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산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유 없이 걷고 싶어서 괜히 멀리 있는 편의점에 가거나, 커피를 사 들고 동네 한 바퀴 걸었다. 날이 풀리니 이럴 바엔 봄을 즐길 겸 공원에 가기로 했다. 퇴근 후에도 가끔 공원을 걸으니 점심에는 퇴근길과는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점심 산책 초보자는 산책 루트 파악에 실패했다. 3월 중순부터 양산을 들고 있다니 산책 전문가의 기운이 물씬 풍겼다. 한참 앞서가는 짙푸른 양산을 쓴 중년 남성이 있는 무리를 뒤따르며 열심히 걸었다. 걷다 보니 깨달았다 회사에서 꽤나 멀어지고 있음을. 되돌아가도 먼 건 매한가지라 이렇게 된 거 쉬지 않고 파워워킹하기로 했다.
보이면 안 될 건물이 가까워지자 돌아가는 길은 더 험난할 것이 예상되었다. 이것은 산책인가 경보인가, 가까스로 1시 정각에 회사에 복귀했다. 돌아와서 산책 회차 지점에서 본 건물을 검색해 보았다. 회사에서 왕복 40분이란다. 나는 30분 만에 회사 출발에서 복귀까지 해낸 것이다.
그다음 산책에서 깨달았다. 손에 커피를 든 사람을 따라 걸어야 산책 난도가 낮다. 이들은 공원을 어슬렁거리는 이들이었다. 커피 타임에 파워워킹은 어울리지 않는다. 커피를 든 직장인 무리를 쫓아가면 평탄하고 넓은 길이 나온다. 가다 보면 중간에 쉬기 좋은 벤치도 있다. 최소 2인 1조, 사람이 많을수록 복잡한 길로 가지 않는다. 이들이 계단을 내려간다? 그곳에는 탄성바닥재가 깔린 산책로가 있다. 따라가서 힘들 일은 없다.
공원 산책에서 알아야 할 건 하나 더 있었다. 낡고 지친 직장인이 갑자기 어딘가를 보면서 웃고 있다면 그 시선 끝에 산책 나온 강아지가 있을 확률이 몹시 높다. 열심히 걷는 강아지부터 걷기 싫어 주인 품 안에 안긴 강아지까지 다양한 성격의 강아지들을 구경할 수 있다. 애니멀 테라피가 가능하다. 강아지 산책의 중요성을 설파한 강선생님께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서 잘 걷고 다니냐고 묻는다면 일단 잘 걷기는 한다. 걷는다. 저기 벤치 대신 놓인 2인용 나무 그네까지 말이다. 흔들리기는 하지만 놀이터 그네마냥 흔드는 용도로 만든 건 아닌 그런 흔들 벤치. 살며시 흔들리는 그네에 앉아 부드러운 바람을 맞고 있노라면 점심 먹은 직후라 약한 멀미가 날 것도 같지만 일단은 힐링이다.
직장인이 어디서 또 이런 한가한 점심 휴식을 보낼 수 있겠는가. 회사로 가는 큰 길에서 52분 신호에 길을 건너야 무사히 점심시간 내 복귀가 가능하므로 휴식 시간은 길지 않다. 열심히 걸어가서 눈 감고 노래 한 곡 정도는 듣는다. 소중한 시간이라서 선곡도 신중해진다.
흔들 벤치는 수가 많지 않아서 점심시간 중에는 약간의 경쟁이 있다. 그네가 동심을 자극하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가 많다. 그 앞에 썬 베드처럼 길쭉한 1인 벤치가 있어서 그네 경쟁에서 밀려났을 때는 이쪽으로 간다. 두 다리 쭉 뻗고 머리를 기대로 늘어져있노라면 이대로 잠들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음 같아서는 샌드위치 사다가 벤치에서 먹고 쉬면 좋을 것 같지만 아직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한창이라 입으로 들어가는 게 음식뿐만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일상에 봄이 스며들기 전에 공원에서 발 빠르게 봄 한 조각을 찾아내려고 했던 건데 봄이 덜 찾아왔을 때 급한 마음에 앞서나갔다가 소소한 '쉼'을 찾았다. 이곳에서 몇 년을 일했고 공원은 수십 년간 그곳에 있었는데 숨 돌릴 잠깐의 시간과 공간이 거기 있으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아직도 세상은 이렇게나 넓어서 일상을 구석구석 즐기기만 해도 바쁠 것 같다.
올해의 1/4가 지나가고 있다. 확실한 수확이 있어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