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유 없이 쓰는 것도 충분히 매력적인 동기가 된다. 나 같은 경우 어떤 일이든 일단 하고 나서 뒤늦게 이유를 생각해보는 편인데,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하고 싶다'는 내게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했기에 끊임없이 의미를 찾으려 애썼다.
며칠 전, 친구가 자기가 속한 팀이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워크북 검수를 부탁했다. '완벽주의'와 관련해서,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유발하는 완벽주의를 완화해 보자는 취지의 프로젝트였다.
완벽주의는 내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스로 완벽주의 성향이 없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그것이 나를 갉아먹고 있다고 느낀 적도 없었다. 일정 수준의 완벽주의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모든 일에는 적당한 스트레스가 필요하다고들 하듯이. 굳이 따지자면 일적인 면에서 내 완벽주의는 아주 적응적인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찜찜했다. 결국 스스로 판단한 것이라는 점에서, 내가 되고 싶은 나를 투영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서두에 언급했던 글쓰기에 관한 생각으로 이어지게 된 계기는 ‘여가’ 관련 완벽주의 내용을 읽게 되었을 때부터이다.
아주 예전에 라디오에서 한 뮤지컬 배우가 이와 관련해서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뮤지컬이 직업인 사람으로서, 취미를 가지더라도 악기 연주처럼 결국에는 언젠가 공연에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일종의 강박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것도 완벽주의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전공자라 더 조심스러운 마음이다), 워크북에서 여가와 완벽주의 항목을 읽고 문득 이 이야기가 떠올랐었다.
완전히 잊고 있었다. 이 얘기를 떠올린 순간 무언가를 발견한 듯 단순히 진로 고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금 하고 있는 전공 공부를 ‘일’이라고 치고, 그 외적으로 하는 활동들을 ‘여가’라고 보았을 때, 대학에 들어온 후 이 ‘일’이 진로가 될 가능성보다 그 외적으로 하는 활동들이 진로로 이어질 가능성을 더 크게 보고 있었다. 아주 막연하게.
그래서일까, 평범하게 즐길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동아리 활동을 하고, 기타를 연주하고, 공연을 관람하는 것, 물론 행복하다. 이들은 내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항상 ‘불편함’ 정도의 감정이 일렁대고 있었다. 결국 나도 완벽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지금 하는 일들이 다 쓸모가 있을까. 미래에도 계속 좋아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나라는 사람이 ‘완벽히 아카이빙’되길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떠한 지향점이 있으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곳을 향해 똑바로 걸어가는 것. 그렇기에 그 경로에서 벗어난다고 느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회의감이(그것이 비록 티끌만 하더라도)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지금처럼 그 도달점에 대한 고민이 극에 달한 시기에는 더욱.
이제 글쓰기 얘기를 해보자. 그럼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사실 이러한 상황이 마냥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완전한 즐거움의 상태를 잘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이 고민하고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은 내 삶에 깊이감을 더해주는 것 같아 오히려 반갑기도 하다.
결국 이게 적성에 맞는 것이라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분명해진다. 내가 즐기고 경험하는 것들을 피가 되고 살이 되게 만드는 것. 내가 나의 글쓰기에 부여한 첫 번째 의미다. 최근 좋아하는 뮤지컬 작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극을 보면서 자신의 마음 하나를 떠올린다면, 그게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거라고. 무엇이든 하되, 거기서 보고 느낀 것들이 내 삶의 여정에 글로써 의미가 새겨진다면, 더 이상 탈선이 아니다. 언제나 글쓰기가 숙명적으로 느껴졌던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게 꼭 글이어야 하느냐.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지만, 글은 아카이빙의 아주 훌륭한 도구가 된다. 내가 부여한 두 번째 의미다. 쓰인 글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주로 하는지 알 수 있는 것처럼, 결국 그 글들은 모여 또 다른 내가 되어 길을 밝혀준다.
결국 내가 선택한 방법은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모든 것을 끌어안고 가는 것과 다름없다. 피곤하고,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 모든 경험이 하나의 목적지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 즉 ‘나’라는 아카이빙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없기에 모든 것에 의미를 새기려 한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는 내 경험에 의미를 남겨줌과 동시에 그 자체로도 하나의 의미가 된다. 그 목적지가 무엇이든, 그렇게 조금씩 나를 가꾸어 나간다면 어떤 것이든 만족할 만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