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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Sep 21. 2018

[명당], 끝없는 욕심과 무척 나약한 인간

[관상], [궁합], [명당]에 이르는 역학 3부작

 

 

* 브런치 무비패스로 시사회를 관람한 뒤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조승우, 지성, 김성균, 백윤식의 캐스팅만으로도 이 영화는 꼭 보고 싶었다. 게다가 요즘 <라이프>를 통해 (새삼스럽게도) 재발견하게 된 배우 조승우 때문이라도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족이지만, 내가 라이프에서 건질 수 있었던 건 원진아의 깨끗한 이미지와 조승우라는 배우였다.


조승우가 보여주는 사극톤이 궁금했다. 그리고 그는 이 영화에서 완벽한 톤을 유지하고, 들뜨지 않는 연기로 극을 이끌어간다. 화정의 사장 구승효는 없고 나라와 임금을 위하는 지관 박재상만 남았을 뿐이다. 조승우의 연기력은 매번 새롭고 짜릿하게도 최고다.

   

 

<명당>은 천하의 명당을 두고 펼치는 권력자들의 암투에 관한 이야기다. 이대천자지지, 2대 걸쳐에 왕이 나온다는 자리로 조상의 묘를 옮겨 후손들이 득을 보려는 것이다. 김병기(김성균)과 김좌근(백윤식)의 집안은 이미 아무도 모르는 좋은 곳으로 묘를 옮겨 왕을 위협할만큼 위세를 떨치던 중이었다. 이들은 왕조, 나라, 백성보다는 자신들의 안위가 더 중요했다. 권력만을 탐하는 자들에게서 벗어나 박재상(조승우)과 구용식(유재명)은 소소하게 백성들의 여러 요구 - 혼인, 자녀, 재물 등의 터를 봐주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유독 눈에 띌 만큼 뛰어났던 박재상의 재능은 이내 흥선(지성)에게 눈에 띄고, 박재상은 국가만을 위하겠다던 본래의 목표에서 점점 이탈해 권력 싸움의 소용돌이로 들어가게 된다.

 

<관상>, <궁합>, <명당>

 

이 작품은 <관상>, <궁합> 제작진의 역학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내가 왕이 될 관상인가-" 비열하게 말했던, 검은 가죽을 뒤집어 쓴 세상 최고 섹시 수양대군의 대사가 유명한 바로 그 작품을 만든 제작사다. 감독은 매 작품 바뀌었다. 이쯤 되면 제작사의 동양 철학, 한국 역학에 대해 대단한 애정이 느껴진다. 대체 왜, 과학적 근거도 모호한 역학 3부작이었을까?



주피터필름의 주필호 대표는 “사람들은 누구나 어떻게 살 지 미래를 고민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그 운명을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자신이 모르는 것, 아직 경험하지 못한 미래에 대한 관심을 갖기 마련이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서양에서는 타로점이나 별점 한국에서는 명리학에서 파생된 역학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한다”며 역학 시리즈를 기획한 의도를 밝혔다. (뉴스엔, 18.01.26)

 

 

그러니까, 이건 인간의 나약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오는 심리가 요즘의 것이 아니며 이전에도 쭉 그래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래를 궁금해하고 대비하려는 것은 과학과 기술의 영역이 아니라 본능의 영역이므로.

   

 

<관상>, <궁합>, <명당>은 모두 왕가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왕이 되고 싶은 자와 왕위를 지키려는 자의 이야기(<관상>), 극심한 가뭄을 해결할 유일한 길은 공주의 결혼이라고 믿는 왕(<궁합>), 그리고 권력 없는 왕을 둘러싼 강한 권력의 소유자들(<명당>)이다. 왕가는 조선 사회에서 가장 높은 지위의 집단이었다. 이 높은 지위와 권력 집단이 현대 사회의 과학적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역학'에 의지하며 나라를 꾸리거나 나라를 전복시키려 한다. 이는 영화에서 다루는 역학이 상당히 중요하며, 근거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저렇게 강한 사람들도 역학에 저리 집착했으니 말이다. 이 포인트에서 관객들은 이미 관상이고 풍수지리고, 이것들이 가진 과학적 사실에는 관심을 잃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남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남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현대 과학이 밝히지 못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으며, 그것이 종교의 모습을 하기도 하고 역학의 모습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큰 의존도나 정확성을 보였다는 것은 첫째, 그만큼 조선이 청의 신문물 혹은 과학에 무지했으며 둘째, 왕가도 도세가도 하루하루 큰 불안감을 안고 살아갔다는 것이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힘이란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그들만의 과학, 역학이 필요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인물들 모두가 각자의 욕망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박재상(조승우)은 복수와 나라의 번영, 김좌근(백윤식)은 본인의 번영인 셈이다. 끝없는 욕망은 결국 왕의 자리까지 넘보고 당시 가장 큰 죄라고 여겨지는 불충, 역적의 마음까지 품게 한다. 이 때 참 재미있었던 점은, 역적의 자리까지 넘볼 만큼 간이 큰 사람이 조상의 묘를 옮기는 데에 가장 큰 마음을 쓴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풍수지리에 의존했고, 그만큼 불안했던 것이다. 본인이 아닌 다른 것에 대한 큰 의존성은 결국 자신의 능력 부족 혹은 자신감 부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무척이나 나약한 인간. 그러나 여기서 유일하게 나약하지 않은 인간 - 그러니까 다른 것들을 믿지 않고 스스로를 믿는 인간은 초선(문채원)이다. 물론 초선 또한 풍수지리를 믿었기에 박재상을 흥선에게 연결하고, 후에도 다른 일을 꾀했겠지만 초선은 최소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한다. 하지만 초선의 캐릭터는 정말 소모적으로 사용된다. 아아, 김혜수를 데리고 이미 제작진은 <관상>에서 기생의 다재다능함, 뻔뻔함, 능수능란함을 보여준 바 있었다. 그 수많은 남성배우 속에서 유일한 여성배우는 김헤수였고, 여기서는 문채원이 유일하다. 또 다시 기생으로 등장한다.


모든 배우를 남자로 구성하기는 아쉽거나 눈치가 보이니까 여자를 한 명 넣은 것처럼 도구적으로 - 그러니까, 남성 캐릭터의 감정적 동요를 불러 일으키고 중간에 문제를 살짝 해결하는 정도의 역할로 사용하는 것은 참 뻔한 여성 캐릭터 소비 방식이다. 전체 미디어에서 여성이 성녀 혹은 창녀라면, 조선시대에 여성은 기생이거나 중전이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다. 조선시대에는 여성의 인권이 바닥 혹은 땅밑이었으므로 기록도 얼마 없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쉽지 않겠지만 정말 묻고 싶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아직도 2010년을 사는 중)




이러니저러니 해도 명당은 분명 흥행할 것이다. 추석에 온가족이 가서 보기 좋은 영화이기도 하고, 스토리 진행의 민첩함이나 연출, 연기력 면에서 빠지는 부분이 없다. (헌종 역 이원근의 연약하고 아쉬운 연기는 고이 접어둔다면 말이다. 그러고 보면 김민재가 참 연기를 잘한단 말이지.) 적당한 쫄깃쫄깃함, 나만 몰랐던 반전 같은 것도 좋다. 다 보고 나면 좀 허무해지는 감이 있지만 그것은 영화 스토리에 대한 허무함이 아니라 '인생.. 몰가..'같은 허무함이다. 소재도 재미있고 조승우와 지성의 연기 합도 재미있다. 아, 그리고 주경문 교수님 혹은 창크나이트와는 완전히 다른 결의 연기를 보여주는 유재명도. (잘 보면 태인호도 나온다. 대사는 거의 없지만.) 유재명의 코믹 연기를 기대해도 좋다. (이러니 조승우랑 유재명이 그렇게 친하지!)


결국 모든 일은 스스로 하기 나름이라고 결론을 내리지만, 막상 영화를 보니 우리 조상님들은 어디 계신지 궁금하다. 그래서, 거기는 좀 명당인가?

 

 


 

 

글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김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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