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계의 새로운 흐름에 주목하다
꿈에 그리던 뉴욕 땅을 밟은 지 3일째 되던 날, 메인 관광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첼시 거리로 향했다. 화려한 극장도 포토스팟도 없는 이곳으로 향한 이유는 단 하나, '슬립 노 모어' 였다.
브로드웨이에서처럼, 화려한 전광판 때문에 100미터 바깥에서도 슬립 노모어 극장을 알아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던 나는 극장을 찾는데 꽤 애를 먹었다. 생각보다 거리는 어둑하고 한산했다. 극장은 화려한 전광판이나 간판도 없이 정말 여기가 맞나 싶은 곳에 있었고, 사람들이 그 앞으로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신분증 검사를 하고 한참을 기다리자 호텔 문이 열렸다. 로비에서 짐을 맡기고 티켓박스에서 표를 찾았다. 직원이 건네준 것은 평범한 티켓이 아닌 룸 키와 스페이드 카드 한 장. 카드 형식의 룸 키에 펀칭을 받고 안쪽으로 들어가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통로가 나왔다. 생각보다 어둠이 짙었지만, 용기를 내어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통로는 꽤 길었다. 언제쯤 이 어둠이 끝날까 생각이 들 때쯤 맨덜리 바에 도착했다. 오묘한 음색을 가진 가수는 올드 재즈를 부르고 있었고 그 앞에서 많은 사람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연극은 대체 어디서 하는 거지, 의구심이 든 순간 묘한 눈빛으로 내 쪽을 바라보던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바를 두리번거리던 사람들을 안쪽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그 행렬에 끼어들었다.
사람들을 따라 들어간 공간은 어둡고 조용했다. 사람들을 데려가던 여자는 묘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쳐다보며 연극의 규칙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침묵을 지킬 것, 가면을 항상 착용할 것, 호텔의 투숙객들을 방해하지 말 것. 여러분의 여행에 행운이 함께하길 바란다는 말을 끝으로 사람들은 유령처럼 생긴 가면을 받아든 후 방 안쪽의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중간층에 버려진 한 명의 관객을 제외한 모두는 꼭대기 층에서 내렸다. 꼭대기 층의 풍경은 생각보다 으스스하고 사실적이었다. 두려움이 앞섰지만, 행운은 주로 혼자 있을 때 찾아온다는 여자의 말을 떠올리며 같이 내린 사람들과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나만의 '슬립 노 모어' 여행이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이머시브 시어터
(immersive theater)
: 관객이 무대 위 배우들의 연기를 수동적으로 감상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작품에 참여하게 하는 관객 참여형, 관객 몰입형 공연
극단 펀치 드렁크의 '슬립 노 모어'는 '이머시브 시어터'의 흥행을 선도한 작품이다.
'보는 연극'에서 '하는 연극'으로 바뀌어 가는 공연 시장의 유행에 발맞추어 관객 참여적 요소를 추가한 공연은 사실 드물지 않다. '쉬어 매드니스',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과 같은 작품들이다. 이 공연들은 관객을 무대 위로 올리거나 관객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를 진행하며 몰입감을 높였다.
매 회차에 다른 공연을 볼 수 있고 자신이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같은 공연을 몇 번씩 관람하는 일명 '회전 관객'의 수요가 높다. 하지만 같은 회차에 모인 관객들은 다 같이 하나의 이야기를 보며, 무대와 객석이 분리되어있고 관객들은 좌석에 앉아 무대 전체를 관람한다는 점은 기존 공연과 같다.
연극 '슬립 노 모어'가 차별화되는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연극 슬립 노 모어는 '매키트릭 호텔'이라는 건물 전체를 무대로 쓴다. 여섯 개의 층과 백여 개의 방, 건물의 모든 공간이 무대다.
배우들은 층과 방을 끊임없이 옮겨 다니며 각자가 맡은 역할을 연기한다. 따라서 관객들은 100여 개의 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를 모두 관람할 수 없다. 어떤 장소에서 어떤 인물을 관람할지 선택하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다. 그래서 같은 회차여도, 각자 선택의 결과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공연을 관람하게 된다.
관객들이 넓은 무대 안에서 끊임없이 선택하고 집중하며 자신만의 '슬립 노 모어'를 만들어간다는 점은 일반적인 공연의 목적과 역할을 뒤집는 시도라고도 할 수 있다. 공연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주제의 전달'이다.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얼마나 효과적이고 아름답게 전달했는가는 공연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슬립 노 모어는 서사의 전달보다는 관객들의 체험과 선택에 집중한다. 애초에 전체 이야기를 다 볼 수도 없고, 동선에 따라 이야기의 순서 또한 완전히 뒤죽박죽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관객이 한 번에 슬립 노 모어의 모든 서사를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서사 전달이 불명확하다는 점은 오히려 이 극의 가장 큰 강점이다. 현실에서 미스테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호텔을 방문했다고 가정하자. 이 호텔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방문객들의 눈앞에서, 이해하기 쉽게, 순서대로 벌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실에는 사전 예고도, 친절한 배경 설명도 없다. 현실의 사건은 예상치 못하게 눈앞에 갑자기 들이닥치거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은밀하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슬립 노 모어는 이러한 현실을 매키트릭 호텔에 그대로 재현한다. 관객들이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실과 완전히 단절된 채 미스테리한 호텔의 비밀을 엿보는 짜릿한 경험을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슬립 노 모어는 서사 전달의 불친절함과 넓은 무대, 끊임없는 선택을 통해 현실감을 극으로 끌어 올린다. 개인의 선택과 체험을 가장 중요시하는 이곳에 발을 들인 관객에게 슬립 노 모어는 공연이라기보다는 여행이다.
또한 이 극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인물의 시점에서, 어떤 장소에서 이야기를 볼지 선택하는 것은 온전히 관객들의 몫이다. 맥베스, 레이디 맥베스, 맥베스를 홀리는 마녀들 등등 이야기는 수많은 인물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맥베스라는 큰 이야기를 어느 인물의 관점에서 볼지 선택할 수 있고 또 언제든 그 관점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슬립 노 모어의 매력 중 하나다.
내가 선택한 인물이 이야기상 중심인물이 아니더라도 그 인물의 모든 순간과 감정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은 맥베스가 기존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기기도 한다. 맥베스의 입장에서 본 맥베스와 마녀가 본 맥베스, 맥베스의 하인이 본 맥베스는 모두가 다른 이야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공연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공연에서 관객들은 더는 수동적으로 정해진 이야기를 관람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사라지고, 관객들은 오감을 통해 무대와 소통한다. 오감을 통해 이루어진 체험과 참여는 관객들에게 공연을 각인시키며 특별한 순간의 경험을 선사한다.
연극 '슬립 노 모어'는 이러한 공연계의 파격적인 변화를 선도하며 공연의 가능성을 넓힌 작품이다. 불친절함을 통해 현실감을 높이고, 선택을 통해 해석의 다양성을 극대화하면서도 탄탄한 서사를 통해 작품성을 잃지 않아 몇 번이고 관람하고 싶은 작품 슬립 노 모어. 한국에서의 초연이 기다려진다.
글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황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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