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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Aug 07. 2019

거의 강박에 가까운 내 승부욕에게

 

 

있잖아, 나는 어렸을 때부터 승부욕이 진짜 강했어. 음.. 그건 우리 아빠를 닮은 것 같기도 해. 집에서 가끔 여름에 수박 빨리 먹기 이런 시시콜콜한 내기할 때가 있었거든. 그때 우리 아빠 정말 돌변해. 초등학생이던 우리들 이기려고 진짜 눈 부릅뜨고 수박 먹는다니까 우리 아빠. 아, 옆에서 엄마가 ‘아이구, 애들을 이겨먹으려고, 어른이.’ 이러면서 웃었던 기억도 난다. 시작이 언제였는지는 몰라도, 뭐 그게 유전자 속에 흐르고 있는 거 일 수도 있고. 아무튼 나는 어렸을 때부터 승부욕이 진짜 강했어.

 

지금도 그래. 나는 특히 ‘경험’이 그래. 그러니까 더 많은 경험, 더 좋은 경험을 쌓고 싶다는 욕망이 나를 절대 가만두지를 않아. 룸메 언니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나. ‘대외활동을 진짜 많이 하는 애들이 있는데, 그거 거의 강박이야.’ 이야기 듣는데 딱 내 얘기 같았다니까. 하나 합격하면 다른 활동 찾고. 심지어 면접 못 가도 일단 서류 합격이라는 결과를 보고 싶어서 지원서를 써.


그거 부작용이 심해. 하나를 진득하게 못해. 다른 것도 다 가지고 싶으니까. 내가 가지지 못한 게 계속 눈에 들어오는 거지. 그게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둘 중 하나로 정의 짓고 싶은 게 아니야. 그렇지만 너무 심한 욕망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는 거야. 내 결핍에 대해서만 집중하니까, 가져도 가져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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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저마다의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 방향성이 서로 다른 것뿐이지. 위에 썼던 일기처럼 나는 경험에 대한 욕망이 심하다. 대체 내가 가진 이 욕망과 결핍은 뭘까.


‘욕망’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비정상적으로 살이 찐 인간.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동물 학대를 일삼는 인간. 돈의 노예가 되어 오로지 돈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 어떤 음식을 먹어도, 거대한 부가 쌓여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 자신을 채우기 위해 어떤 일도 할 사람. 아주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인간의 몸에 쌓인 그러한 잉여들은 흡수되지 못한 것들이다. 그 잉여는 인간의 몸에서 어떠한 기능도 하지 못하고 붙어있을 뿐이다. 그들은 아무리 흡수해도 채워지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많은 것들을 자신의 몸에 채워 넣는 것이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다. 깨진 독에 아무리 물을 부어도 그것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밑 빠진 독은 꼭 인간의 형상 같다.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고 확인하기 위해 채우고 또 채우는 인간의 모습 같다.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장독대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것은 이미 물을 채우기 위해 탄생한 것 같다. 물을 열심히 붓다 보면 언젠가 독은 가득 차게 되고, 장독대는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은 자신의 존재가 무엇으로 입증될 수 있을까? 인간은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 세상에 탄생한 것일까? 이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인간은 자신의 몸에 무언가를 계속 담아보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음식으로 자신을 채워보고, 또 어떤 사람은 돈으로 자신을 채워 본다. 독이 깨졌든 어쨌든 일단 자신을 채워보는 것이다. 나는 경험으로 나를 채워본다. 가끔은 그 경험 자체가 내 존재 가치를 증명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나 이런 이런 경험했어, 그러니까 나는 이런 사람이야.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나는 결핍에 대한 불안함이 있다. 누구나 있는 거겠지만. 좀 더 나은 환경에서의 경험, 배움. 그리고 그로 인해 내 존재 가치를 증명해내고 싶어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곳에 살아있을 이유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내가 장독대로, 인간으로 쓸모가 없다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은 나에게 계속해서 무언가 채우기를 요구한다.


사실 여기에는 사회적 분위기가 주는 무언의 압박도 한몫했을 거다. 스펙을 쌓아야 하고,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야 하고. 젊은 나이에 성공해야 하니까. 그래서 ‘쓸모없으면 어때, 사람인데’라는 위로(?)를 전하는 책이나 드라마, 그리고 영화도 많이 나온다. 울적할 때마다 그것들을 꺼내서 탐독했다. 내가 가진 결핍보다, 내 존재 의미를 찾기 보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싶어서.


밑 빠진 독을 채우는 방법이 있긴 한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디선가 읽은 적 있다, 밑 빠진 독을 채우는 딱 한 가지의 방법. 독을 강물에 빠트리면 된다. 독을 물 밖에 두는 것이 아니라, 안에 둘 때 비로소 그 독은 가득 채워진다. 안과 밖의 경계를 두지 않을 때 채워질 수 있는 것이다.


경험과 나를 다른 것으로 구분 짓지 않고 원래 같은 것, 타인이 나고 내가 타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워낙 철학적인 말이라 나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나의 존재 의미를 외부에서 찾지 말고 원래 내 안에 있는 곳에서 찾으라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안과 밖의 경계를 지움으로써, 애초에 채워질 것도 채울 것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나를 채우는 것들을 즐길 때도 있다. 경험을 통해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뿌듯함을 넘어 짜릿함까지 생긴다. 내가 가진 이 승부욕과 욕망은 내가 살아가는 데 즐거움을 주고 원동력과 열정을 주기도 한다. 내가 나아갈 원료가 되어준다. 하지만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어쩌면 내가 지금 배워야 할 것은 내 독을 채우는 방법이 아니라, 잠시 물속에 들어가 나를 완전히 비움과 동시에 가득 채우는 시간을 가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채우려는 강박에서 벗어나 다시 건강한 연료를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비우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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