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해 일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날의 컨디션과 기분, 마주하는 사람, 그리고 예기치 못한 사건들에 의해 우리의 하루는 180도 뒤바뀌곤 하기 때문이다. 어떤 하루를 보냈느냐에 따라 삶을 향한 시선은 한없이 긍정적이었다가도, 어느 순간 비관으로 기울기도 한다. 내일의 내가 삶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그 누구도, 심지어 나 자신조차 장담할 수 없다.
이러한 삶의 모습은 피아노 연주와 닮아있다. 연주자의 기량과 컨디션, 그리고 그날 피아노가 얼마나 정교하게 조율되었는지와 같은 변수들이 선율의 색채를 결정짓는다. 때로는 환상적인 울림을 선사하다가도 별안간 엉망이 되어버릴 수 있으며, 기쁨도 절망도 아닌 모호한 순간들이 그 사이를 메우기도 한다. 우리는 어쩌면 각자 다른 모양의 피아노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연주하는 음악가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연주를 멈추고 연습의 시간을 갖기 위해 돌아가고, 누군가는 서툰 실력이나마 용기 내어 첫 화음을 짚어본다. 그렇다면 일생을 피아노에 바친 거장, 세이모어 번스타인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그만의 ‘인생’을 연주했을까.
아름다운 연주 뒤 무대 공포증
‘세이모어 번스타인’은 오랜 시간 무대를 호령하며 명성을 떨친 거장이다. 늘 완벽한 연주만을 들려줄 것 같았던 그는 쉰 살이 되던 해, 돌연 고별 연주회를 준비하며 대중 앞에서의 연주를 중단한다. 이는 단순한 변심이 아니었다. 사실 그는 오랫동안 무대 공포증과 싸워왔으며, 타인의 시선이 주는 압박감은 그에게 형언할 수 없는 괴로움이었다. 찬사와 비난 그 무엇도 그의 공포를 해소해 주지 못했고, 결국 이러한 고뇌는 그가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그는 ‘프로’의 세계에 환멸을 느끼며, 진정한 예술가란 오히려 ‘아마추어’여야 한다고 믿기 시작한다. 그가 정의하는 아마추어란 상업적 목적이나 성공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연주 그 자체를 사랑하는 음악가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대중의 입맛에 맞춘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현실은 창작자에게 깊은 회의감을 안겨주곤 한다. 생계를 위해 신념을 굽히고 다수의 취향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은 예술을 향한 순수한 열정마저 스트레스로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는 진정 자신만의 특색을 버리고 타인의 시선에 맞춘 삶만을 연주해야 하는 것일까.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
세이모어가 말하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우리의 삶에 대입해 보자. 인생에서의 ‘프로’가 사회적으로 공인된 성공을 이뤄낸 사람이라면, ‘아마추어’는 그 반대의 지점에 서 있는 이들을 일컬을 것이다. 보통 아마추어는 실력이 부족한 초보로 여겨지곤 하지만, 세이모어는 오히려 프로의 삶 이후에 아마추어 같은 인생을 추구했다. 압박감을 떨쳐내고 진정한 예술을 누리기 위해, 그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연주를 시작한 것이다.
타인의 기대를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의 신념을 따르는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성과를 위해 끊임없이 무대에 올랐던 과거를 뒤로하고, 진정 원하는 예술이 무엇인지 고뇌하고 실천하는 삶. 어쩌면 현대인들은 성공을 좇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불안정하고 미숙한 내면을 온전히 긍정 받길 원하는 ‘아마추어적 자아’를 마음 한구석에 품고 사는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는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이야기가 짧게 언급된다. 그녀는 내면에 평범한 삶을 원하는 ‘마리아’와 대중이 우러러보는 ‘칼라스’라는 두 존재를 품고 있었다. 세이모어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부족함에 불안해하는 내면의 자신을 방치하지 않고, 연습과 노력을 통해 자아 간의 통일을 추구했다. 그에게 있어 삶과 연주의 핵심은 바로 ‘균형’과 ‘조율’이었다. 잘 조율된 피아노가 한층 아름다운 소리를 내듯, 내면의 일치를 이뤄냈을 때 비로소 편안한 마음으로 예술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을 연주한다는 것은
삶을 연주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이모어의 피아노와 같다. 균형과 조율이 중요시되며, 연주자에 따라 각기 다른 소리를 내는 과정이다. 멀리서 보면 다 같은 인간처럼 보일지 몰라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페달을 밟는 강도와 건반을 누르는 자세가 모두 다른 저마다의 음악가가 존재한다. 우리는 성공을 좇는 프로의 삶을 열망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나만의 취향과 만족을 추구하는 아마추어의 삶을 꿈꾼다. 이 두 자아는 어느 하나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본모습이다.
인간은 인생이라는 피아노를 마주한 음악가다. 우리는 건반을 누르며 자신만의 신념과 목표를 찾아가고, 때로는 완벽을 추구하다 압박감에 무너지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연주를 멈추지 않았던 세이모어처럼, 우리 역시 삶을 지속해 나갈 수 있다. 처음에는 비록 잘 조율되지 않은 피아노일지라도, 자신만의 소리와 화음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도 하며 음악을 고뇌하는 크고 작은 예술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