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결정적 순간

by 아트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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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결정적 순간


기록이 생략한 역사의 뒷면, 그림으로 목격하다


어떤 그림은 수천 자의 글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말로 단정하지 않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상황을 짐작하면서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명화에 친절하고 극적인 스토리텔링을 곁들여 인기를 얻은 '후암동 미술관'의 이원율 기자가 이번에는 역사로 찾아왔다.


[위험한 그림들]은 우리가 주로 예술작품으로 접하는 그림을 역사적 시각에서 살펴보는 책이다. 역사화 속 중심에 자리 잡은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변에 각각의 자세와 표정으로 위치한 조연들, 배경이 된 장소와 날씨, 건축물부터 장식물 하나까지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익숙하게 보아오던 그림도 완전히 새롭게 느껴진다.


[아테네 학당] 속에서 가장 추레한 남자의 형형한 눈빛에 주목하게 되고, 윌리엄 터너의 평화로운 해 질 녘 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울컥한다.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처형]을 보면서 도낏자루를 쥔 사형수의 표정을 살피고 [델라웨어강을 건너는 조지 워싱턴] 속 군인답지 않은 병사들의 모습에 호기심도 인다.


에마누엘 로이체의 [델라웨어강을 건너는 조지 워싱턴]은 한겨울의 얼어붙은 강을 가로지르는 배를 그린 그림이다. 배 위에 당당하게 선 조지 워싱턴, 왼쪽 허리에 장검을 차고 오른손에 망원경을 쥔 채 꽉 다문 입술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단단한 각오가 느껴진다. 실제로 크리스마스에 행해진 이 도하 작전은 독립전쟁의 향방을 바꾼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그런데 그림을 살피다 보면 뭔가 어우러지지 않는 느낌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워싱턴 뒤에 국기를 잡은, 부사관쯤으로 보이는 남자는 그렇다 쳐도 뱃머리에서 얼음을 깨는 사람, 부사관과 함께 깃발을 잡고 있는 사람, 맨 뒤에서 노를 젓는 사람들 모두 군복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았다. 이들은 누구일까? 여기에 담긴 사연을 확인하려면 독립전쟁의 서막을 살펴봐야 한다.


당시 신대륙 식민지는 감당할 수 없는 영국의 과세 정책에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1773년 12월 식민지 주민들은 '차법'에 항거해 보스턴항에서 동인도회사의 배에 실린 홍차를 바다에 던져버렸다. 영국은 강력한 보복 조치에 들어갔고 1년 5개월 후인 1775년 4월 독립전쟁의 역사적 첫 전투가 렉싱턴 콩코드에서 발발했다. 이 전투는 식민지 민병대가 승리했지만, 이후 독립전쟁에서 식민지는 계속해서 열세에 처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국군은 전쟁 경험이 풍부한 일당백 전사들이었다. 애초에 영국이 과도한 징세를 단행한 것도 긴 전쟁의 여파로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반면 영국에 맞서는 식민지의 군대는 농부, 상인, 대장장이 같은 일반인으로 구성되었다. 무기가 보급되지 않아 평소 사냥에 쓰던 개인 소총을 들었고, 통일된 군복도 없어 일상복을 입고 싸웠다.


로이체의 그림에 이 역사적 배경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실제 훈련받은 군인이 아닌 잡군이었음이 제각각 인물로 묘사되었다. 하지만 이런 오합지졸도 거듭되는 실전에서 점차 군인다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일생일대의 전투를 눈앞에 둔 그들은, 차려입은 모양새는 여전히 잡군일지언정 눈빛만은 살아 있다. 그 결과 크리스마스 다음 날 벌어진 트렌턴 전투에 승리했고, 곧 멈출 것 같았던 미국 독립 혁명의 바퀴도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떤 역사책 속 텍스트가 이 그림 한 장처럼 생생하게 미국 독립전쟁의 결정적 전환점 보여줄 수 있을까? 그림으로 보면, 학창 시절 그저 줄줄 외워야 했던 밋밋한 역사 연대기도 한편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된다.


이 책은 이렇게 역사를 바꾼 중요한 순간을 소재로 삼은 그림들을 소개한다. 그래서 제목도 [위험한 그림들]이 되었다. 한 인간, 한 시대가 극한의 선택 앞에 섰던 순간 속으로 우리를 데려가기 때문이다.


초심자도 쉽게 이해하는 설명, 그림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상세한 상황 묘사, 그 안에 담긴 감정까지도 재현해내는 스토리텔링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은 '후암동 미술관'은 몰입도에서 독보적인 미술 소개 콘텐츠다. 7만 8천의 구독자, 2,500만 조회 수가 이를 증명한다.


[위험한 그림들]에는 선사시대 크로마뇽인이 그린 동굴벽화부터 제2차 세계대전의 수용소까지, 역사의 큰 전환점이 된 장면 30가지가 담겨 있다. 역사에서 그동안 조연에 머물던 그림이 주연으로 나설 때, 우리가 그 안에서 익숙하게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 또한 다양한 관점에서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명화는 그 자체로도 아름답고 가치가 있지만, 그 안에는 그 시대의 유행, 사회적 분위기, 역사적 사건까지 담은 시대의 거울이기도 하다. 단순한 기록에 이런 그림이 더해지는 순간, 역사는 빈약한 상상의 영역에서 구체적 장면으로 탈바꿈한다. 그 당시의 계절감이나 날씨, 특정 사건에서 보여주는 인물들의 몸짓과 표정까지 더해져,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의 환희와 절망, 분노와 공포를 독자들이 직접 느끼게 해준다. [위험한 그림들]은 역사를 '읽고 외우는' 방식에서 벗어나, '목격하고 체험하는' 방식으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그림 속 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역사는 더 이상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처럼 다가올 것이다.




이원율


[헤럴드경제] 기자이자 미술·역사 스토리텔러.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뒤 문화예술에 관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누적 조회 수 2,500만 회 이상인 화제의 칼럼 '후암동 미술관'을 쓰고 있다. 매주 7만 8천여 명 구독자가 기다리는 이 코너에서는 미술과 함께 역사, 과학, 문학, 종교, 철학 등 교양을 광범위하게 다룬다.


"미술은 인생의 해상도를 높인다"라는 말을 믿는다.


저서로는 [여름이라는 그림] [마흔에 보는 그림] [무서운 그림들] [결정적 그림] [사적이고 지적인 미술관] [하룻밤 미술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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