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콜라보레이션과 예술의 일상화
천재 예술가들이 등장했던 르네상스 시기부터 미술의 역사는 끊임없이 변화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른 시대적 명화들 또한 무수히 탄생했다. 그들이 창조해 낸 결과물은 시대적인 맥락에 따라 당대에, 혹은 사후에 인정을 받으며 예술의 한 무리를 이루어갔다. 시대로부터, 그 안에 속한 다수로부터 수락을 받은 작품은 이제 무엇이든 시도할 준비가 되어있다. 작품은 독립적으로 존재해 있던 것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것과의 결합으로 인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천재 화가로부터 비롯된 현대 문화예술의 한 양상을 '아트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살펴보고 이해함은 그 자체로 흥미 있는 일이다.
예술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일컬어지는 아트 협업은 마케팅의 일종으로, 작품의 무궁무진한 변화를 기대해볼 수 있는 문화의 한 양상이다. 사실 이러한 양상은 고전적 의미로부터 시작되었다. 유명 성당 벽에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 활동을 했던 당대 예술가들을 후원해줌으로써 그들과 미술시장의 발판을 마련해 준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미술이 가치 있는 장르로 여겨지면서 사람들이 그것을 사유하고 담론화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예술의 변화무쌍한 성장은 예견된 것이었다. 메디치가로부터 이어진 명맥은 어느덧 현대 문화예술의 한 축을 이루고,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패션, 상품, 공예 등 여러 방면에서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이고 있다.
2017년,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은 '마스터즈 시리즈'를 선보였다. 그 협업에는 대표적인 현대 미술가 제프 쿤스가 함께했다. 제프 쿤스는 다빈치, 마네, 고흐 등의 고전 명화를 재해석해 가방에 프린터하고 이니셜을 새겨 넣었을 뿐만 아니라 본인을 상징하는 토끼 참(charm)도 구성품 중 하나로 포함했다.
상품으로 출시된 가방이자, 세계적인 명화가 포함된 하나의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마스터즈 시리즈가 공개되자 많은 혹평이 쏟아졌다. 프린트된 이미지일 뿐이라는 비판과 함께 아트숍 상품 같다는 평까지, 명품 브랜드와 명화를 새롭게 선보인 작가의 협업은 일부의 혹평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그러한 기획은 작품의 본질에 대한 제프 쿤스만의 예술적 사고방식을 더욱 돋보이게 해 특별한 가치를 선사하기도 했다.
사실 루이비통의 아트 콜라보레이션은 리처드 프린스, 신디 셔먼, 쿠사마 야요이 등 여러 아티스트와 이전에 추진됐었지만, 제프 쿤스와의 협업이 가지는 의미는 또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기존의 콜라보는 아티스트의 작품이 상품 위에 덧입혀지는 모습으로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형태였다. 즉, 그들이 만들어내고 그것이 무늬를 띠는 패턴이든, 캐릭터이든 작가를 상징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제프 쿤스는 작품이 될 수 있는 사전적인 정의를 다르게 바라본 작가이기에 협엽 또한 그의 시선으로 바라봄이 적합한 방법이라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그는 옛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거나 대량 생산되는 상품들을 자신만의 방식을 통해 예술적인 지위에 올려놓는, 새로운 미니멀리즘을 창조해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상품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방법은 본인을 상징하는 캐릭터 악세서리와 이니셜 뿐이었다.
따라서 이 협업 역시 기존의 예술가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추진되었음을 예상할 수 있다. 어쩌면 대중에게 제시된 결과물이 제프 쿤스의 예술적 사고에 존중하는 것과 동시에, 그의 온전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추진된 콜라보는 상품에 충족된 작가의 생각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마스터즈 시리즈로 제작된 가방의 전면에는 메탈 소재를 사용한 화가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다. 이러한 재료적 특성은 가방을 보는 사람과 가방의 주를 이루는 화가의 작품이 긴밀히 연결돼있음을 의미하고자 한 제프 쿤스의 의도이다. 그러면서 브랜드의 상징적인 패턴을 최소화해 명화 본연의 분위기와 색감에 집중하도록 했다. 그러나 깊은 노력과 생각이 담긴 콜라보레이션은 오히려 질책을 받기도 했다. 짐작하건대, 이 상품을 받아들인 대중들은 상품이 하나의 작품으로서 보이길 기대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은 현대미술이 가진 특성과도 연결된다. 현대에까지 추앙받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등 고전의 천재 예술가들이 탄생시킨 작품은 그 당시 사람들이 볼 수 없었던 이상적인 미를 경험하게 해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미술관은 가야만 하는, 신성시되던 공간이었으며 고귀한 가치를 눈앞에 보여준 예술가가 칭송받아야 마땅한 일이었다.
이런 고전의 규범은 여러 세기를 거쳐오며 표본으로 쓰이기도 했고, 때로는 기준점이 돼 아예 뒤바뀐 방향으로도 미술을 나아가게 하며 다양한 예술의 관점을 생산해내도록 했다. 그러한 관점의 최근에 있는 현시점에, 우리는 경계 지어지지 않은 현대 미술을 마주하고 있다. 고전의 예술이 많은 지지와 영광을 누렸다면, 현대 미술은 그 출발점부터 파격적이었다.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는 뒤샹의 <샘> 역시 당대의 예술계 속에서 거부당했던 산물로 자리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렇게 고전과 현대의 미술이 출발 선상부터 다르듯이, 작품을 개념화하고 해석하는 방법론은 현대에서 특히 중요하게 자리 잡았다. '발견과 선택'이라는 작가만의 관념이 기성품을 작품으로 승화시킴으로써 레디메이드 장르를 개척해 예술계의 승인을 받았듯이, 현대미술은 아티스트의 시선과 그에 대한 해석이 주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가 어떤 미술적 발자취를 걸어왔는지, 작품에 쓰인 매체적 특성을 통해 무엇을 시사하려 했는지 파악하고 나름의 해답을 발견하는 게 곧 예술을 누리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제프 쿤스의 아트 콜라보레이션 작업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상품은 작가, 그리고 협업한 브랜드의 의도에 맞게 '아트적'으로 생산되었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한 결과는 직접 창조한 게 아닌, 기존에 있는 원작의 명작들에 대한 작가만의 재해석이 가미된 상품의 이미지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상황은 마치 대중들의 생각과 상충했던 뒤샹의 예술적 기준, 관념과 비슷해 보인다.
뒤샹이 기성품을 이용해 예술의 방향을 창안해냈듯, 제프 쿤스 역시 원작을 통한 작품의 가치생산에 주력했다. 일부의 대중들은 작가의 예술적 의미가 돋보인 상품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작가가 의도한 재료적 특성과 디자인적 고안의 의미적인 파악은 다른 제품과 차별화된, 그 상품만의 고유한 가치를 창출해냈다. 이처럼 제프 쿤스가 기획한 현대예술적 감성은 거장들의 명작이 보여주는 예술적 아름다움과 현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아티스트적 해석이 뒤섞인 한정적 컬렉션인 셈이다.
현대 미술가의 관점으로 해석된 작품은 대중들에게 때론 모호함을 주기도 한다. 고전의 명화는 즉각적인 이해를 주지만, 동시대 미술은 예술가가 사용한 매체가 어떻든지 간에 아티스트적인 해석으로 숨은 의미를 풀어내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콜라보레이션 된 상품을 바라본다면, 그 상품만이 가진 가치를 비로소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예술은 결코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에요. 사람들은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제 작품을 맞닥뜨리죠. 가방은 오랜 시간 인간과 함께한 역사적이고 원시적인 물건이에요. 이 가방은 후대의 예술가인 저와 고대의 예술가, 그리고 현대의 우리를 연결하는 매개체라 할 수 있어요."
- 제프 쿤스
그렇다면, '예술의 콜라보레이션화'는 어떻게 문화예술의 한 양상으로 나타났을까? 그 해답은 곧 그림에 내재한 본질적인 감성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한 감성은 '예술전이 효과'라 지칭되는데, 상품에 예술이 입혀지면 그것만이 갖는 고급스러움이 해당 제품으로 전이된다는 사실이다. 상품의 대표적 이미지가 예술작품으로 나타난 것은, 제품 간의 기술과 품질의 차이가 줄어들면서 감성적 차별화에 주목하는 소비자들의 심리 때문이다.
기존과는 다른 새롭고 신선한 이미지는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며 일상생활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다는 이점까지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예술과 결합한 상품은 '소비'가 아닌, '소유'의 개념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아트 콜라보는 오랜 기간의 역사를 가진 브랜드의 고정된 이미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탈바꿈시키기도 한다. 지루해지기 쉬운 브랜드 고유의 상징에 적절한 아트 이미지를 결합한다면, 브랜드와 예술은 가치 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예술이 지닌 가치는 끝이 없다. 오랜 시간 동안 그림 자체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 작가가 생산해내는 깊이 있는 담론의 생성은 '미술'이라는 이름 아래 독립적으로 작용했다. 하나의 장르로 가치를 증명해 낸 미술 작품은, 결합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다른 분야와의 결합을 시도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의 분야뿐만이 아닌, 또 다른 분야들과의 연결에서도 완전함을 드러내 보였다. 시대에 맞게 변모하며 세상 속에 자연스레 남아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남아있을 우리의 것으로 미술을 정의하고 싶다. 그것은 곧 문화예술의 일상화와도 접목되는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리 곁에 오래도록 예술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이유를 통해 대변될 수 있다.
예술은 이렇듯 우리 삶에 아주 살며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꽤 깊이 스며들어 있다. 아트 콜라보레이션은 대중에게 즐거움과 새로움을 선사할 뿐만 아니라 예술의 영원성을 가늠케 한다. 제프 쿤스는 예술도 결국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즉, 예술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경험을 가능케 하는 수단이기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그러한 신념이 마스터즈 시리즈를 통해 나타났고, 그의 협업 이후에도 예술가들과 다양한 분야의 아트 콜라보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듯 예술의 영원성과 일상의 예술화를 위한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상품을 넘어선 또 하나의 작품을 통해 일상의 미술관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