 이전에 존재하는 거대한 질서로, 우리가 따라야 할 사회적 규범과 질서, 가족 제도, 교육 시스템, 성 역할, 관습 등 우리 행동과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규정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낯선 언어로 다른 사회 체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틈에 이름을 잃어버린 얼굴 없는 여자로 지낸 10일은 20년 넘게 줄곧 나를 억압해 오고 임무와 도덕을 명칭의 방식으로 부여한 상징계가 완전히 흐려지고 진짜 나의 모습을 마주하는 날들이었다.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숨 막히는 상징계는 타국에 가자마자 흔적을 감추었다. 우리말로 대화할 일 없는 그곳은 시집갈 나이가 다 되었다든가, 이제 더는 졸업을 늦추면 안 되고 어서 취업해야 할 나이라든가, 하나라도 스펙이 되는 대외 활동과 인턴을 더 해야 하는 시기라든가, 그래도 중요한 날에 화장을 좀 해야 용모 단정이 되는 것이라든가, 요즘 여자는 어떻고 남자는 어떻고 젊은 애들은 어떻고 하는 한국식 정서가 기어코 드러날 일 없는 상징계 바깥이었다.
최근에 SNS에서 다음과 같은 글귀를 봤다. <넌 여행을 가고 싶은 게 아니라 튀고 싶은 거야. 이름 번호 신상 다 없애고 나르고 싶은 거야>. 우리가 여행에서 해방감을 느끼고 비로소 참된 자신을 마주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일단 나를 정의하는 글자들에서 탈출하면 정말 나 혼자만이 남게 된다.
우리는 언어를 사용해 말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상징계 아래 살게 된다. 모두에겐 각자 이름과 직책이 있고, 도덕과 법률로 이루어진 사회로 걸어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가끔은 너무나도 커져 무거워진 상징계를 벗어나고 싶을 때, 나와는 완전히 다른 말을 하고 다른 음식을 먹고 다른 생활을 하는 사람들 틈으로 가 볼 필요가 있다. 지구 반대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