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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Aug 10. 2019

바다가 들려 - 너는 언제나 그렇게 푸르러주라.

 

 

어릴 때 난 물을 무서워하던 아이였다. 제주도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던 난 매년 폭풍우같은 비가 우리 집을 집어삼키는 게 무서웠다. 집 뒤에 있던 제주 바다는 항상 잔잔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비가 오는 날은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았으니, 바다의 무서운 모습을 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필리핀에 가족여행을 갔을 때, 보트를 타고 바다 한 가운데서 갑자기 바다 밑을 보는 체험을 했던 생각이 난다. 구명조끼를 입고 수경도 쓰고 로프에도 매달려있었지만 발에 아무것도 닿지 않는 소름끼치는 그 느낌이 생생하다. 수경 아래로 보이는 깊은 바닷속에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물고기들과 산호초가 있었지만, 그 때 내가 느꼈던 공포에 견줄 수 있을만한 아름다움은 아니었다. 난 울면서 보트 위로 올려보내달라고 했다.




끝없는 바다의 매력



이쯤 들으면 난 바다를 싫어하는 사람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난 바다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노래도, 좋아하는 그림도, 좋아하는 엽서도, 가장 좋았던 여행지도 전부 바다랑 관련되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쭉 좋아하는 것에 ‘바다’가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내륙 지방으로 이사를 오고나서부터는 더욱 그랬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 속에 광활한 숲이나 바다 하나쯤은 갖고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일상 속에서 흔히 경험할 수 없는 탁 트인 자연 경관에 대한 열망이랄까.

 

레드벨벳 - 바다가 들려

 

레드벨벳의 '바다가 들려'라는 노래는 들을 때마다 잔잔한 바다가 생각나는 노래다. 수영하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무섭고, 깊은 물 속에 발을 내딛는 것도 아직 두렵다. 그래도 여전히 좋은 건, 잔잔하고 고요한 바다를 그저 바라보는 것. 여행을 좋아해 우리나라 동해안과 서해안, 남해안 지역을 다 여행한 경험이 있다.


서해안은 바다보단 큰 강의 느낌이 든다. 푸른 빛보단 회색빛, 모노톤의 바다가 생각이 난다. 남해안은 가장 하늘과 비슷한 색이다. 새파란 바다는 발랄하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짠내도 가장 많이 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바다는 동해안이다. 강원도 지역의 바다는 건물이 많이 없어 조용하고, 잔잔하다. 푸른 초록빛이며, 가장 맑아 속이 잘 보인다. 푸른 초록빛 파도에 크림생맥주같은 거품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바다를 가만히 보고있으면 빨려들어갈 것만 같다. 찰박찰박거리는 파도 소리는 어느새 귀에 익어 백색소음같은 효과를 준다. 이 도시에서는 그만큼 나를 빨아들이는 존재가 없기 때문일까. 그래서 보이지 않으면 자꾸만 그리워하게 되는 것인가.


나를 집어삼킬 듯한 그 빨려듦이 싫지 않다. 바닷가 근처에 오래 살면 우울증에 걸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아마도 바다가 사람을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어서인가보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바다는 내게 그런 존재다.




좋아한다는 건 나도 모르게 스며드는 것



좋아하는 사람을 언제부터 좋아했을까, 생각하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졌던 순간이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사랑은 자기도 모르게 스며들게 되니까.


내가 좋아했던 것인데 알고보니 그도 좋아하고 있었던 것인지, 좋아해서 닮아간 것이 알 방도가 없다. 나도 내가 한 아티스트를 어떻게 좋아하게 되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공통점은 둘 다 바다를 좋아한다는 것.

 

백예린 - 그의 바다

 

예로부터 많은 예술가들에게 바다는 경이로운 대상임과 동시에 일종의 뮤즈였다. 그만큼 눈 앞에 있으면서도 인간이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임이 분명했다. 저 깊은 바닷속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런 신비로운 바다의 이미지를 사랑한 예술가들이 많았다. ‘바다’하면 생각나는 작품은 단연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다. 그러나 나는 ‘바다에 관련된 노래’라면 꼭 가수 백예린이 떠오른다.


‘Bye Bye My Blue’라는 곡을 들으며 푸른색, 하늘색, 바다색이 참 어울리는 가수라고 생각이 들었다. ‘Blue’는 파랗고 푸르다는 의미도 있지만 우울한 감정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가수 본인도 이 Blue의 의미를 좋아하는 것 같다.


올해 상반기에 발매된 앨범에도 ‘Dear my blue’라는 제목의 노래가 수록되었을 뿐더러, 타이틀곡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거야’에도 ‘바다’에 대한 가사가 어김없이 나온다. 그 중 가장 대놓고 바다를 노래한 노래는 ‘그의 바다’라는 노래다.

 

나를 바다라 불러 주는 너
그 속에 언제 파도가 일어날진 알 수 없고
나도 모르게 니가 바람이 될 수도 있어
넌 그냥 있는 그대로 날 바라보면 돼

 

백예린의 노래를 대부분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가사의 노래다. 바다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날 바다라 불러줬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기게 된 노래이기도 하다.




나의 바다를 위해


 

 

바다는 내게 뭐라 정의내릴 수 없는 수많은 의미 그 자체다. 어떨 땐 우울해지기도 하고, 잔잔해지기도 하고, 평화롭기도 했다가 무섭기도 하다. 고요하기도 하고 시끄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미워할 수 없고 오히려 정이 든다. 어쩌면 나라는 사람과 바다가 꽤나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기도 하다. 내 안에 있는 수많은 모습들을 남들이 보지 못하는 깊숙한 곳으로 숨겨놓기도 하고, 가끔씩은 감정의 파도로 드러내기도 하니까.


그래도 때로는 그런 나를 감쌀 수 있는 바다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파도소리와 함께 다 괜찮아, 하고 위로해주는 바다같은 사람이.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한, 내 영원한 뮤즈로 남아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한 번도 단 둘이 제대로 된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는 나의 바다를 위해 이 글을 쓴다. 다음에는 혼자 동해안으로 여행을 떠나야겠다. 그리고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서 바다를 마주보고 속삭여야겠다.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한, 내 영원한 뮤즈로 남아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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