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들의 온기에 대하여
추석이 불과 남지 않은 시점에 아빠가 차에 있는 CD들을 버린다고 말했다. 분명 내 기억 속 아빠의 CD들은 차 안에서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들이었다. 그런 CD들을, 차 서랍에 차곡차곡 쌓아놨던 CD들을 몽땅 버린다니. 더군다나 그 CD들은 추석이나 설날에 특히 빛을 발했던 것이었는데.
아주 어릴 때 지금같이 추석에 내려가는 차 안에서 질리도록 7080 노래들을 들었다. 그래서 난 추석을 생각하면 아빠가 밟던 악셀이, 그리고 그 발 뒤에서 거진 실신 모드로 실려 가던 내가 생각난다. 그 당시 옛날 노래들은 내가 듣던 노래들과는 또 달라서. 또 다른 감성인데 그 가사들이 좋기도 해 차창 너머엔 빽빽하게 들어선 차들밖에 없었는데도 그렇게 감성이 터지더라. 대구와 영월을 넘나들며 길고 긴 시간 동안 자고 깨며 들었던 것들. 아빠의 노래가 나의 노래가 되어 살처럼 붙었다. 이젠 고속도로가 뚫리며 그 정도로 걸리지 않는다. 고속도로 갓길에서 아빠도 한숨 돌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많이 변했다.
세월이 변하며 아빠의 플레이리스트들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똥똥한 카세트테이프였다 얇은 CD가 되었다. 지금은 CD 집어넣는 데도 없어졌다. 업그레이드된 간편 기능이라며 책자에 쓰여 있더라. 그것도 모르고 아빠와 우리 가족은 도대체 CD 넣는 곳이 어디냐며 차를 바꿨을 때 한참 헤매었다. 이젠 핸드폰으로 블루투스를 연결해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빠가 이번 추석 귀경길을 기점으로 하나둘 모은 CD들을 버린 것이다. (그걸 내가 회수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그저 나에겐 카세트테이프와 CD에 기입된 추억이 많아서. 그걸 넣으면 피유융 감아지는 그 소리가 아직도 선명해서. 옛것에 대해 진한 안녕을 고하고자 한다.
1988년에 데뷔한 변진섭. <홀로 된다는 것>, <네게 줄수 있는건 오직 사랑뿐> 등이 수록된 1집이 이미 히트를 쳤는데 그 뒤 나온 2집이 더 대박을 터트리며 발라드 황태자로 자리매김 했다.
누가 ‘사랑 노래’ 하면 변진섭이라 했다. 듣고 찾아보니 그의 노래 대부분이 사랑 이야기였다. 아빠의 CD에도 “변진섭… 사랑하는 이와 함께 부르는 행복 노래 12”라고 쓰여 있을 정도니.
사랑의 용기, 기쁨, 이별의 잔해를 그 목소리 하나만으로 그려낸다. 특히 꺾이며 올라가는 특유의 창법이 애절함을 더한다. 아마 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이만큼 히트하지 못했을 것이다. 참 신기한 게 어떠한 기교도, 음악의 큰 변주도 없이 잔잔한 피아노 반주에 목소리 하나를 얹어 그렇게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듣는 사람을 현재에 과거에 애절 파하게 만든다.
그의 목소리가 얼마만큼 힘이 있냐면, <너에게로 또다시>에서 “그 얼마나 오랜 시간을”이라는 도입부에서 탄식하며 “이거지!”라고 외쳤던 사람들을 TV에서도 자주 봤을 정도였다. 또 <그대 내게 다시> 노래 같은 경우는 “왜 망설이고 있나요” 부분이 터져 나올 때면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이 노래는 기타 도입부부터 나의 기분을 저 먼 심연까지 밀어 떨어뜨린다. 그리고 시작되는 양희은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쓸쓸 그 자체다. 같은 앨범에 수록된 ‘가을 아침’에서는 새가 지저귀듯 툭툭 뱉어오던 목소리가 이젠 사랑 그 후에 대해 논한다. 사실 가사를 보면 알고 있는 이야기지 않나. 그런데 희한하게 노랫말로 듣고, 양희은의 목소리로 들으면 다시 새롭게 들린다. 마치 “그래, 그랬지 사랑이란….” 하듯.
명실상부 가왕 조용필. 60년대부터 2000년대인 지금까지 아마 가장 많은 후배 가수들에게 불리고, 꾸준히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가수에 손꼽히지 않나 싶다.
이 노래는 아빠의 자동차 카세트테이프와 노래방 18번을 동시한다.
우리 아빠의 창법은 음의 엇박자다. 다른 말로 하면 음이 밀리고 박자 감각이 없다는 뜻이겠다. 가사는 저만치 가고 있는데 아빠는 홀로 자신의 느낌에 취해 부르다 가끔 힐끗 가사를 보고 따라잡기 격이다. 옛날에는 그런 아빠를 보며 박수나 탬버린으로 열심히 박자를 알려주려 노력했는데 그것이 따라잡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부러 따라잡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취해있다는 것을 안 뒤부터는 뒤에서 팔만 휘적댄다.
8, 90년대 수많은 명곡을 남긴 가수 김광석. 그는 우리에게 노래해주기 위해 태어났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너무도 힘이 들 때 그의 노래를 찾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이등병의 편지>, <사랑했지만>,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변해가네> 등 그 특유의 감성적인 가사와 가슴에 울려 퍼지는 듯한 목소리는 우리의 아프고 여린 마음을 두드린다.
아빠의 차를 타면 한 번도 거른 적 없이 흘러나오던 노래. 직접 김광석 노래 모음을 구운 CD를 발견한 걸 보면, 가장 애정 했던 가수였겠다. 그의 목소리는 가사는 참 좋다. 언젠가 내가 누군가에게 “김광석은 이런 가사들을 어떻게 썼을까.” 했을 때 그만큼 세상을 모든 마음으로 받아들인 사람이라 마음도 참 약했을 것 같다는 안타까운 짐작의 말을 들은 적 있었다. 그런 그의 노래를 듣는 건 감사한 일이고 행운일 것이다.
나는 아직 서른이 아니지만, 이 노래는 아마 연령대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 같다. 가사처럼 모든 것이 그런 것 같다. 늘 머물러 있을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나를 떠나버릴 것들. 잊혀지는 것들. 멀어지는 것들. 매일 이별하는 세상에서 사는 우리.
이 노래를 들으면 할머니의 청춘, 아빠의 청춘, 그리고 내 청춘을 관통하는 것 같다. 그것이 나의 청춘이든 아빠의 청춘이든 할머니의 청춘이든. 어떤 누군가든.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지금같이 추석에 내려가는 차 안에서 이 노래들을 질리도록 들었다. 소개한 것 외에도 나훈아, 신승훈, 노사연, 최백호 등 참 많이도 들었다. 난 그것이 참 좋았던 것이 내가 듣던 노래들과는 달라서. 또 다른 감성인데 그 가사들이 좋았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건 빽빽하게 들어선 차들밖에 없었는데 그걸 바라보며 그렇게 감성 터지더라. 대구와 영월을 넘나들며 길고 긴 시간 동안 자고 깨며 들었던 것들. 아빠의 노래가 나의 노래가 되어 살처럼 붙었다. 이젠 고속도로가 전보다 개통되며 그 정도로 걸리지 않는다. 고속도로 갓길에서 한숨 돌리던 아빠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많이 변했다.
아빠의 운전시간은 그때 비해 훨씬 줄어들어 편해졌지만, 나는 어쩔 땐 그 길고 지루했던 시간이 그립기도 하다. 자고 깨고를 반복하며 "멀었어?"와 엄마와 오빠와 끝말잇기를 했던 그때가. 그래도 시간이 가지 않아 자고 일어나고를 반복했던 그때가. 귀에 들려오는 분명하면서도 잔잔한 노랫소리가 그렇게 좋았던 것 같다.
영원한 건 없다는 걸 배운다. 그래서 이제는 옛것에 안녕을 고하려 한다. 아빠의 CD이자 나의 CD에게. 시간은 끝끝내 우리를 비껴가고 우리는 그것들을 지나가며 무언가를 내주고 바꾸며 살아간다는 것을. 나의 현재는 추억이 되고, 추억은 과거가 되어 때론 얄궂게 잊혀진다는 것을.
어릴 적 심어진 기억 속 고향도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엔 그저 머물러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 머물러 있는 집을 지키는 사람들이 떠나면 떠나는 것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늘 가면 마당에 깔린 돌멩이들을 뛰어다니며. 늘 가면 주는 빨간 꼬막무침이랑 동태전이랑 동그랑땡이랑 꼬치전이. 그 식혜가. 그 손맛이 그리울 날이 오겠지. 내가 나이를 들수록 그런 것들이 더 많아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아프다. 오래 슬플 것이다.
글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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