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그 집엔, 나는 없었다

by 아트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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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연극


내가 살던 그 집엔, 나는 없었다


극단 적이 2026년 3월 7일부터 15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연극 [내가 살던 그 집엔]을 선보인다. 본 공연은 2025 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연극부문에 선정된 작품으로, 마정화 작가의 신작 희곡을 이곤 연출이 무대화한다.


작품은 1970년대 후반 급격한 산업화의 그늘 속에서 밀려난 여성들과 오늘날 한국 사회의 경계에 선 여성의 삶을 교차시킨다. 화교로 자라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했던 '마마', 가족들로부터 벗어나고자 도망쳤지만 여전히 부양의 짐에 시달렸던 '엄마'.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여전히 차별받는 결혼 이주 여성 '꾸엔'. 마마와 엄마의 딸인 '나의 기억이 소환되며 시작하는 이 작품은, 도망치려 했고 결국 도망가버린, 그래서 어느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연극 [내가 살던 그 집엔]은 진실을 말할 권위를 부여받지 못한 자들의 이야기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죽어서도 삶에 남아있는 유령들처럼, 극 속 화자 '마마'와 '엄마'는 살아서 말하지 못했거나,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죽음을 통해서, 또는 미쳐서야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그들의 진심은 거짓말로 드러나고 그들의 진실은 아무도 듣지 못한 채 흩어져버린다.


이는 단순한 극적 설정이 아니라 누가 진실을 말할 수 있었는지, 누구의 이야기가 지워져 왔는지에 대한 질문이며, 말할 수 없었던 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구성하는지에 대한 탐색이다.


이야기는 딸 '나'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나'는 엄마와 마마의 기억을 불러오지만, 그 기억은 서로 어긋나고 때로는 배반하며 겹쳐진다. 같은 순간은 서로 다른 감정으로 말해지고, 하나의 진실은 여러갈래로 흩어진다. 장면은 겹쳐지고 배우들은 화자와 인물을 오가며 기억을 구성한다.


차별과 혐오 속에서 흩어졌던 말들이 다시 모이는 이 연극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진실을 선택할 것인지 조용히 묻는다.


[내가 살던 그 집엔]은 전통적인 기승전결의 서사를 따르지 않는다. 작품에서 과거는 고정된 사실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만들어지는 기억이다. 하나의 중심을 향해 달려가는 대신, 가장자리에서 시작해 서로를 향해 번져가들 말들. 명확한 설명 대신 어긋나는 기억. 하나의 결론으로 정리되지 않는 이야기 구조는, '여성의 말하기'라는 형식 자체를 무대 위에 구현한다.


무대는 재현적 공간을 최소화하고, 음악과 소리, 빛과 이미지가 겹쳐지며 몽타주처럼 인물의 내면을 드러낸다. 특히 1970년대 고고 음악과 춤은 서사의 무게와 대비를 이루며, 억압과 균열 속에서도 잠시 숨을 고르는 리듬을 드러낸다. 밝은 리듬 위에 얹힌 불안은 작품이 말하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의 감각을 환기한다.


제목 속 '집'은 물리적 공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혼자가 아니고 싶다는 마음, 오늘 밤 편히 자고 싶다는 소망, 이번에 여는 문으로 나가고 싶다는 희망 등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놓을 수 없는 '바람'에 가깝다. 이들이 품었던 작고 사소해 보이는 바람들이 겹쳐 새로운 서사를 만든다.


극단 적은 [몰타의 유대인]으로 2025년 제3회 서울예술상 대상을, [4분 12초]로 제44회 서울연극제 5관왕을 기록한 바 있으며, 그동안 고전을 여성의 시점에서 재해석해온 단체다. 이번 작품 역시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서 출발했다. [오셀로]에서 이야기가 가지는 의미를 데스데모나와 에밀리아의 이야기로, 그들의 자리에서, 다시 말하고자 한다.


어떤 이야기는 왜 거짓말로 밀려날까.


진실은 누구의 진실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믿고 싶은가.


[내가 살던 그 집엔]은 그 질문을 관객에게 건넨다.


배우로는 [몰타의 유대인]으로 2025 백상예술대상 연극상을 수상한 곽지숙을 비롯해 정다함, 심연화, 전형숙, 김영준, 이상홍, 안병식, 이승혁이 출연한다.




시놉시스


떠나고 싶어했던 '엄마'

돌아가고 싶어했던 '마마'

쉬고 싶었던 '꾸엔'


이들을 만나며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생각하는 '나'


'엄마'는 떠나고 싶어했다.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든 괜찮을 것 같다고. 어린 나이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힘겹게 살아 온 엄마는 그 날 운좋게 마마를 만난 다음 처음으로 자신의 바램을 내비친다.


'마마'는 돌아가고 싶어했다. 결혼했지만 마음 붙일 곳 없이 외롭게 살고 있는 마마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돌아간다면 그 곳의 사람들은 자신을 받아줄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겨우 날개를 접은 이주 여성 '꾸엔'은 조금만 더 쉬고 싶었다. 남들만큼 살고 싶어서 남들의 몇 배를 애썼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자신의 바램을 내려놓지 않고 살았던 꾸엔은 이제 조금 쉬고 싶었다.


이 세 명의 여성들을 만나면서 '나'는 이제 자신이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생각한다.


1970년대 후반 한국의 가파른 성장 속에서 밀려났던 여성들, 그리고 지금의 한국에서 쉽게 받아들여주지 않는 여성들의 이야기. 도망치려 했고 결국 도망가 버린, 그래서 어느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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