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인간의 얼굴을 어떻게 바꾸는가?

[공연] 튤립

by 아트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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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연극


전쟁은 인간의 얼굴을 어떻게 바꾸는가?


극단 돌파구(대표 전인철)가 창작극 [튤립]을 오는 3월 1일부터 3월 8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2025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선정작이다. [튤립]은 1920년대 도쿄의 한 가정집을 배경으로, 전쟁이 인간의 삶과 관계에 남긴 흔적을 따라가는 작품이다.


전쟁은 총성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 그것은 일상의 질서가 되고, 한 사람의 이름이 되며, 관계의 방식이 된다.


가족과 고향을 잃고 일본식 이름으로 살아가는 조선인 남자 쿠로. '튤립'이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 쥬리프. 그리고 겉으로는 흠잡을 곳 없어 보이는 가정을 이루고 있는 야마토와 에리코, 그 집 안의 흐름을 지켜보고 있는 미호까지. 다섯 인물의 일상은 평온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작품의 시간은 1904년 러일전쟁에서 시작해 만주와 경성, 연해주 연추를 거쳐 도쿄의 한 집 안으로 스며든다. 거대한 역사적 장면은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 영향은 인물들의 말과 선택, 그리고 침묵 속에 남아 있다. 멀리서 시작된 힘은 어느 순간 집 안의 규칙이 되고, 감정의 방향을 결정한다. 이 집 안에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튤립]은 거대한 사건을 고발하기보다, 전쟁이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변형시키는지를 응시한다. 그러나 그 응시는 차갑기만 하지는 않다.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누군가를 지키려 하고, 사랑하려 하며, 붙잡으려 한다. 그 선택들이 결국 서로를 흔들어 놓는다.


작품은 묻는다. "이름을 얻는다는 것은 무엇을 잃는 일인가.",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부르고 있는가.", "한 집안의 균열은 한 시대의 얼굴을 어떻게 드러내는가."


튤립은 꽃이 아니라 구근을 키우는 식물이다. 보이지 않는 뿌리는 또 다른 생을 준비한다.


이 작품에서 튤립은 장소이자 기억이며,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어떤 근원에 대한 은유다. 김도영 작가는 2013년 [심야정거장]으로 데뷔한 뒤 [왕서개 이야기], [금조 이야기], [수정의 밤] 등에서 전쟁과 폭력의 역사 속에서 거대한 서사 대신, 그 안에 놓인 개인의 흔들림을 탐색해 왔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시대가 인간의 선택을 어떻게 밀어붙이는지를 세밀하게 그려낸다.


연출을 맡은 전인철 연출가는 텍스트를 배우의 육성으로 직접 전달하면서도, 재현과 거리두기 사이의 긴장을 유지해 온 연출가다. 이번 작품에서는 하나의 공간 안에 겹쳐진 시간과 침묵을 통해, 전쟁이 바꾼 인간의 얼굴을 응시한다. 그는 2006년 [고요]로 데뷔한 이래로 [목란언니], [노란 봉투],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구미식], [고목], [아이들], [헤다 가블러], [키리에] 등을 통해 자신만의 연출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또한, 연극계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아 온 다섯 배우가 한 공간 안에서 긴장을 만들어낸다. 쿠로 역에 권정훈, 쥬리프 역에 김하람, 야마토 역에 김정호, 에리코 역에 황순미, 미호 역에 윤경이 출연한다. 이 작품은 사건의 격정보다, 눈빛과 침묵 속에서 변해가는 감정의 결을 따라간다. 이들의 침묵이 어디로 향하는지 지켜보는 일은, 어쩌면 우리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일과 닮아있다. 관객은 어느 순간 이들의 선택 앞에 서게 된다.


[튤립]은 3월 1일(일) 공연 종료 후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한다. 공연 개막에 맞춰 출간되는 희곡집은 공연 기간 중 극장 로비에서 독점 판매되며, 이후 주요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시놉시스


"그 애가 곧 와."


나카무라 쿠로, 막산의 다른 이름이다. 얼굴에 검은 페인트 흔적이 있는 그는 조선 까마귀라고도 불린다. 그는 도쿄 대학에서 한 귀퉁이에 정원을 만들고 튤립을 기르는 일을 한다. 그곳에서 매일 쥬리프를 기다린다. 쥬리프는 동양척식주식회사 본사에서 일하고 있는 아버지 야마토와, 쥬리프를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에리코와 함께 살고 있다. 이 집안의 가정부 미호는 쥬리프의 학교생활을 염탐하여 에리코에게 전달한다. 어느 날, 쥬리프가 쿠로를 집으로 초대하고, 쿠로는 튤립 화분을 들고 삼나무로 만든 고풍스러운 이 집으로 찾아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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