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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Nov 25. 2019

월급이 밀렸다.

말로만 듣던 임금체불의 당사자가 되어보니

  

매일 아침 '회사 가기 싫다'는 말을 읊조리면서도 출근하는 이유는 돈. 오죽하면 직장을 밥줄이라고 표현할까. 많은 직장인이 가슴속에 품은 퇴직서를 끝내 내밀지 못하는 건 오직 월급 때문이다. 내가 다니는 곳도 그랬다. 애사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이 적성에 맞는 것도 아니며 언젠가 꿈꾸던 직종도 아니었다. 오히려 전공과 아무 관련도 없는 일이고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치가 떨리도록 싫은 일 중 하나였으며 애사심은커녕 퇴사 다짐만 수차례 했다. 월급만 아니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곳. 애초에 알바로 시작해서 계약직 사원이 된 터라 곧 끝나는 계약 기간만 채우고 실업급여를 받으며 탱자탱자 놀리라. 그게 내 목표였고 그 생각 하나로 매일 아침 지옥철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월급이 밀렸다. 다른 업체의 계약 잔금이 안 들어와서 지급이 일주일 정도 미뤄진단다. 거기에 무어라 말 할 수 있겠는가. 속은 부글부글 끓어도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알겠습니다.” 그것뿐이었다. 그 후 나는 어쩔 도리 없이 기계적인 출근을 반복했다. 다만 ‘대체 왜 출근하고 있지?’란 생각만 끊임없이 머리를 맴돌았다. 근무 중에 넋을 놓고 앉아있는 일도 종종 있었으며 열심히 일하다 문득 모든 의지를 상실하곤 했다. 분노 찬 하루. 회사 욕만 곱씹은 일주일이 지났다. 지급을 약속했던 날, 또다시 월급이 밀릴 거란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회사 재정이 좋지 않단다. 그럼 언제 받을 수 있는 거냐 물었더니 확실하진 않지만 차주에는 꼭 지급된다는 허울뿐인 말만 돌아왔다. 설마 했던 불안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이쯤 되면 스트레스는 두말할 것 없고 무척 심란해진다. 월급이 한 번 밀렸는데 두 번 밀리는 게 어려울까?
 

말로만 듣던 임금체불이 내 일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언젠가 스치듯 봤던 임금체불 기사를 꼼꼼히 읽어둘 것을. 그땐 남의 일이라 혀만 쯧쯧 차고 말았는데. 그때 임금체불됐던 직원들은 돈을 잘 받았을까 당사자가 되어보니 알겠더라. 임금체불이 악질인 이유는 월급이 밀렸다는 그 자체보다 그 후의 문제가 일상을 흔들기 때문이다. 당장 써야 할 생활비를 비롯해 카드값, 월세, 교통비, 핸드폰 요금, 공과금 등이 빨간딱지처럼 자리 잡는다. 통장에 아가리를 벌리고 있던 것들은 독촉 문자로 돌아왔고 나는 점점 초조해졌다. 물론 2주 밀렸다고 당장에 신용불량자가 되는 건 아니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지 않다. 내야 할 돈이 산더미라 절로 부채감이 들며 불안했고 답답했다. 고정적인 수익이 있는데 받지 못하니 주지도 못해서. 이렇게 돈 내고 싶었던 적이 있었나.


직장 동료 한 명은 적금을 깨서 카드값을 냈고 내 처지도 다를 바 없었다. 또 다른 동료는 이 상황을 분개하며 왜 우리가 계속 출근하는지 의문이 든다며 함께 신고하고 퇴사하기를 권유했다. 하지만 나는 거절했다. "제 사정이 있어서요." 그녀는 왜 신고하지 않는지 의아하다며 그 사정이란 게 뭐냐고 되물었다. 한참을 설명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세상엔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아무리 공감대를 형성해도 결국 본인만이 자신을 헤아린다. 내게 왜 신고하지 않냐는 타박을 한 동료처럼 내 친구들도 당장 그 회사를 신고하라고 말했다. 나라고 왜 신고하고 싶지 않겠나. 그러지 못한 이유는 하나다. 내가 착해서? 마음이 넓어서? 인내심이 강해서?


아니. 계약직이라서.

 

   

계약만료 기간이 1개월 남은 상황에서 회사를 임금체불로 신고하고 나간다면 잠깐 속은 시원하겠으나 결국 남은 한 달을 포기해야 한다. 법적 조치로 실업급여를 받는다 해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에 1개월 치의 월급일지라도 일해서 벌어야 하는 처지다. 분노는 동료나 나나 매한가지였으나 나는 그녀처럼 쿨하게 이곳을 걷어차 버리고 다른 일을 구할 시간도, 정신도 없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결국 돈 앞에서 철저한 을이자 언제든 대체 가능한 계약직이었다. 결국 약속받은 차주가 되었고 세 번째로 월급이 밀렸어도 나는 신고하지 못했다.

 

그 후로 며칠 지나지 않아 월급이 들어왔다.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잘못 지급된 급여액수로 월급을 받고도 기쁘지 않은 기적을 맛봤다. 혹여나 다음 월급도 밀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덤이었고.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다. 동료의 말처럼 당장 때려치우고 실업급여를 타는 쪽이 정신건강에 이로웠겠지만 눈 감은 건 나였으니.

 

왜 월급이 밀리는 회사는 피하라고 하는지 온몸으로 깨달은 2주였다. 영혼이 나간 채로 일했고 아주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이 치밀었고 스트레스로 생리가 끊겼다. 그러다 문득 아빠도 그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아빠에겐 월급이 밀리는 일이 일상이었다. 일을 맡아서 다 해놓고도 위에서 돈을 주지 않으면 하루종일 전화를 붙잡고 씨름하던 게 그였다. 고등학생 때 그런 아빠가, 아빠의 상황이 무척 답답했다. 왜 일을 하고도 돈을 받지 못하냐며. “그 아저씨들은 돈을 왜 안 준대?”하고 말하면 아빠는 “글쎄다.” 했다. 겉으론 괜찮은 척해도 하루가 지날수록 안색은 파리해졌다. 하지만 어렸던 나는 아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달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일을 한 걸 달라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닌데 왜 마냥 기다리기만 하느냐고. 그때 나는 내게 신고를 종용하던 그녀들처럼 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는 아빠의 입장이 되어 그를 이해하게 됐다.

 

 

한국 사회는 임금체불 발생률이 높고 그 규모도 선진국보다 큰 편이다. 예기치 않은 회사의 재정난으로 임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가장 먼저 혼란을 겪는다.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지, 임금을 받을 때까지 일해야 하는지. 누구도 정확한 답을 알지 못한다. 그저 ‘조금만 더’라는 말을 붙들고 기다리고 기다릴 뿐이다. 주겠지, 주겠지 하며.


올해 고용노동부에서는 임금체불 청산제도 개편방안을 내놓았는데, 재직 중인 노동자에게 체당금을 지원해주어 생계를 유지하게끔 돕고 체당금 수령 소요 기간 또한 2개월을 줄였다. 그밖에 사업주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방안과 임금체불 사전 예방 등을 내세우지만, 그게 예방한다고 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런저런 방안이 있어도 당장에 생계가 끊긴 노동자에겐 대책이 없다. 회사 측의 기약 없는 약속을 붙들고 머리를 싸맬 뿐.

 

신고하는 것과 기다리는 것. 어느 게 정답인지 아직도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이 사건으로 나는 마음고생을 꽤 했다. 내 소중한 월급이 밀린 것은 단순히 내 운이 나빠서가 아니다. 임금 체불은 만연하다. 여태껏 그 대상이 내가 아니었을 뿐. 어쩌면 평생 월급이 밀린 적 없는 이들이 운이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본인의 상황이 되어서야 그 막막함을, 억울함을 헤아리게 되었다. 어쩌면 다음 달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어 시름시름 앓을지 모르겠다. 그저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모른 척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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