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칼 사이에서 따뜻한 책읽기
미식의 경험이 촘촘한 이가
오랫동안 뜯고 씹고
음미한 책을 선별했다
27년차 호텔리어 셰프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 책의 맛은 어떨까? 웨스틴조선호텔서울 총주방장 유재덕, 그는 칼을 내려놓을 때마다 책을 펼쳐들었다.
희고 높은 모자와 흰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이 뜨겁고 날카로운 기기들을 이용해 누군가의 식사를 준비하는 호텔 주방은 베일에 싸여진 공간이다. 날마다 다른 상황, 다른 조건이 주어지지만 한결 같은 맛과 서비스를 위해 주방에서는 매일의 전쟁이 치러진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에서 외길을 걸어온 중년의 셰프는 주방일 틈틈이 책을 읽고 칼럼을 썼다. 셰프가 고른 책은 대부분 음식에 관한 책이다.
식탁 혁명을 불러온 고추의 모든 것을 다룬 <페퍼로드>부터 음식인문학의 고전 <음식문화의 수수께끼>까지 41편에는 저자의 경험과 어우러진 흥미로운 음식 이야기가 펼쳐진다. '파타고니아 이빨고기'가 '칠레산 농어'로 이름을 바꾸고 판매량이 10배 늘었다든지, 요리의 맛은 식재료의 질에 달려 있을 뿐 요리사의 역할은 얼마 안 된다는 것 등등 미식의 안목을 키울만한 이야기다.
맛은 육체를 던져서 경험하는 감각의 영역이다. 눈으로 보고, 코로 향을 맡고, 이로 씹고, 혀로 느껴야만 한다. 하지만 맛보는 일에만 열중하면 '먹는 바보' 즉 혀끝의 감각에 갇히기 쉽다. 경험에 지식과 생각을 더해야 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거듭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독서의 필요성이다.
"손을 쓰는 사람들은 종종 현장 경험이 중요하지 독서가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말하고는 한다. 그거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 그 많은 요리들을 모조리 실수를 통해서 배워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요리는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작업이다. 독서는 분명하고도 실제적인 경험이다." (책_61쪽)
요리는 오직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일, 죽음과 대척점에 서 있는 행위가 요리라는 것!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어떤 생명은 목숨을 잃어야 하는 생과사의 아이러니를 품는 행위가 요리라는 것! 작가는 이 끝없는 모순의 세계와 독서를 연결시킨다.
"고작 예쁜 모양, 고작 맛, 고작 건강, 나는 그렇게 '고작'이라는 단어 정도로만 언급될, 그저 그런 요리사가 아니었을까? 믿음과 배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 이렇게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인간의 덕목을 담은 음식을 만들어본 적이 없다. 갈 길이 참으로 멀기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_137쪽)
요리사가 되고 25년쯤 되자 그는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처음 요리를 시작했을 때만큼 뜨거운 열정이 있는지 스스로 되돌아본다. 그리고 자신이 '정말 좋은 요리사'인지 반문한다. 그 물음에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결코 말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자 "지금껏 평생을 요리사로 살았는데, '좋은 요리사'가 아니라면, 도대체 나는 이 세상에 왜 존재해야 하는가?"하는 물음을 던진다. 더없이 치열한 자기 성찰이다. <독서 주방>에서 저자는 자신에게 던졌던 '나는 좋은 요리사인가?'라는 그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요리는 특별한 것이지만, 음식은 위대한 것이다!" 저자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는 좌우명이다. 요리는 맛을 주지만, 음식은 생명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고, '좋은 존재'가 되기 위해 죽을 때까지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이라는, 인생의 지혜를 감동적으로 깨닫게 해주는 멋진 문장이다.
<독서 주방>은 책을 읽으면 과연 우리 인생에 얼마나 멋진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가 독서를 통해 자신의 소소한 일상 속 모든 국면을 삶의 깨달음으로 연결해가는 풍경은 감탄이 나올 만큼 아름답다. 일상 독서의 효과를 이보다 더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을까? 이 시대의 독자라면 놓치지 말고 꼭 읽어두어야 할 에세이다.
+
음식으로써
누군가의 생명을 이어주는 사람,
파불루머란?
그는 직업적으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을 말하는 여러 이름 중 '셰프' '요리사'보다 '음식가' 혹은 '파불루머'라는 명칭을 좋아한다. 파불루머란 '음식물'이나 '영양물'을 뜻하고, 그래서 '마음의 양식' 등을 표현하는 숙어에서 종종 활용되는 라틴어 pabulum(파불룸)에서 따온 단어다. 대한민국 최고(最古) 호텔의 최고(最高) 요리사인 유재덕은, 호텔 요리사로서 은퇴한 후엔 '음식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고가의 화려한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 최고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평생토록 음식을 만들며, 음식으로써 누군가의 생명을 이어주는 사람이 최고여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저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저자는 이런 존재를 '위대한 아마추어', 혹은 '음식가'로 구분해서 부르며 존경해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은퇴 후엔 그들에게 '요리'가 아닌 '음식'을 배우러 다닐 계획이라고. 유재덕이 어떤 철학을 가진 요리사인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불과 칼 사이에서 따뜻한 책읽기
지은이 : 유재덕
출판사 : 나무발전소
분야
에세이
규격
신국판(148*210)
쪽 수 : 252쪽
발행일
2019년 9월 20일
정가 : 14,000원
ISBN
979-11-86536-65-0 (03810)
유재덕의 직업은 합법적인 칼잡이, 즉 요리사다. 105년 역사의 웨스틴조선호텔서울에서 30여년 동안 일했으며, 오랫동안 메뉴개발을 담당하다가 올해 조리팀장, 즉 호텔 주방의 총책임자가 되었다. 직업적으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을 말하는 여러 이름 중 '셰프' '요리사'보다 '음식가' 혹은 '파불루머'라는 명칭을 좋아한다. 파불루머란 '음식물'이나 '영양물'을 뜻하고, 그래서 '마음의 양식' 등을 표현하는 숙어에서 종종 활용되는 라틴어 pabulum(파불룸)에서 따온 단어다.
"요리는 특별한 것이지만, 음식은 위대한 것이다!" 그가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는 말이다. 요리는 맛을 주지만, 음식은 생명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그런 이유로 그는 언제나 손에서 칼을 내려놓을 때마다 책을 집어들었다. 스포츠 경향에 독서칼럼 '파블루머 유재덕의 칼과 책'을 연재하고 있다.
웨스틴조선호텔 서울 총괄 조리팀장
대한제국 황실 한식 연회음식 재현 헤드 셰프
대한제국 황실 서양식 연회음식 재현 담당 셰프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담당 헤드 셰프
청와대 국민 연회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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