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인문학도는 ‘죽지 않아’!
‘인구론’이라는 신조어가 처음 등장한지도 벌써 3, 4년 정도가 되었다. 처음 이 단어를 접했을 때 나는 당연히 이 단어가 수업시간에 스치듯이 들어봤던 멜서스의 ‘인구론’을 일컫는 것인 줄 알았고, 이런 사회학적 고급 어휘가 신조어로 쓰이다니 참 세상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신조어 ‘인구론’의 진짜 의미가 ‘인문계의 90%가 논다’를 줄인 것이라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을 때, 이 말이 곧 나의 정체성과 멀지 않을 미래를 이미 ‘절망’ 그 자체로 정의 내려버린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당시 나는 ‘내가 재미있는 전공을 하자’는 패기와 소신으로 똘똘 뭉쳐 스스로 인문학 전공을 선택한 대학 새내기였기 때문이다.
시간은 어느덧 3, 4년이 지나고 새내기였던 나는 곧 졸업을 바라보고 있는 화석의 반열에 올라서게 되었지만 ‘인구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더 견고한 단어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옳을 수 있겠다. 청년층의 취업은 그 때보다도 몇 배는 더 힘들어졌고, 그 중에서도 문과생들 특히 인문학 전공자의 취업률은 최악을 넘어서 ‘더 최악’으로 치닫고 있으니 말이다. 그 말은 곧 나 또한 그 최악의 굴레에서 예외이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실로 골치가 아파지는 요즘이다. 졸업은 가까워오는데, 불안은 하고. 아마 전국의 모든 인문학 전공자들 또한 나와 같은 고민을 매한가지로 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요즘 여기저기에서 ‘인문학’을 찾는 목소리가 자주 들리곤 한다. 그리고 보통 이에 대한 언급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주제와 자주 엮어져 등장하곤 한다. 대충 요약해서 이 둘의 관계를 말하자면,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시대에는 여러 분야에 두루 통찰력이 있는 융합형 인재가 필요한데 여기에는 인문학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뭐, 그런 얘기다.
이 정도로만 들으면 ‘4차 산업혁명과 인문학’에 관한 이 예측들은 꽤나 낭만적인 얘기인 것처럼 들린다. 지금의 이 고비만 잘 넘기면 인문학도도 공학도들처럼 마음껏 배운 전공을 써먹을 수 있고, 인문학만으로도 충분히 자아실현을 할 수 있게 될 것만 같은 희망을 조금이나마 가져보게 하는 얘기로도 들릴 수 있다. 특히, 나와 같이 좋아하고 적성에 잘 맞는다는 이유 하나로 패기 있게 인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전국의 수많은 인문학도들에게는 그렇다. 얼마 전까지의 나도 마찬가지로 이런 기대에 조금은 부풀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것이 현실로 다가오기 훨씬 전, 곧 멀지 않은 미래에 내가 취업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에 있었다. 애석하게도 이전부터 일찍이 ‘융합형 인재’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이들은 인문학을 하는 ‘인문학도’가 아닌, 인문학’도’ 하는 이공계열 전공자를 선호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고, 또 지금의 현실이고, 조금 삐딱하게 바라보자면 앞으로도 현실일 것 같다. 그리고 이 슬픈 ‘진짜’ 현실에 대한민국의 인문학 전공자 중 한명인 내가 정말 뛰어들어야만 하는 거라고?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고, 지금도 부정하고 싶고. 이제 타인들 앞에서 내 전공을 말했을 때 내 미래를 거의 반자동적으로 걱정스러워 해주는 그들의 반응에 꽤 익숙해진 것은 덤이다.
하지만 이렇게 먹고 살 걱정을 꽤 심각하게 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여태껏 공부해오면서 단 한번도 내가 인문학 전공에 대해 후회해본 적은 없었다. 아직 냉혹한 현실의 맛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이기도 할 테지만, 인문학은 모든 학문 중에서 말 그대로 가장 ‘인간다운’, 매 순간 인간을 향하는 학문이었고 그래서 나는 인문학을 배우면서 적어도 불행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따지고 보면 행복한 쪽에 더 가까웠다고 할 수도 있겠다. 전공이 자신의 성향이나 적성과 맞지 않아 대학교 생활 내내 전과나 편입을 고민하는 다른 친구들에 비한다면 나는 그런 별다른 고민 없이 늘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전공 수업을 수강해왔고, 인문학도에게 크게 요구되는 능력 중 하나인 글쓰기도 원래부터 꾸준히 좋아하고 계속 해왔던 탓에 다행히 대학 생활 내내 글쓰기에 대한 큰 두려움 또한 없었다. 그리고 이건 여담이지만, 그 덕에 이렇게 오랜 기간동안 아트인사이트에 내 생각을 공유해올 수 있는 행운도 얻었지 않은가. 이렇게 적고 보니, 인문학이 생각보다 꽤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있었구나 하는 긍정적인 생각이 샘솟는 것도 같다.
작년 우리 과 전공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요새 세상 사람들이 다들 ‘인문학이 위기다’ 라면서 시끌시끌하게 떠들고 다녀.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인문학은 늘 위기였어.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터졌던 시대에도, 르네상스에도, 심지어는 고대 그리스에서도. 인문학은 만들어질 때부터 계속 비틀비틀 위기였던 말씀이야. 그러니까 인문학을 전공한다고 해서 쫄 이유가 없는 거야. 다 세상 사는데 필요하니까 아직도 인문학이 살아있는 거에요. 우리 과도 살아있는 거고. 또 앞으로도 그럴 거고.”
그렇다. 결국 교수님의 말씀처럼, 인문학은 언제나 위기였고 지금도 위기이며 앞으로도 위기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인문학 열풍’이 분다고 해서 인문학도들이 덩달아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어불성설이고 말이다. 하지만 매 순간 ‘인간을 향하는’ 이 학문은 앞으로도 틀림없이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치열한 고민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은 반드시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할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인문학을 믿어 보기로 했다. 물론 앞으로도 나의 장래와 취업에 대해서 걱정해주는 사람들의 다소 오지랖 넓은 시선은 계속될 것이고,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나의 미래에 조금은 더 걱정해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인문학이 지닌 가치를 응원하고 사랑하기에 인문학도인 나만이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이 세상에는 아직 많다고 생각한다.
나와 같은 전국의, 그리고 세계의 인문학도들에게 작은 응원을 보내 본다. 우리는 ‘인구론’의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늘 위기에 처해 왔던 인문학의 수호자이자 영웅들이기도 하니까. 부디 모두들 세상 앞에 인문학도라는 이유로 쫄지 말기를. 모든 인문학도가 난세에 피어나 세상을 행복으로 이끄는 주인공이 되기를.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금 소심하게 외쳐 본다. “인문학도는 오늘도 ‘죽지 않아’.”
글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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