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지만 따뜻한 관계, 멀리서 한결같이 응원하는 마음으로

by 아트인사이트


“나 OO야, 요즘 잘 지내?” 2년 만에 연락이 왔다. 아니, 안부를 묻는 건 3년 만인가?


답장이 빠르지 않은 편이지만 오늘만큼은 빠르게 답을 써서 보낸다. “잘 지내려고 노력 중이야! 요즘 어떻게 지내?” 연락을 보자마자 답했음에도 실은 15분이 지나서 보낸 답이라 다른 할 일을 하면서 기다리려던 찰나, 바로 답이 오며 우리는 연락을 실시간으로 이어갔다. 왜인지 속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차올랐다. 반가웠다.


멀리서 응원하는 존재들이 있다. 실제로 만난 날들은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지만 이따금 연락을 주고받는다. 새해 인사의 방식이기도, 누군가의 생일이기도 하고, 그저 이유 없이 상대가 떠올라 연락하기도 한다. 어떤 상황이 연락으로 이어지던 기쁘고 반갑지만, 마지막 경우는 더 귀하다. 한 공간 한 시간에 함께 했던 날을 지나 각자 다른 길을 나아가고 있음에도 어째서 당신이 떠올랐는지, 내가 떠올랐는지 생각해보면 참 놀랍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계는 얕을지 모른다. 만나서 밥을 먹고 웃고 떠들며 쌓는 정은 충분히 얻지 못했으니까. 우리는 함께 가본 맛집보다 못 가보고 저장해둔 곳이 더 많으니까. 얕지만 따뜻한 그 관계들이 어디서도 채우지 못한 온기로 다가오는 날이 있다. 오늘처럼 기대하지 못했던 새해 안부 인사는 제법 뻔하게 돌아가던 날씨처럼 흐린 하루에 햇살처럼 미소 짓게 했다. 얕으므로 기대도 없고 그래서 더 모든 말이 더 소중하고 고맙게 전해진다.


서로에게 원하는 것 없이 그저 그 사람의 연락이 반갑고, 당장 만날 수 없더라도 현재 당신이 있는 그곳에서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이 양방향으로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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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관계의 깊이를 함께 보낸 시간이나 빈도로 이야기하곤 한다. 게리 채프먼 박사가 제안한 사람들이 사랑을 표현하고 느끼는 '5가지 사랑의 언어'에 함께하는 시간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것을 관계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관계는 시간의 밀도로 설명되지 않는다. 대신 기억의 온도로 이해된다. 만나지 않아도 전해지는 온기는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곁을 허락한다.


짧은 시간 보아도 깊게 알게 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실제로 만난 시간은 적어도 연락으로 관계가 깊어지는 사람 또한 존재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실제로 만날 정도로 가까이서 에너지를 공유하지 못했으니 우리는 친한(가까이 사귀어 정이 두텁다) 관계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진심으로 서로에게 말하고, 긴 시간 한결같이 그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각자의 인생을 지금까지 살아왔다. 짧게는 2년, 길게는 12년 동안이다.


진심과 한결, 그리고 적당한 거리가 우리를 현재의 자리에 있게 했다고 정리해본다. 가까운 누구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한순간 털어놓을 수 있을 만큼 서로에게 진심으로 대하고, 언제 다시 연락해도 반갑게 맞아주는 반가움이 양방향으로 존재한다. 사람 간의 거리는 혼자서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한 걸음 다가가면 물러설 수도 있는데 우리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지키고 있다. 어떤 인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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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참 좋아해서 학창 시절에는 등교하면서 책을 읽던 학생이었는데 요즘은 영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 작년에 한창 책 읽을 다짐을 하고 이것저것 집에 보관하고 있는 책부터 읽던 때 꽂아둔 색색의 책갈피들이 생각난다. 오랜만에 다시 그 책을 펼치게 된다면 작년에 재밌게 읽다가 꽂아둔 책갈피를 만나게 될 것이다.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갈 수 있게 하는 반가운 책갈피.


오늘 받은 친구의 연락도 마치 책갈피 같았다. 내 인생에 한 페이지를 조용히 표시하고 있다가 이렇게 반갑게 등장하는 것이다. 일상에 지쳐 평소에는 보지 못하다가도, 문득 연락이 오면 우리 관계의 페이지가 멈췄던 자리에서 그대로 펼쳐진다. 함께 했던 고등학교 급식실의 추억으로, 책을 읽고 나누던 모임 시간으로, 설레는 새 도전을 앞둔 그 따뜻했던 봄날로 다시금 돌아간다.


세상에는 가까이 있지 않아도 조용히 서로를 응원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삶이 조금 더 다정하고 풍성해진다는 것을 알게 해준 친구가 오늘 하루도 잘 살아냈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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