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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Nov 01. 2018

Around : 주위를 돌다

이건 아마.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운 사진 일기



이런 페이지를 뭐라고 이름 붙여야 할까 생각하다

Around로 짓는다.

아마. 사진 일기.

 

 

이 필름카메라는 1993년.

오빠가 태어나던 그해에 우리 가족에게 왔다.

아, 그리고 3년 후에 내가 태어났다고 하니

올해로 26년 된 것이다.


그래서 이 필름카메라엔

오빠와 나의 유년 시절에 대한

필름들이 감아졌다 풀어지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01.

봄의 중간, 그 언저리에서


 

 

지금 필름카메라는 찍을 때마다 몇 장이 찍혔는지 위에 표시되지만, 엄마의 말로는 옛날엔 그런 게 없었다 한다. 그래서 수학여행 때 다~ 찍고 나서 인화소에 맡겼는데 안에 필름이 없었던 적도 있다고. 분명 필름 수는 정해져 있는데 계속 찍혀 다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계속 찍었다고 한다. 인화된 사진들은 교실 뒤편 보드 판에 붙여놓고 각자 맘에 드는 사진 밑에 번호를 적었다고 이야기하며 여고 시절로 잠시 돌아간 듯 보였다.


유년 시절 사진앨범을 보노라면, 지금 이 필름카메라를 거쳐 디지털카메라, DSLR로 변했는데 난 자꾸 필름카메라로 찍은 내 사진에 멈췄었다. 뽀글뽀글 곱슬머리에 딸기를 먹으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 어린 내가 담긴 색감과 분위기가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사진들을 보며 나도 갑자기 필름카메라를 찍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02.

술래잡기

연날리기

캐치볼

달리기 시합

텐트


평화로운 듯 기분 좋은 소란스러움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가만히 눈 감으면 잡힐 것 같은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 같은 것들


김윤아 - 봄날은 간다 
    

 

너와 걸을 때면
난 내가 사랑하는 걸 느껴
너와 발을 맞출 때 yeah
이렇게 기분 좋은 걸
향기로운 풍경
일렁이는 물결
I feel like something new
언제 어디든
곁에 있을게


우린 같은 걸 보면서
이렇게 네가 날 안아주면
말을 건네지 않아도
서로를 바라봐 주면서
웃어줘
함께 하는 순간
한 번 더 안아줘
everyday & night


콜드 - Your Dog Loves You (feat. Crush)




03.

장기하와 얼굴들의 "풍문으로 들었소" 노래가 생각나는 뒷모습


 

  

사실 사진을 찍고 인화하는 건 꽤 귀찮은 일이긴 하다. 너무 해와 직선으로 찍으면 안 되고, 밤에 찍으면 잘 안 나올 수도 있고, 롤을 가지고 일일이 인화소로 향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지니기 때문에. 그런데 그런 마음이 참 간사한 것이 인화된 사진을 받으면 금세 씻겨 내려간다는 것이다.


작은 사각형에 눈을 갖다 대 하나하나 마음을 기울여 찍고,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은 삶을 사는 현재에 맞추지 않겠다는 고집스러운 기다림에. 그런 아날로그적인 매력을 가진 필름카메라라 여태껏 놓지 못하고 있다.




04.

영화 <중경삼림>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건 뭘까


 

 

사실 한 사람을 이해한다 해도 그게 다는 아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므로.

오늘은 파인애플을 좋아하는 사람이

내일은 다른 걸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영화 <중경삼림> 中




05.

Around





 

나는 풍경을 찍는다. 사실 몰랐지만, 최근에 찍은 사진들을 모아놓고 골라보다 보니 알게 되었다.

 

주로 내 주변의 것들. 있는 듯 없는 듯.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것들.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의 삶은 그런 것들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것들이 모여서 살아가게 하고, 살고 싶게 만든다는 생각.

 

그냥. 그날 날씨가 좋아서. 하늘이 예뻐서. 저녁노을이 유난히 눈부셔서. 혼자 같아 힘들 때 외로울 때 그런 것들을 쳐다보고 그 안에 있으면 위로가 된다. 그래서 그런 것들에 묻히고 싶은 걸까. 난 그런 침묵이 좋고, 그런 묵묵함이 좋다.

 

실은 단순히 예쁜 풍경을 보고 필름카메라를 찍는다기보다 주변을 돔으로써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찾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바쁜 하루하루에 까맣게 잊어버린 일상이었으니까. 단풍이 들고, 하늘은 물들고, 아이와 꽃과 나무는 자라는. 그게 내가 돈과 명예의 아름다움을 쫓아 달리다 길을 잃었을 때 유일하게 변하지 않을, 살아갈 이유를 증명하는 거일 테니까. 


사진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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