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한 사람들에게 위로를 곁들인

by 아트인사이트


실패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다시 도전할 용기를 내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초등학생 시절, 단 한 문제를 더 틀려 100점을 놓쳤을 때 나는 틀린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취업에서 서류를 통과하고도 면접에서 탈락했을 때는, 탈락 메일의 제목만 확인한 채 원문은 아직도 메일함에 그대로 남아 있다. 실패를 곱씹기보다는 외면했고, 돌아보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멈춰 서거나 괜스레 화만 냈다. 자존심이라는 이름의 벽 앞에서 ‘재도전’은 늘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런 도전을 실제로 해낸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보다 생각이 많고, 신중함을 무기로 삼아 살아온 사람. 소심해 보이지만,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본질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은 사람. 그는 요리사 최강록이다.




최강록, ‘조림인간’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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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회사원이었던 최강록은 CJ E&M Olive 채널의 <마스터셰프 코리아 2>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재료를 조리하는 방식에 집요하게 집중한 그의 요리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강레오 셰프와의 케미, 독특한 캐릭터는 프로그램의 상징이 되었다.


이후 ‘조림의 사람’이라는 이미지는 밈처럼 확산되었고, 프로그램을 보지 않은 사람들조차 ‘최강록=조림’을 떠올릴 정도가 되었다. 우승 이후 그는 요리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식당을 열고, 유튜브를 통해 요리를 소개하며 조용히 자신만의 세계를 쌓아갔다.




탈락, 그리고 다 조려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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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이 흘러 2024년, 그는 다시 서바이벌 무대에 선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계급 전쟁>. 여전히 ‘조림의 왕자’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3라운드 팀전 탈락과 패자부활전 실패로 프로그램을 떠나야 했다. 등장만으로도 큰 관심을 받았지만, 이후 그의 행보는 조용했다. 유튜브는 멈췄고, 식당도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았다. 프로그램에서 농담처럼 던졌던 “떨어지면 1년쯤 인터넷 안 하면 된다”는 말은 현실이 되었다. 그는 멈추는 시간을 선택했다.


1년 뒤 2025년 말 시작된 <흑백요리사 2>에는 히든 룰이 있었다. 전 시즌 탈락자 중 두 명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것. 그중 한 명이 최강록이었다.


이번 시즌의 그는 달랐다. 이전에는 최소한의 말만 하던 사람이, 이제는 팀의 중심에서 의견을 내고 동료들을 이끌었다. 개인전에서는 3시간 동안 하나의 요리에만 몰두하며 완성도를 끌어올렸고, 팀전에서는 자신이 가진 모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 진심이 닿아 결승전까지 진출하게 된다.




조림인간인 '척'한 나를 위로한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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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의 주제는 ‘나를 위한 요리’.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는 데 익숙한 요리사들에게 ‘나를 위한다’는 말은 가장 낯선 질문이었다.


최강록이 선택한 것은 조림이 아닌 깨두부였다. 이 음식은 그가 스스로에게 게으르지 말자고 다짐하며 만들던 요리였다. 좋아하는 재료와 우동 국물을 더해 완성한 깨두부, 그리고 마지막에 곁들인 참이슬 빨간뚜껑. 힘들었던 시간과 다시 일어선 자신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실 저는 조림을 그렇게 잘하지 않아요. 그런데 잘하는 척을 했죠.

나를 위한 요리에서까지 조림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저 자신에게 위로를 주고 싶었어요.”


‘조림인간’이라는 이미지 뒤에 숨겨졌던 진심.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짊어졌던 무게. 그 솔직한 고백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척'이라는 단어는 의도적으로 보이게 할 때 쓰이는 단어이다. 초라한 내 자신을 보이는 것보다 '척'한 내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오히려 쉽고, 사람들 또는 대중들이 원하는 모습일 때가 많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그리고 넘어 때로는 나도 그런 척을 해도 된다고 합리화하게 된다.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자신을 잃어간다. 버티는 척, 괜찮은 척, 아무 일 없는 척을 하느라 진정한 자신을 놓친 채 방황하기도 한다. 그의 마지막 요리는 지켜보는 모든 시청자들이 오늘까지 지켜온 '척'을 잠시 내려놓고 본연의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우승보다, 재도전해서 좋았다


결과적으로 그는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1년 전 떠났던 그 자리에 다시 서서, 더 단단해진 자신을 마주했다는 사실임을 밝혔다. 우승은 결과였고, 진짜 성과는 재도전의 과정에서 얻은 자기 자신이었음을 말이다.


“재도전해서 좋았다.”


그의 마지막 한 문장은 <흑백요리사>가, 그리고 치열한 도전 속에서 반복되는 성공과 실패의 삶이 무엇을 향해야 하는지를 보여줬다.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위로해야한다는 점이다. 이는 나아가 계속해서 '척'한채 버티고 있는 취업에 실패한 청년들, 사업에 좌절한 자영업자들, 시험에 떨어진 수험생들까지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다시 도전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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