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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May 09. 2018

연극 낫심 - 구깃구깃한 마음을 언어로 치유하다

그리운 마음이 닿았을 때 일어나는 스파크를 바라보며


이기주의가 만연한 시대, 이타주의자의 필요성과 배경을 연극과 더불어 강연, 전시로 설명해줄 두산인문극장 2018의 첫 공연을 연극 <낫심>으로 포문을 열었다. <낫심>은4월10일부터 29일까지 관객들과 만나는데, 흥미로운 점은 매 회차마다 등장하는 배우가 다른 것이다. 한예리, 김꽃비, 권해효, 진선규, 문소리, 오만석, 구교환, 유준상 등 다양한 장르에서 자신만의 연기를 펼치고 있는 배우들이 매회 출연하며 회차마다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아마 이런 연극을 처음 접한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다. 물론, 나도 그 대다수 중 하나였다. 배우들은 극이 시작하기 전, 대본과 시나리오를 받지 못한다. 무대에는 오롯이 책상 위의 상자, 그리고 마이크 하나뿐이다. 그리고 그들을 화려하게 비추는 조명. 마지막으로 그 모든 것을 아우르며 함께 극을 이어나가려는 많은 관객.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대본을 받고도 무대에 오르기란 쉽지 않을 텐데 전개 방식도 모른 상태에서 2시간 가까운 시간을 이란인 작가와 함께 무대를 선보여야 하는 상황은 처음일 것이다.

 

어쩌면 잔인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짜릿할 수 있는 극을 선보이는 작가는 낫심 술리만푸어(Nassim Soleimanpour)이다. 이란 테헤란 출생으로 현재는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다. 지금은 한국에서 낫심이라는 연극으로 한국인들과 소통하는 중이다. 과연, 이 극을 통해 어떻게 이타주의자라는 주제를 통용시키고 형상화할 것인지 궁금했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언어와 그리운 마음이었다.


 


 

요새는 영어뿐만 아니라 중국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등등 제3외국어 열풍이 한창이다. 하지만 그중에서 이란어를 배운다는 친구를 만난 적은 없을 것이다. 이란인 작가를 만나는 우리들은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았지만, 그는 이러한 만남과 헤어짐이 익숙한 모양인지 우리에게 친절했다. 그는 먼저 우리의 언어를 배우길 원했다. 서툰 실력으로 한국어 실력을 우리에게 선보였고, 우리들은 그 행동을 보며 뿌듯하기도 하면서 고마운 마음이 존재했다. 그리고 찬찬히 배우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이제 우리 차례였다. 우리는 천천히 이란어를 배우며 그를 이해하고자 했다.이란어라 하면, 주술에 쓰일 법한 모양을 지닌 문자들을 사용하는 듯하여 어렵다고 생각했던 우리들의 얼음장 같은 마음을 녹여준 시간이었다.

 

그는 우리들을 친구라 불렀다. 우리도 이란인 친구가 생긴 것처럼 기분이 좋았고, 배우를 연예인이라고 여기는 대신 한 명의 이란인 친구를 함께 사귀는 친구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며, 그에게 여러 가지 말들을 던졌고 다 같이 그와 친해지길 바랐다. 그리고 낫심이 이 자리에 온 이유를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아주 친절하게. 사실 그가 우리에게 알려준 이란어는 어쩌면 그의 전부였다. 그에게 이란어란,한국어란 모두와 만날 수 있는 다리였다. 그의 언어에는 그의 가족, 어린 시절, 추억이 담겨 있는 우주를 초월하는 하나의 도구였다. 그리고 그 도구가 이미 넘치고 크기 때문에 무대는 박스와 마이크, 그리고 배우의 목소리 하나로 충분했던 것이 아닐까.

 

관객은 당연히 모두가 한국인이었다. 이미 시작부터 우리는 하나의 밧줄을 지니고 태어난 것처럼, 연결된 지점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낫심은 예외였다. 낫심은 우리와 다른 이란인이었기 때문에 우리들과 친해져야 그의 이야기를 온전히 전할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었다. 언어의 힘을 빌려, 그의 진솔한 마음을 들려주고자 했다. 한국에서는 사무치는 그리움을 “마음이 저린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마음이 저릴 만큼 그립고, 보고 싶은 것이다. 이란에서는 보고 싶은 마음을 “마음이 구깃구깃해”라고 표현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듣자마자, 그 마음이 너무나 공감되고 점점 구깃구깃해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구깃구깃하면 빳빳하게 피면 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마음은 종이처럼 간단하지가 않다. 구깃구깃해진 마음은 이미 여러 각도로 접힌 자국들과 흔적들이 난무할 것이다.그런데도 우리는 간간이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다른 이들로 인해 조금 더 나은 구깃함을 얻는다.


 


 

Delam tang shode. 사실 2시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을 하지는 않았다. 기억도 안 날 이란어의 간단한 표현들을 배워보고, 낫심의 어린 시절 사진들을 스쳐 지나가듯 본 것뿐이다. 하지만, 나에겐 꽤 큰 울림이 있었다. 문화와 가치관이 현저히 다를 우리들을 위해 낫심은 언어의 위대한 힘을 빌려 그의 생각과 마음을 올곧이 전했다. 극이 끝나고 우리는 완전한 친구가 되었을 때 헤어짐이 다가왔다. 낫심은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헤어짐을 겪었을까. 큰 헤어짐 속에는 사소하고 잦은 헤어짐들이 전제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항상 헤어짐 속에서 살아야 할까. 물론 헤어짐의 상대성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짙은 관계의 헤어짐을 슬퍼하며 평생을 살아갈 때, 그 과정에서의 잦은 헤어짐들이 생기고 우리는 다시 구겨진 마음을 피며 살아간다. 언젠가 다시 구겨질 것을 앎에도 말이다.


언어는 생각보다 더 큰 의미를 우리에게 선사했다. 발 없는 말, 아니 발 없는 언어가 천 리보다 먼 곳을 간다는 말은 진리가 되었다.




 

 

글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강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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