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 대상을 책임지고 소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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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에피소드부터 우리는 문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늘 다룰 소설은 윤이형 작가의 단편집 『큰 늑대 파랑』 6번째 수록 소설 「로즈 가든 라이팅 머신」이다. ‘로즈 가든 라이팅 머신’은 소설을 번역(우리가 생각하는 번역과는 다른 의미의)하는 노트북이다. 노트북에는 부정적인 감정이나 정서, 그런 걸 다른 걸로 싹 바꿔주는 (가시 뽑기) ‘로즈 가든 프로그램’이 있다. 프로그램을 거치고 나면 아무리 우울하고 지질한 글에도 장미꽃이 핀다. ‘이 기계를 사용해도 되는 걸까?’
소설 속 두 주인공 몽식이와 이비는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소설을 쓰는 일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다. 그리고 그들의 고민을 이어받아 H와 N은 ‘글을 쓰는 일과 예술 창작’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이번 대담을 통해 우리에게도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신념’이랄 게 생기길 소망한다.
H N, 너는 로즈 가든 라이팅 머신이 있다면 사용할 거야?
N 난 사용하지 않을 거야. 아마 사용을 안 하는 걸 수도 있지만, 못 하는 걸 수도 있을 거 같아. 내가 생각지도 않은 것을 써재끼는 기계는 무서워. H는?
H 난 사용할 의향이 있어. 그것의 선택적 사용이 가능하다면. 소설 속 두 주인공도 계속 이걸 ‘뽀개자’고 하잖아. 왜냐하면 몽식이는 통제가 어려웠으니까. 하지만 통제할 수만 있다면 재밌는 프로그램일 거 같아. 창작과는 별개로.
N 사실, 그런 프로그램을 가지고 창작이 아니라, 단순한 보고서나 과제 글을 쓰는 것이라면, 내 문장을 일정 수준 예쁘게 바꿔주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닐 거 같아.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 이 기계의 사용에 대해 고민하는 건, 이들은 글을 창작하고 예술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창작자로서의 H라면 이 기계를 사용할 것이야? 창작을 하는 데에.
H 창작을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거 같아. N 말대로 내가 생각지도 않은 것을 써재끼는 거잖아. 더구나, 나는 요즘 들어 기계가 인간의 역할을 얼마나 더 대신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거든. 창작만은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야. 또 그렇게 남겨둬야 한다고 생각하고. N은 그럼 창작에서는 당연히 사용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N 응. 작품 속에서 몽식이는 한 인물 A를 창작하는데, 몽식이가 만든 A라는 인물은 비참하게 죽었을 뿐이었어. 하지만 로즈 가든 라이팅 머신을 거친 A는 정작 몽식이가 떠올린 적도 없는 이상향으로 향하질 않나, 영혼의 구원을 얻질 않나..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지. 몽식이가 전하고자 했던 비참함과 불행은 사라지고 아름다움만 남아버려. 몽식이는 이걸 ‘모독이다, 불쾌하다’라고 했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리가 창작하고자 하는 예술은 마냥 아름다운 무언가가 아니잖아. 오히려 마냥 아름답기만 한 건 조금은 기만적지 않을까. 예술이 누군가를 기만하는 데에 사용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또 창작자가 스스로를 기만하며 예술을 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어. 물론 어려운 일이고 누구나 조금은 자기 기만적이겠지만. 로즈 가든 라이팅 머신의 가장 큰 문제점은 기계가 인간 고유의 기능을 앗아갈 만큼 발전했다는 것보다는 인간 고유의 감정, 극한의 불행에 제각각 맞서왔던 고유함을 앗아간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해. 아주 무서운 기계가 아닐까.
H N의 말에 아주 동의 해. 이비는 기계의 존재를 알기 전까지만 해도 몽식이 특유의 아름다운 글을 좋아했잖아. 본인은 가지고 있던 감정을 아주 추한 형태로만 표현해왔고, 그 표현들이 나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그런데 이비는 본인이 생각한 이상적인 글이 사실 기계가 만들어낸 거짓된 글인 것을 알고, 아무리 추악해 보인다 하더라도 본인이 쓸 것을 찾아가야 한다는, ‘글을 쓰는 신념’에 대한 깨달음을 얻잖아. 정확히 ‘글에 쓰는 신념’이라는 표현은 없지만. 이비가 말하는 ‘느낌은 꽃다발에 상응하는 어떤 것’이 바로 이 깨달음이라고 생각했어. N의 생각은 이런 맥락에서 나의 생각과 아주 비슷하다고 생각해. N이 이비가 얻어간 것에 대해서 정확히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N 이비가 얻어간 것이 글을 쓰는 일에 대한 신념일 거라는 H의 생각과 나도 같은 생각을 했어. 이비는 ‘순수하게 독창적인 것은 사실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또 뭔가를 하나 더 만들어 가만히 놓아보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어. 나는 이 말이 글을 쓰는 일에 대해 우리가 가진 아주 고전적인, 그리고 그만큼 고유하게 지켜져야만 하는 믿음이라고 생각해. 아마 윤이형 작가가 글을 쓰는 일에 대한 작가 자신의 생각을 이비의 말을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낸 거 아닐까.
H 나중에 몽식이가 공모전에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하잖아. 그래서 몽식이는 그 기계를 썼을까 안 썼을까. N은 뭐라고 생각했어?
N 내 생각에는 몽식이는 아마 썼을 거야. 그 기계에 중독되었잖아. 그리고 몽식이는 로즈 가든 라이팅 머신을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 같았어. 로즈 가든 라이팅 머신이 무섭지만, 무서운 만큼 위대하고, 그래서 자꾸 쓰고 싶고. 아마 그러지 않았을까? H는 어떻게 생각했어?
H 맨 처음 읽었을 때는, 사용하지 않았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거 같아. 위에서, 기계를 유용하게 쓰면 사용할 수 있다고 얘기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계를 쓰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나봐. 몽식이는 창작하는 사람이니까. 몽식이가 신념 있는 작가로 남는 해피엔딩을 바랐던 거지. 근데 다시 읽을 때는 N처럼 썼을 거라고 생각했어. 이비가 남겨준 편지에도 현명하게 쓰라고 적혀있었고. (사이) 근데 그렇게 해서 창작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일까? 그래도 되는 걸까? 그렇게 해서 돈을 벌어도 되나? 글을 쓴 작가의 이름으로 몽식이를 올릴 수 있을까? 현명하게 쓴다는 것에 대한 기준도 잘 모르겠고. 흠. N은 어떻게 생각해?
N 휴. 쏟아지는 질문. 사실 난 창작하는 일에는 가장 인간적이고 고유한 영역이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해.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런데 누군가 몽식이처럼 기계를 사용하고, 그래서 양질의 글을 생산해내고 있다면, 사람과 예술에 실망하게 될 거야. ‘가장 인간적이고 고유한’ 영역이라는 것에 적당히, 정도껏, 그런 부사가 붙으면 안 되는 거잖아. 적당히 기계의 힘도 빌리고, 적당히 인간미도 섞고. 그게 과연 가당키나 할까. 우리가 믿어왔던 예술은,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내고 싶은 예술은 적당히 잘 써낸 무언가가 아니잖아. 남들 보기에 아름다울 무언가를 원했던 건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난 지독하고, 슬프고, 참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것,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그 고유한 것을 원했던 거라고 생각해. 현명하게 쓰는 거보다 진실 되게 쓰는 걸 원해왔고... 정당성을 따지기 보다는 진실성을 따지고 싶고, 진실한 일과 현명한 일은 다른 거라고도 생각하고. 아무튼 기계로 번역한 글이 현명할지는 몰라도 진실하지는 않다고 생각해. 그런 예술은 원하지도, 하고 싶지도 않아.
H 나도 그런 면에서 몽식이가 그 기계를 사용해서 창작을 했다면, 그리고 그것으로 누군가 독자가 생겼다면, 굉장히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해. 그것은 글에 대한, 그리고 독자에 대한 배신이고, 어쩌면 글을 쓰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배신일 수 있다고 생각해. 몽식이도 얘기하잖아. 본인이 쓴 글이 아니라고, 거짓이라고.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어떻게 그걸 우리가 납득할 수가 있겠어. 그런 점에서는 아주 일부의 마음이 몽식이가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길 바라는 것도 있어.
N 나도 H처럼 몽식이가 로즈 가든 라이팅 머신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그것의 중독성에 취해버린 몽식이를 어쩐지 신뢰할 수만은 없네.. 「로즈 가든 라이팅 머신」은 얼핏 두 인물을 통해서 ‘글을 쓰는 것’과 ‘예술을 창작하는 것’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가능성을 제시하는 거처럼 보이지만, 실은 다양한 가능성, 그딴 거 됐고, 글을 쓰는 일에 있어서는 고집스러운 신념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거 같아. 나는 윤이형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데, 아마 윤이형 작가 또한 그런 신념을 가지고 고집스레, 묵묵히 써왔던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
H ‘나는 어떻게 글을 써야할까,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써야할까’ 그런 생각이 부쩍 드네. 적어도 이 대담을 하고 옮겨 적는 일을 하며 우리가 고민한 만큼, 읽는 사람들도 함께 고민해 줬으면 좋겠어.
N 맞아. 글을 쓰는 일에 관해서 만큼은 언제나 솔직하고 싶고, 그 솔직함에서 비롯한 글들이 가진 힘을 믿어. 언제나 믿어왔던 거 같아. 「로즈 가든 라이팅 머신」을 읽으면서 ‘좋은 글, 우리가 써야하는 글, 그리고 인간적이고 지질하고 추악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오히려 아름답게 쓸 수 있는 글’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어. 몽식이가 등단한 이야기만 나오고 이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작품 속에 드러나지 않지만, 난 이비가 가지고 있는 추하고, 한없이 우울하고, 때로는 자기 글의 인물을 마구 괴롭히던 마음들에서 오히려 인간의 고유한 이야기들이 쓰여 질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아마 이비는 좋은 글을 쓸 거야.
H 우리도 좋은 글을 쓰자.
H는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있어서 가장 먼저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N은 그 고민을 H와 가장 잘 나눠 줄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기 때문에 H는 망설임 없이 이 주제를 선택할 수 있었다. N은 예술, 문학, 그리고 글을 쓰는 일에 대해 종종 고민하지만 항상 막연한 믿음을 되뇌어보았을 뿐, 이번 대화에서처럼 그 믿음이 무엇인지 확답할 수 없었다. H의 질문, H의 고민을 나누며 N은 어쩐지 글을 쓰는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 진 거 같다고 느꼈다.
고민한 만큼 좋은 글을 읽는 사람, 좋은 글을 쓰는 사람, 좋은 글의 힘을 믿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글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이주현, 양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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