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트인사이트 Sep 25. 2018

163cm, 23살

이제는 어쩌면, 보이지 않는 성장을 하고 있는 나에게






163cm



내 키는 163cm이다.

키에 대한 생각을 종종 생각한다.

매일 누군가 내 키를 물어오는 것은 아니고,

매일 키에 대해 생각해야 할 일이랄 건 없지만,

가끔 내 키라는 별것 없는 숫자를 생각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눈에 보이는 성장은 더 이상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학교 때까지 살던 집에는 거실에서 부엌으로 이어지는 곳에, 폭 20cm 정도의, 튀어나온 벽이 있었다. 내 몸보다는 폭이 훨씬 좁은, 홀로 튀어나와 있는 벽이었다. 벽의 아주 위쪽에는 갈색의 동그란 시계가 걸려있었다. 그 벽이 꽤 특별하게 기억에 남고, 이렇게 글로써 회자되는 이유는 그곳이 나를 비롯한 사촌 동생, 그리고 사촌 언니들의 키를 기록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벽에 몸을 딱 대고 서면, 머리 바로 위로 연필을 긋고 그 옆에 작게 이름을 쓰곤 했다. 선들은 우리가 커감과 함께 점점 시계에 가까이, 높아져갔다.


언제 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주 어렸을 때라 생각되는 다리 높이 정도의 선이 있는가 하면, 이때 키는 이랬지 하고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 선들도 있었다. 내가 몇 살 때 얼마만큼의 키였는지 기억할 수 없고, 이사를 가 그 벽은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나는 아마 140, 155, 160... 그렇게 커 왔을 거다. 언제 누가 재어주었는지는 때마다 달랐지만, 그 집에서의 어렸던 나는 내가 얼마나 자랐는지 원할 때마다 재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내 또래 사촌들의 키를 직접 재보기도 하고, 집히는 아무 펜과 색연필로 그렇게 머리 바로 위에 선을 그으면서, '내가 언니보다 크다! 우리 키 비슷하다!'같은 말들을 했다.


그리고 당연하게, 정말 당연한 일이지만 새삼스럽게, 난 그런 성장을 멈춘 것이다. 163cm이라는 키를 마지막으로 말이다. 나중에 더 줄어들기야 하겠지만 어쨌든 나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이 163cm이라는 키로 살게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많은 새로운 일들을 하게 되고 또 마음에 담고 비우기를 반복한 나에게 지금의 내가 물어오는 건, '그래서, 넌 지금 얼마나 컸냐'는 것이다. '그래서, 스물셋의 지금 너는 얼마나 컸니. 넌 얼마나 자란 거니. 지금 어디쯤 와있는 거냐'고 말이다. '내가 크고 있긴 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키가 자라는 걸 눈으로 확실히 보고, 발이 자랄 때마다 새 신발을 사던, 주위의 모두가 ‘너 진짜 컸다!’고 말해주던 그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내가 과연 크긴 했는지, 그걸 과연 누가 확인해줄 수 있는 건가, 이제 나만이 확인할 수 있는 성장을 하고 있는 거라면, 난 과연 어떻게 내가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건지.


어쩌면 내가, 꿈꾸던 20대가 되었음에도 끝없이 불안한 건 정말 많은 것을 하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성장 중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많은 걸 했지만 동시에 그들 모두가 성장으로 이어짐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내가 하는 모든 게 성장이라고, 나는 헛되게 살고 있지 않은 거라는 확인. 숫자로 나타낼 수 있는 거라면, 재고만 싶었다. 보이지 않는 성장이라는 터널 같은,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지 않는 그 공간에서 끝없이 걷고 헤엄치는 기분이었다. 나는 지금도 계속 크고 있는 게 맞는 걸까.




23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첫째, 어쩌면 위로 올라가는 내 성장은 끝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쨌든 나는 키라는 물리적인 성장을 멈추었고, 어떤 점에서는 ‘위로 올라가는’ 성장을 할 수는 있겠지만, 이제 내 성장은 이미 방향도, 성향도 바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로 올라가며 무럭무럭 쑥쑥 잘 큰다기 보다 이제는, 넓어지는 성장을 해야겠다는, 어쩌면 이미 하고 있었다는. 이젠 다만 더 넓어지라는 것 같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러다 실수도 하고…여행을 가고, 꽤 긴 날을 우울해하거나 내내 울어도 보고, 그러는 사이에 나는 넓어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안도감이 들기도 하고, 아 어쨌든 나는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넓어지고는 있었는지 모른다. 좋든 안 좋든, 내가 사랑하는 기억이었든 벗어나고 싶은 순간이었든, 항상 나는 넓어져왔다. 더 많은 세상을 경험한, 이제는 그게 나의 새로운 성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자전적이고, 우울감이 배어 있는 듯하지만

정확하고 깊이 있게 마음을 담아내는,

좋아하는 작가 신경숙은 그의 작품

<외딴방>에 이런 문장을 남겼다.



나이라는 건 숫자의 차례대로 먹는 것만은 아니다. 어느 날 열여섯에서 서른둘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열여섯의 내가 갑자기 서른이나 서른둘이 돼버린 건 그날 그 식당에서였다. 외사촌과 나에게 돼지갈비를 사먹이면서 먹지도 않고 돼지갈비 연기 속에 고단하게 앉아 있는 큰오빠를 봤던 그날,

나는 이미 지금의 서른두 살이 되었다는 생각.



내가 생각했던 키의 문제처럼, 나이라는 것 역시 내게는 순리에 맞게 하나, 둘씩 늘어가는 개념이었다. 그러니 난 이 문장을 보고 머리를 한 대 맞고, 또 가슴에 무언가 쿵 하고 떨어지는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실은 열여섯에서, 갑자기 어느 날 서른이 될 수도 있는 거였구나, 이 비밀 아닌 비밀을 알게 되고 나는 지난날의 모든 내가 떠올랐다. 나는 항상 커왔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지난 열다섯 혹은 그보다도 더 어린 시절에 이미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비슷한 감정과 스펙트럼으로. 분명 더 많은 게 내게 담기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것 역시 분명히 있다.


할 수 있게 된 능력이나 늘어난 지식 말고, 진짜 나라고 말할 수 있는 변하지 않는 그 무언가는 이미 예전에, 어린 나에게서부터 있었는지 모른다. 실은 성장이라고 할 만한 게 이미 그때 다 이뤄졌는지도 모른다는.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이제 위로 키가 크거나 어린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마쳤는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다. '아, 이제 정말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은 점점 더 그럴듯하게 어려운 일들을 만나게 되면서 계속 생겨난다. 그렇긴 해도, 난 언제쯤 진짜 어른이 될까, 난 언제쯤 그럴싸한 사람이 되는 건가, 나는 언제 그럴듯한 성장을 하게 될까 묻는 게… 지금 유효한 질문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지금 다 큰 거라면, 이젠 그냥 넓어지는 성장을 하면 되는 게 아니겠냐는, 생각이 든다.


넓은 곳에선 헤엄을 친다. 사다리보다는 풀장 같은 곳으로 이미 내 인생의 장면이 바뀐 거라면, 가끔 이 막무가내이고 답도 없는 무한정 헤엄을 즐기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나의 헤엄에, 대체 언제쯤 이 물결 따라 기분 따라 내저어 때론 헛되어 보이기도 하는 헤엄을 멈출 거냐고, 스스로를 질책했지만, 내가 넓어지는 성장 중이라면 그 모든 헤엄은 나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어떤 형태로든



높은 곳보다는 넓은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


그래서, 아마 이제부터 내게 있어 성장이라 함은 지난날 내 모든 성장을 기록했던 그 벽을 떠나, 발길이 닿는 어디든 기록될 것 같다. 내 머리 위로 그어졌던 작은 선들은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라 할지라도, 내가 닿는 곳 어디라면 어떤 형태로든 그 자체가 기록일 것 같다.

 

 


 

 

글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남윤주

 

 

ART insight

Art, Culture, Education - NEWS

http://www.artinsight.co.kr

 

 

작가의 이전글 쏜애플 콘서트 <불구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