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살아갈 내일의 나에게, 오늘의 내가 전하는 말

by 아트인사이트


오랫동안 미루고 미룬 일을 마침내 해냈다. 지갑만 달랑 챙겨 나가도 끝낼 수 있는 일들이었지만, 몇 달을 그리고 몇 년을 미뤘다. 그렇게 간단한 일을 왜 지금까지 미루었냐 묻는다면, 그 이유는 아주 많다.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내 나름의 사소한 이유들.


막상 투두리스트에서 지워지고 나니 미뤄온 시간이 낭비 같기도 하고, 또 후련하기도 했다. 마음 먹었을 때 당장 하면 될 텐데 왜 굳이 미루게 되는 걸까.


뭐든 티끌 하나 없이 완벽하고 싶은 마음만으로 그 이유가 충분했으면 좋겠지만, 어쩌면 [완벽주의]라는 명분 뒤에 숨어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처음 가 본 미용실에서 생긴 일


몇 달 째 손질하지 않은 머리카락이 어느새 허리에 가까워졌다. 앞머리는 옆머리가 된 지 오래다. 길어진 머리카락을 보고 있자니, 왠지 새로운 머리스타일이 해보고 싶어졌다.


내 얼굴형에 어울리는 스타일도 찾아보고, 어울리지 않더라도 한 번쯤 시도해보고 싶었던 스타일에도 관심을 가졌다. 정작 언제 미용실에 갈지는 정하지 않은 채, '미용실 가야되는데'라는 생각만 되뇌이며 아까운 시간을 보냈다.


매일 열심히 자라는 머리카락은 그런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어느 순간 거울 속 내 모습이 싫어지기 시작했고, 내일 당장 미용실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미용실부터 예약했다. 여전히 머리스타일은 정하지 못했다.


단골 미용실을 두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용실에 갔다. 그곳이라면 커트만 해도 평소와는 다르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부드럽고 잔잔한 손길이 익숙했던 내게 다소 거칠고 즉흥적인 가위질로 내 머리카락을 손질해 주시는 미용사분을 만나게 된 것이다.


분명 손님 신분으로 의자에 앉았는데, 마치 심판대 위에 선 죄인처럼 내 속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 끝은 놀라웠다. 거울 속에는 어제와 전혀 다른 내가 있었다. 미용사의 모든 가위질에는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이 단순한 일을 왜 여태 망설였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스쳤다.


내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가꾸어 줄 이는 이미 준비를 다 마친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모르는 이의 청춘을 담아주는 사진관


이력서에 넣을 증명사진이 필요했다.


찍어놓은 사진이라곤, 19살 때 학원 가기 전에 찍은 민증사진 뿐이었다. 우려먹을 데로 우려먹은 첫 민증사진을 쓰기엔, 지금의 내 얼굴은 세월의 풍파를 맞은 게 눈에 훤하다. 살도 조금 올랐다. 그런 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역시나 증명사진 찍기를 미루고 미룬 이유였다.


그럼에도 찍혀야 했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 중 가장 젊은 오늘의 내 모습으로.


창창했던 나의 열아홉을 남겨준 사진관으로 갈까 고민했지만, 끌리지 않았다. 그때와 다른 나를 기록해줄 새로운 사진관을 찾고 싶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청춘'이라는 두 글자.


그 흔해 빠진 두 글자가 나를 '청춘 사진관'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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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 아주머니는 친절하셨다. 아주머니께서는 내게 어디에 쓸 사진을 찍으러 왔냐며 물으셨는데, 그 질문 한 줄이 이유 없이 뭉클했다. 내 눈에는 한없이 별로인 이 얼굴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사진을 찍는 이유를 물으심에 나도 모르게 감동받았나보다.


온몸의 긴장을 풀어야 할 카메라 앞에서, 나는 여전히 경직된 상태였다. 그런 내 긴장을 풀어주는 아주머니의 시답잖은 유머에 무심코 터져버린 웃음은, 그날의 내 모습을 더욱 환하게 밝혀주었다.


미루고 미루다 반오십이 되어버린 내 모습이 드디어 찍혔다. 스물 다섯 가장 젊은 오늘에.


오늘보다 내일의 결과가 더 나을 거란 착각 속에, 지금껏 오늘이 아닌 내일을 살았다. [게으른 완벽주의]라는 말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며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부질없는 고집만 부렸던 것이다.


특히 외면보다 내면을 중요시한 탓에, 타인에게 가장 먼저 보이게 될 외면을 신경쓰지 않은 지난 날을 후회했다. 그러나 이 후회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임을 나는 안다.


외면도 내면도 지금보다 더 단정한 모습으로 가꾸겠다 다짐하는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의 하루를 더욱 찬란히 빛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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