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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Sep 27. 2019

미래에 대해 토론하는 연극

도이체스 테아터 <렛 뎀 잇 머니>

 

지난 9월 20일과 21일, LG 아트센터에서는 도이체스 테아터의 <렛 뎀 잇 머니(Let Them Eat Money)> 공연이 있었다. 베를린에 기반을 둔 도이체스 테아터의 연극 <렛 뎀 잇 머니>는 일반 시민과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예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앞으로 10년간의 미래에 대해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연극을 제작하는 프로젝트 'Which Future?!'의 결과물이다.

   

도이체스 테아터, <렛 뎀 잇 머니>

 

연극 <렛 뎀 잇 머니>의 주된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인 2028년, 유럽이다. EU가 붕괴하고 기후, 정치, 경제, 보건 등 사회 전반이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렛 뎀 잇 머니'라는 저항 운동 세력이 등장한다. 이들은 현재의 사회 혼란을 야기한 두 가지 실패한 정책을 지적한다. 바로 기본 소득과 인공섬 설립이다. 연극 <렛 뎀 잇 머니>는 이 두 정책의 책임자인 전 유럽위원회 의원 롤뢰그와 '우리의 기본소득' 협회의 설립자 로써를 납치 및 심문하면서 극이 진행된다.




1. 자본에 종속된 정책


 

기본 소득과 인공섬 설립. 이 두 가지 정책은 도대체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이 연결 고리에는 슈테판 타르프라는 자본가가 있다. 페이스북과 페이팔로 많은 돈을 번 21세기형 신자본가 타르프는 인공섬 건설을 추진하고, 건설 허가의 권한을 가진 정치 인사에게 로비한다. 이 과정에서 타르프는 기본 소득을 주장하는 세력(롤뢰그, 로써)을 지원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유럽에서 기본 소득 정책 시행이 결정되었을 때, 기본 소득은 유로와 암호 화폐를 혼합하여 지불하기로 결정된다. 여기서 암호 화폐는 바로 인공섬의 통화이다. 따라서 극 중 기본 소득은 그 시작부터 특정 자본가와 회사에 의존한 것이다.

   

 

따라서 원래 국적, 인종, 성별 등에 상관없이 1인당 1500유로를 지불할 계획이던 기본 소득 정책은 곧 절반으로 삭감되며 이민자에게는 지불하지 않기로 결정된다. 물론 700유로 정도의 금액은 살아가기에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또한 기본 소득 정책을 실시하기 위해 국가는 소비세를 늘린다. 이는 곧 월 700유로 밖에 되지 않는 기본 소득을 받는 국민에게 더 큰 부담을 안겨주는 셈이다. 결국 자본에 종속된 정책은 원래의 이상을 잃고 파탄에 빠진다.




2. 데이터에 종속된 인간


 

타르프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인간의 기본권에게 필수적인 또 다른 요소를 건드린다. 바로 보건이다. <렛 뎀 잇 머니>에서는 '트레머'라는 신종 전염병이 등장한다. 이 병의 치료법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타르프가 인공섬에 건설한 제약회사 '노바'는 비밀리에 임상시험을 진행한다.


그들의 치료 방법은 바로 환자의  뇌 속에 칩을 넣는 것이다. 언제 터질지 모를 트레머의 발작을 막기 위해서는 칩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환자의 데이터는 칩에 저장되어 외부로 유출될 위험을 갖고 있다.

 

 

저항 운동 세력 '렛 뎀 잇 머니'는 실패한 정책의 책임자를 납치하여 심문하는 과정을 실시간 중계 영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1,100만 명의 팔로워를 향해 물과 전기, 그리고 데이터 용량을 달라고 호소한다. 물과 전기, 그리고 데이터 용량. 2028년 디스토피아에서 '렛 뎀 잇 머니'가 요구하는 세 가지 조건은 실패한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 역시 결국 팔로워 수라는 또 다른 데이터에 종속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3.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미래는?


 

연극 <렛 뎀 잇 머니>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광범위하다. 위에서 언급된 기본 소득, 인공섬 건설, 데이터 수집뿐만 아니라 기후 변화로 인한 농업의 위기에서 소규모 농업인의 몰락, 특정 국가의 엄청난 국가 부채와 EU의 위기 및 붕괴, 난민 문제 등. <렛 뎀 잇 머니>에는 현재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미래의 수많은 문제점이 집약되어 있어 극의 줄거리를 모두 파악하기란 매우 힘들다. 따라서 자신이 관심 있는 특정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이 폭을 점점 다른 영역으로 넓혀가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관심 있던 주제는 바로 기본 소득이었다. 기본 소득을 찬성하는 입장으로써 <렛 뎀 잇 머니>에서 기본 소득 정책이 다소 부정적으로 묘사된 이유가 궁금했다. 20일 공연이 끝나고 연출가 안드레스 바이엘과 함께 하는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바로 이 점에 대해 질문하는 관객이 있었다. 바이엘은 자신은 기본 소득을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밝히며, <렛 뎀 잇 머니>에서 기본 소득이 부정적으로 묘사된 이유는 정책을 위해 충분한 돈이 투자되지 않았을 때, 그리고 기본 소득 자체가 너무 낮게 측정되면 사람들에게 어떤 불안을 초래하는지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렛 뎀 잇 머니> 관객과의 대화

 

기본 소득 정책은 단순히 '일하지 않더라도 돈을 준다.'라는 개념이 아닌,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국가가 지불하는 최소한의 금액이다. 즉 최소한 이 정도의 돈은 있어야 노동을 하지 않더라도, 혹은 할 수 없더라도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기본 소득은 노동에서 인간을 어느 정도 해방시킨다. 이로써 갖게 되는 여유 시간을 생계를 위한 노동 때문에 미뤄두었던 개인의 소중한 가치에 투자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이는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창작이나 자기계발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 또한 건강과 여타 이유로 노동을 하지 못해 빈곤에 시달리던 사람에게 기본 수당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해준다.


그러나 만약 이 기본 소득 정책이 충분한 국가 재정의 마련과 사회적 논의가 뒷받침되지 않고 시행된다면 어떤 결말을 맞을 수 있을지 <렛 뎀 잇 머니>는 가능한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이상이 현실을 만나 좌초되는 모습은 경각심과 함께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많은 이들에게 극장은 과거 혹은 현재의 작품을 보여주는 장소이다. 그러나 연극 <렛 뎀 잇 머니>는 과거는 물론 현재를 넘어 미래에 대해 말하는 극장의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더해 전문 예술인들이 만드는 연극이 아닌, 관객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제작된 연극이라는 점은 극장과 예술이 갖고 있는 가능성을 더욱더 확장시킨다.


기후 문제, EU 붕괴, 새로운 전염병, 정치, 사회 제도의 실패 등. 미래의 예측 가능한 수많은 문제를 담고 있는 도이체스 테아터의 <렛 뎀 잇 머니>는 머리가 지끈한 디스토피아 극이다. 그러나 극장이라는 공간, 연극이라는 형식을 통해 관객은 문제를 인식하고 더 나아가 서로 대화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극 마지막 장면에서 '렛 뎀 잇 머니'의 지나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것처럼, 관객 역시 10년 뒤 미래를 보여주는 연극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미래의 모습을 고찰할 기회를 갖게 된다.  

 

도이체스 테아터, <렛 뎀 잇 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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