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등장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시즌 3를 시작하며 ‘슈가맨 프로젝트’(이하 슈가맨)의 화제성이 날로 뜨겁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온라인 탑골공원’이라는 문화 현상과 시너지를 내며 더욱 화제성을 낳는 분위기다. 1회에 등장한 태사자는 연일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고 새로운 활동의 소식을 알리며 슈가맨을 통해 대중들에게 존재감을 다시 한번 어필하고 있다.
이어 2화에서는 사람들의 환호를 자아낸 한 가수가 등장했다. 이 가수의 등장은 유튜브와 각종 뉴스 기사의 댓글 창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바로 1990-2000년대 곡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1990년대 GD’라고 불리며 궁금증을 자아낸 양준일 씨다.
슈가맨을 즐겨보지도, 유튜브의 ‘온라인 탑골공원’에 참여하지도 않던 내가 그에게 시선을 사로잡힌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등장에서 느낀 감정들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2019년 현재를 생각해보자면 우리나라에서 가수가 된다는 것은 세계를 무대로 데뷔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특별히 해외 활동을 하지 않아도 K-POP에 관심이 있는 많은 해외 팬들이 인터넷을 통해 영상을 찾아주고, 춤을 커버해서 올리고, 콘서트도 자유롭게 찾아올 수 있는 문화적인 조건이 형성되어 있다. 또한 가수들의 다양한 컨셉의 곡과 그야말로 ‘세계관’이라고 불리는 스토리텔링 형식의 앨범 발매는 팬들의 팬심을 더욱 불태우기도 한다.
비단 아이돌뿐만이 아니라 솔로 가수, 배우 등 그들의 개성과 작품은 그 자체로 존중받으며, 외국에서 생활을 하고 온 아티스트의 성향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국가에서 지나친 심의 조건을 내세우거나 작품에 관여하지는 않는다. 불법 음원 다운로드가 만연하던 2000년대 초중반보다 저작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증가해 잘 만든 작품에 대한 제도 역시 과거보다 체계적으로 마련되어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1990년대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면 지금과 무척이나 다르다. 양준일 씨가 슈가맨에 등장하여 한 이야기를 살펴보면 지금 우리에게는 터무니없게 느껴지는 일들이 많다. 그가 발표했던 ‘dance with me 아가씨’는 과도한 영어 사용이 너무 퇴폐적이라는 이유 하에 방송 정지가 되기도 했고,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무대 중인 그에게 돌을 던지기도 했다. 양준일 씨는 10년의 비자를 받아 한국에 왔고 6개월마다 확인 도장을 받았어야 했는데, 개인적인 감정을 담아 그가 싫다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확인 도장을 찍어주지 않기도 했다.
이로 인해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활동하는 동안 역시 외국에서 온 그를 이상하게 보거나 곡을 주지 않는 등 가수 생활이 순탄하지 못했다. 미국에 돌아간 이후 앨범을 발매하고 싶다는 열정을 가지고 ‘V2’라는 활동명으로 앨범을 냈지만 기존의 '양준일' 이미지로는 아무도 제작에 나서지 않자 자신을 숨길 수밖에 없었고, 활동 역시 제약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 뒤 그는 가요계에서 씁쓸하게 사라지고 많다.
50세가 된 그에게 지금에서야 붙여지는 새로운 수식어가 많다. ‘30년을 앞서간 가수’, ‘1990년대 GD’라고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하고 있다. 그 수식어에 담긴 의미는 무대를 다시 보면 그를 잘 모르는 나조차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회자되고 있는 양준일이라는 가수는 1991년 ‘리베카’라는 곡으로 데뷔하여 2장의 앨범을 남기고 사라진 가수였다. 이후 자신의 두 번째 버전이라는 뜻의 'V2'라는 가수로 활동했지만 또다시 사라졌고, 최근 유튜브의 다시 보기 영상으로 크게 회자가 되고 있었다.
그의 영상을 다시 보면 뉴트로 열풍이 부는 현재, 1990년대 옷들이 다시 유행을 하고 있는 것을 제쳐두더라도 음악과 춤, 패션 모든 것에서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자신만의 스타일이 드러남이 느껴진다. 아무도 작사를 해주지 않아 스스로 곡을 썼다는 그는 노래 가사에서도 자신을 가득 채웠다. ‘가나다라마바사’는 자신의 실제 연애담을 담은 내용으로 지금 들어도 재치가 있는 곡이다.
사람들이 그에게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를 현재의 가요계에서 조금은 찾게 된다. 20대 초반이었던 그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에게 곡을 주는 사람도 없었고, 어머니와 함께 무대 위에서 입을 옷을 정했으며, 외국에서 왔다며 프로그램 MC에게 오히려 놀림을 당하곤 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그가 보여주는 무대 위에서의 춤사위는 짜인 동작을 몸에 익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춤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겠다는 깊은 의지가 확고하게 드러난다. 다시 말하면 손짓과 표정, 춤 동작에서 그의 진짜 감정과 실력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2019년인 지금,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나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 아티스트를 떠올려본다. 예를 들어 가수 아이유나 양준일 씨와 비교되고 있는 GD를 보면 기존 아이돌 가수와 다른 느낌을 받는다. 소속사의 체계 속에서 트레이닝을 통해 실력이 키워진 아이돌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준다. 자신의 이야기를 가사 속에 담고,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고, 자신만의 특징적인 목소리와 춤이 있고, 대체 불가능한 아티스트적 요소를 갖추었고 그 모습들이 대중들에게 어필되었다. 그런 독보적인 매력에 우리는 열광하고 짜릿함을 느끼며, 팬심을 가지곤 한다. 배우도 마찬가지다. 그저 심심하고 대본을 외운 듯한 연기를 펼치는 연기자에게 아무도 찬사를 보내지 않는다. 울림이 있는 연기, 소름 끼치는 표정의 변화와 진정성을 갖춘 배우들에게 눈길이 가는 것이다.
지금 유튜브에 들어가 양준일 씨의 무대를 보면 사람들은 그럼 감정을 느끼는 듯하다. 그저 유명해지고 싶어서 나온 가수가 아니라, 춤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 자신만의 특이한 매력이 있고, 시대의 흐름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개성을 택하고 있는 그에게 반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에게 과거의 대한민국은 너무나 가혹했다. 그렇기에 지금의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훌륭한 무대를 선보이는 그가 진짜로 활동하던 시대의 분위기를 모두가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지금 활동했더라면...’, ‘30년만 늦게 태어나셨더라면...’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런 안타까움에도 불구하고 슈가맨에 등장하여 보여준 그의 말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영상으로 남겨진 자신의 20대 모습과 경쟁을 해야 한다며, 자신의 현재 모습을 확인하고 더 이상의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고, 그럼에도 그를 바라보는 팬들을 챙겼다. 슈가맨에 나와 자신의 20대에게 보낸 편지는 그가 겪은 수모와 대중의 싸늘함을 알기에 더욱 뭉클하게 다가온다.
“준일아, 네 뜻대로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내가 알아 하지만 걱정하지 마 모든 것은 완벽하게 이루어지게 될 수밖에 없어”
2019년의 양준일 씨는 다시금 가수로서 관심을 받고 있지만, 가수로서의 삶이 아니라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의 생활이 더 길었던 그다. 좋은 아빠와 남편으로서 가정에 충실하게 살고 있는 그에게 일상을 무너뜨리고 가요계로 돌아오라는 바람은 부담과 무례일 수 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우리의 가슴이 여전히 뜨거운 이유는, 그 시절 우리가 열광했던 한 청년의 몸짓과 순수함, 그리고 음악을 향한 열정이 프로그램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50대가 되어 선보인 그의 무대에서는 몇 십 년 만에 다시 만나 실망하게 된 첫사랑의 모습이 아니라, 한 인간의 성숙해진 우아함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것이 우리가 유튜브에서 찾아보던 청년의 모습 그대로가 아닐지라도 말이다. 그가 가진 가수로서의 본질, 그것이 그의 몸속에 아직 남아있음이 우리네 마음을 한껏 달아오르게 한 이유가 아닐까?
양준일 씨가 등장한 ‘슈가맨 프로젝트’는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이라는 영화에서 따오게 된 프로그램 이름이다. 이 영화는 단 2장의 앨범만을 남기고 사라진 전설의 가수를 찾으며 펼쳐지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로드리게즈'라는 가수는 활동 당시에는 빛을 보지 못한 가수다. 저항성을 가진 음악이 이유가 컸다. 세월이 무수히 지나 그의 음악이 다시 퍼져나가고, 수소문 끝에 살아있는 그를 찾아낸 사람들 덕분에 마침내 공연을 펼치게 된다.
이 영화를 줄거리를 보면 모두가 느끼겠지만, 양준일 씨의 삶과 무척이나 닮아있다. 그가 들려주는 삶을 듣고 MC인 유재석과 유희열은 우리가 찾았던 슈가맨과 가장 흡사한 인물이 아닐까라는 말을 하며 그의 순서를 마무리한다. ‘슈가맨 프로젝트’를 통해 등장한 21세기의 양준일은, 주름이 생기고 50대가 되었지만 우리에게 뜨거운 마음을 선사했다. 세월이 흘렀기에 혹여나 변하진 않았을까 두려워하던 마음을 보란 듯이 없애고,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표현했던 예술적 순수함이 그대로 남아있는 모습을 확인시켜주었다. 나 역시 그의 현재의 모습에 작사가 김이나의 말처럼 “존재가 아트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덧붙여 가수의 삶을 살고 있지 않더라도 어디서든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