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는 고민이 있다. 일, 돈, 관계. 이는 연재노동 프리랜서로 사는 이슬아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직장과 생활이 분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이번에 나온 책 『심신단련』에서 그는 자신이 흔들리는 삶 속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가고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슬아는 이메일 연재 플랫폼 <일간 이슬아>에 하루 한 편 글을 올린다. 신년마다 일어나는 작심삼일을 떠올려보면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다. 아무리 좋고 재밌는 것도 해야 하는 일이 된다면 오래 가기 어렵다. 심지어 그것이 돈을 주고받는 비즈니스가 된다면 값어치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까지 더해진다. 그러나 이슬아는 매일 썼고, 그 글들을 엮어 책으로 내었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반복의 힘이었다. 연인 하마와의 농담에서 그는 일요일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을 가고 체중계에 올라 몸무게를 확인한 뒤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을 한다. 그 다음 화분에 모두 물을 주고 자전거를 탄 후 어머니 집에 가서 채소 위주의 아침을 먹는다”는 프로그래밍을 들킨다. 쉬는 날에도 잉여 시간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정한 루틴에 따라 생활한다.
평일 역시 “아침 일찍 청소를 하고 메일 답장과 업무 정리를 한다. 이후 헬스장에 운동을 하고 아점을 먹는다. 오후에는 낮잠을 자고 하루 업무를 시작한다”는 순서가 정해져 있다. 아무리 많은 일이 쏟아져도 자신의 규칙을 반복하는 것, 그의 단련 과정이자 균형을 지킬 수 있는 힘이었다. 반복은 계속 달라지는 일과 관계 속에서도 삶에 안정감을 부여해준다. 덕분에 하루에도 수번씩 바뀌는 정체성 속에서도 그는 스스로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모든 리듬에 멈춤이 있듯, 하루 일과에도 휴식이 필요하다. 프리랜서 작가이자 직원을 책임지는 사장으로서 다양한 일을 하는 그에게 낮잠은 소중한 충전시간이다. 매일이 일과 연결되어 있는 삶 속에서도 그 시간만큼은 잠시 일의 스위치를 끄고 노동자에서 벗어난다. 바쁨에 휘둘리지 않는 힘은 여기에서 오는 것처럼 보인다. 오후 한 시간의 낮잠만 있다면, 지치지 않는다.
『심신단련』은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후 1년 만의 신간이다. 그 사이에 그는 출판사를 세웠고 이사도 갔고 여기저기 강연도 많이 다닌다. 그러나 여전히, 비싼 서울의 월세를 고민하고 행사 자리에 갈 때마다 “내가 뭐라고..”를 읊조린다. 사장님이 되면서 새롭게 추가된 정체성들을 진지하게 대하고 함께 꾸리는 미래를 생각한다. 많은 게 달라졌어도 그는 여전하다. 솔직한 듯, 짓궂은 듯 친구 같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다가 자신의 옳음을 말할 때는 단호하다.
책을 읽으며 독자는 여러 이슬아를 만나게 된다. 친구 관계에서 자신감 있는 지금의 모습과 잘못 대처했던 과거의 모습, 연재 노동자뿐이었던 과거와 사장이자 편집자이기도 한 현재가 교차한다. 책 한 권 속에서 과거의 날실과 미래의 씨실이 현재의 이슬아를 그려낸다. 그 스스로 과슬이(과거의 이슬아)와 미슬이(미래의 이슬아)라고 부르는 그들은 그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주기도 하고, 믿음을 주기도 한다.
이를 표현하자면, 전지적 주인공 시점이 아닐까? 내 삶의 주인공으로서 사건들의 여러 차원을 동시에 해석한다. 단, 어디까지나 중심은 ‘이슬아’, 자기 자신이다. 아쉬웠던 것도, 좋았던 것도, 더 잘하고 싶은 것도 사이좋게 그 안에서 공존한다. 과슬이가 투덜대고 미슬이가 달래며 현슬이는 글을 쓴다. 자신의 여러 측면을 부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글은 굳어 있는 몸을 펴는 아침의 스트레칭처럼 삐걱거리면서도 시원하다.
매일 업무가 쌓이고 매일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지루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일탈을 시도한다. 가볍게는 멀리 떠나는 여행부터 심각하게는 드라마 단골 소재로 자주 나오는 불륜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도 해결책이 되어주진 못한다. 여행도 질릴 수 있고, 불륜은 치명적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은 아마, 시의직절한 유머가 아닐까?
이슬아의 글이 시선을 잡아끄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흘러가던 그의 웃음들이 사건 속에서 살아나 독자에게 다가온다. 전혀 웃기지 않을 수 있는 사건도 그의 생각을 거치면 콩트가 된다. 그저 단어 하나, 표현 하나를 바꿔 생각했을 뿐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 역시도 가능할 것 같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삶을 환기시키고, 피식 웃은 뒤 다시 반복으로 돌아가는 것이 말이다.
책을 덮은 후 이슬아 스타일을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해보았다. 일단 한 시간의 낮잠은 아니어도, 10분의 명상은 가능할 것 같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겠다.
추가적으로, 산문집인 『심신단련』 외에도 인터뷰집과 서평집이 동시에 출간되었다. 또 다른 이슬아의 글이 궁금하다면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깨끗한 존경』
이슬아의 첫 번째 인터뷰집. 정혜윤, 김한민, 유진목, 김원영과의 긴 대화가 담겨 있다. 네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들은 뒤 감탄과 절망을 오가며 새로운 자신을 향해 나아간다. 2019년 <일간 이슬아> 시즌 2에 연재된 인터뷰 원고를 모아 다듬은 책이다.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책의 힘을 빌려 하는 사랑과, 책을 읽으며 미세하게 다시 태어나는 감각을 이야기 한다. 여러 매체에 책 이야기를 연재해온 이슬아의 첫 번째 서평집. 여러 번 다시 읽은 책의 문장들을 인용하며 쓴 원고를 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