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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Sep 29. 2018

내가 클래식을 듣는 이유

피에르 앙타이 Harpsichord를 보고 난 뒤의 생각



피에르 앙타이 Harpsichord


 

 

지난 20일. 나는 하프시코드 소리를 직접 듣는다는 것에 기대에 부풀어 있었지만, 사실 2부가 시작되기 전까지 하프시코드에 대한 매력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피에르 앙타이가 들어와 처음 하프시코드의 선율을 들려줄 땐 ‘이런 느낌이구나’ 알았을 뿐, 그 이후부터는 땡강땡강 쳐지는 소리만 기계적으로 들릴 뿐이었다.




내가 클래식을 들으려 했던 이유에 대한 답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Georg Friedrich Handel


오페라 '충직한 양치기' 중 서곡 d단조, HWV8a

Overture in d minor

from opera 'Il Pastor Fido', HWV8a


그렇게 1부가 끝나고, 짧은 INTERMISSION 후 2부가 시작됐다.


다시 하프시코드 소리를 들었을 때, 난 그 자리에서 용수철처럼 뛰어오르고 싶었다. 비로소 이 자리에 온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정말 너무도 좋았기 때문이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그런데 가슴속으로 궁금하고 느껴보고 싶기도 했던 그 질문의 답을 찾은 기분이었다. 바로 이번 공연에서 말이다. 그것도 1부가 끝나고 2부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클래식을 듣는 이유”. 누군가가 나를 위해 연주를 해주는 느낌이었다. 나만을 위해. 근데 그 나만을 위한 연주가 단순히 기계적으로 연주를 해주는 것이 아닌, 나를 들어 올려 마음을 녹여주고 어루만져주는 느낌. 내 존재 자체를 사랑해줘서 위로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너무 좋았고 너무 행복했다.


그래서 이런 느낌을 또 받고 싶어서 사람들이 피아노 연주를 들으러 갈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신기하게도 나의 이런 느낌을 함께 공연을 보러 간 친구도 느꼈다. 그 친구의 단어로 말해보자면,


“내 시간에 이 사람이 놀러와 준 느낌이었어.”


나보다 매우 시적이지 않나. 우리는 같은 걸 같은 공간에서 느낀 모양이었다. 그 친구 또한 너무도 만족스럽게 보고 온 것 같아 내가 다 뿌듯해졌었다. 정말 그 당시의 기분은 소름이 돋는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다. 끝나고의 흥분되는 기분을 놓치기 싫을 정도였다. 하프시코드는 왕에게도 연주되었다고 하는데 그 왕도 이런 음색 때문에 좋았을까 싶었다. 몸체에서 나와 방으로 울려 퍼지는 청아한 듯 쨍한 소리.




건반을 위한 모음곡 제2권 제4번 d단조, HWV437

Suite for keyboard Vol.2, No.4

in d minor, HWV437


‘도르르 도르르’ ‘띠링 띠링’


그제야 귀가 뚫렸는지 피에르 앙타이의 적절한 곡 선택 때문이었는지, 다음으로 이어진 헨델의 건반을 위한 모음곡 제2권 제4번 d단조, HWV437 (Suite for keyboard Vol.2, No.4 in d minor,  HWV437)도 물 흐르듯 나에게 스며들었다.


기계처럼 쳐지는 것 같던 건반의 소리도 유리알 굴러가듯 들렸다. 통통 튀며 변하는 음들의 소리도. 그 소리들이 겹쳐 올려지는 소리도. 중간중간 아예 다른 튀는 음이 섞여 나오는 것도 묘했다. 그 맑은소리를 한 번 더 듣기 위해 자연 귀를 기울였다.

 

피에르 앙타이가 이번에 연주한 헨델의 두 곡이영상 첫 번째와 두 번째에 나온다.

 

그리고 집에 와 2부가 시작되자마자 들었던 오페라 '충직한 양치기' 중 서곡 d단조, HWV8a (Overture in d minor from opera 'Il Pastor Fido', HWV8a)를 리뷰 쓸 때 첨부하려 영상을 찾았다. 그런데 분명 PREVIEW를 쓸 때 들었던 소리 같았는데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하프시코드뿐 아니라 피아노로도 연주된 것이 없고 오페라 합주로만 남아있어 혼자서 다시 듣지 못하고, 첨부할 수도 없다는 상실감에 빠졌었다.


그래서 찾는 걸 포기한 후 공연 기획 노트에 있는 피에르 앙타이의 연주 영상을 눌렀을 때 어처구니없게도 내가 찾던 곡이 거기 있었다. 나도 PREVIEW에 올렸던 영상에, 그것도 첫 번째에 들어있던 곡이었다. 웃기게도 내가 피에르 앙타이 연주를 들어 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들었던 곡도, 들으러 갔을 때 소름이 끼쳐 나온 곡도 바로 이 곡이었던 것이다.

 

 

하프시코드 소리는 음원과 영상에서 더 쨍하게 들리지만, 그 느낌과 분위기는 현장에서 들을 때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공간을 휘저으며 나에게 꽂혀 들어와 나만의 공간에 그가 들어온 느낌이었다. 사실 PREVIEW를 작성하며 기대했던 건 바흐의 곡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헨델의 곡에 펀치를 맞고 왔다.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헨델의 곡이 좋았다. 바흐의 곡이 기법적으로 뛰어났다면 헨델의 곡은 더 감성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그 또한 이 곡을 치면서 온 마음으로 느낀 것 같다. 선율에 맞춰 표정을 짓고 몸을 기울이며 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피에르 앙타이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연주 시작 전,  연주가 끝난 뒤 관객들을 향해 연주할 곡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사실 긴 영어에 모두 해석하지 못했지만 이날 그의 재량으로 연주할 곡들의 순서가 많이 변경되었다. 원래 2부에서 바흐의 곡 후 헨델의 곡을 연주한다 쓰여 있던 프로그램과 달리 2부에서 바로 헨델의 곡을 연주했으니. 그 때문에 듣는 나의 입장에서는 시너지 효과가 더 컸던 것 같다. 뭔가 밤하늘 폭죽이 더 크게 더 크게 수놓아지듯 펑펑 터지는 느낌이었다.



 

장필리프 라모 하프시코드를 위한새로운 클라브생 모음곡집 중III. Sarabande in A Major

 

그가 쳐준 앙코르곡 중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한 곡을 소개하고자 한다.


라모의 곡으로, 낭만적이고 아름다웠다. 바흐와 헨델과는 또 다른 부드러움을 가진 곡이었다. 그래서 첫 음을 듣자마자 마음속으로 ‘오옷!’을 외쳤다. 조금 방정맞지만 정말 말 그대로 ‘오옷!’이라는 감탄사가 침과 함께 넘어갔다. 앙코르곡까지 듣고 나간 밖에서도 그 소리가 가장 인상 깊이 남았다.

 

 

그리고선 밖을 나가 맞는 밤공기가 정말 시원했다.


그의 연주 덕분인지 마음이 한없이 들떴었다. 우리는 서늘한 바람과 사람들 사이사이를 뛸 듯이 걸어 지나치며 신나게 떠들었다. 서로의 연주 감상을 나누며 우리는 그 시간, 그 공간에서 같은 것을 느꼈다는 것에 진심으로 기뻐했던 것 같다. 지금도 생생하다. 늘 놀러 가면 지나치던 종로의 거리도 뭐가 그렇게 예뻤는지 둘이 호들갑 떨어대며 사진을 찍었다.


이런 게 사람들이 피아노 연주를 듣는 이유일까. 각기 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번에 내 나름대로 ‘내가 클래식을 듣는 이유’를 느꼈다.


나의 양분이 되고, 찬란한 추억이 될 소리. 무엇보다 평소엔 잘 느낄 수 없는 나를 전율로 휘감는 환상의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하고. 사실 환상의 소리라는 단어는 마음에 잘 와닿지 않았던 것인데, 그 ‘소리’라는 단어가 악기에서만이 주는 전율과 힘에 걸맞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글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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