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순이에게서 엄마의 사랑을 느낀다.

by 아트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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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때를 놓친 어느 밤, 편의점에 들어간다.


라면 코너를 스캔하고 한 바퀴를 삥. 두 바퀴를 삥. 지독하게 행사 상품만 찾는 나에게 이 시간은 신중하다. 선택지를 2+1 행사 상품으로 좁히고 그중에 국물 라면을 골라내 그중에 가장 무난한 진라면 매운맛을 골라낸다. 마침 딱 3개가 남았으니 아, 이건 운명이 아닌가. 라면 하나도 신중하게 고르는 나는 이 시대의 지성인. 성수동의 고독한 미식가! 자뻑에 빠져있던 그때, 메리야스에 검정 패딩 아저씨가 숨을 헥헥대며 내 진라면 매운맛을 몽땅 쓸어간다.


진라면 순한맛이 그렇게 내게 왔다. 진라면 순한맛. 진순이란 무엇인가.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재고 처리를 못 한다는 전설의 라면이 아니던가. 지구가 멸망하지도 않았는데 그런 진순이가 내게 왔다.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덧없는 표정으로 수프를 흔들고 뜨신 물을 받는다.


물을 받으며 진순이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무언가 익숙하다.


어린 시절. 소풍날이면 내 가방에는 김밥과 함께 진순이가 들어있었다. 착해 빠진 우리 엄마는 어린 내가 라면을 매워할까, 국물 없는 김밥은 목 메일까 진순이를 넣어줬다. 진순이 앞 스물여덟 먹은 내가 그렇게 잠시 여덟 살로 돌아갔다.


여덟 살의 나는 진순이를 맛있게 먹었다. 집에서 인스턴트가 금물이었던 탓에, 내게는 꽤 귀한 음식이었는데. 소풍 가는 동안 뜨신 물이 조금 식어 면이 설익었어도, 라면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매운맛이 부족했어도 나는 진순이를 맛있게 먹었다. 끼니를 때우거나 술안주로 먹는 스물여덟의 라면과는 분명 다른 차원의 맛이었다.


스물여덟으로 돌아와 진순이를 다시 보니 그것 참 감회가 새롭다. 요즘 컵라면은 뚜껑을 벗기고 전자레인지에 넣으면 더 맛있다는데, 구태여 뚜껑을 닫고 뜸을 들인다. 뚜껑 위에 적혀있는 시간보다 30초를 빨리 열어 설익은 면을 만든다. 나무젓가락을 절도 있게 뜯고 후후 바람을 불어 한입 한다. 아니, 이 맛은! 편의점 아줌마는 완제품을 팔았을 뿐인데, 음식이 너무 맛있다며 칭찬할 뻔했다.


면발을 다 건져 먹은 뒤 국물을 모조리 비우고 컵 벽면에 달라붙은 건더기까지 모조리 긁어먹는다. 그렇게 한 그릇을 비우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이건 굉장히 행복한 맛이다. 옛날 생각에, 엄마 생각에.


소풍 전날, 마트에 갔을 엄마를 상상해 본다. 라면 코너를 스캔하고 한 바퀴를 삥. 두 바퀴를 삥. 아들내미 입에 들어갈 라면이라 그 무엇보다 신중하다. 매운 라면, 짜장 라면, 스파게티 라면, 카레 라면. 수많은 라면이 눈에 들어온다. 매운 라면은 어린 아들이 매워할까 안 되고 짜장 라면과 스파게티 라면은 야외에서 먹기 불편하니 안 된다. 카레 라면은 냄새가 고약해 친구들에게 놀림 받을까 안 된다. 그런 엄마 눈에 걸린 진순이가 내 가방 안으로 들어온다. 그런 엄마 마음이 내 마음으로 들어온다.


진순이에게서 어린 나를 느낀다.

진순이에게서 엄마의 사랑을 느낀다.


다 큰 나는 그렇게 다시 진순이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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