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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Aug 26. 2020

속 쓰렸던 이유에 대해

#1. 열심히 사는 게 뭐 어때서

 

백수가 된 지 벌써 1년. 자발적으로 사표를 내고 퇴사를 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 생각했으니까. 타임머신으로 타고 다시 그때로 돌아가게 되더라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숨 쉴 시간조차 사치라고 생각될 정도로 바쁘게 보냈던 시간. 직장생활은 내게 '고됨'이었다. 언제나 노력은 최대로 해야 했고 불만은 최소로 해야 했으며 업무의 질은 언제나 능력의 정점, 최상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초심을 잃었던 탓일까.

 처음엔 열의가 넘쳐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회사일을 내 일처럼 생각했고, 상사를 누구보다 믿었고 따랐다. 열심히 하다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노력이 능력이 되어 돌아올 거라 믿었었다. 경력직으로 들어온 탓에 승진도 빨랐던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녀는 모든 걸 갖춘 완벽한 커리어 우먼이었다. 우리는 입사 6개월 차이였기에 그녀의 능력 옆에서 나의 노력은 쓸데없는 무능함으로 비칠 뿐이었다.


 그래도 그런 그녀가 있어서 한 편으론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혼자 견디기엔 힘든 시간이었지만 멋진 친구 같은 상사가 옆에 있단 생각에 힘이 되었다. 하지만 어디서나 돋보였던 그녀의 재치와 서글한 입담은 누가 봐도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었기에 솔직히 그녀로부터 약간의 질투를 느꼈었고 한편으론 내게 붙은 '먼저 들어온 입사 선배'라는 타이틀이 꽤 무겁고 부끄러웠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와 비교하며 나를 보지 않게 되었다. 무엇 하나라도 최고로 잘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생겨났다. 더 이상 열심히가 아닌 '잘' 하는 게 필요했다. 내가 회사에 남아있을 이유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때부터였다. 그녀와 나는 스스로의 '책임' 하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달리기 경주를 하는 것만 같이 1분 1초가 숨 가빴다. 매일 밥먹듯이 대표와 직원 앞에서 브리핑해야 하는 회의는 내게 '고통'이었다. 점점 시간은 목을 죄여 왔고, 고갈되어가는 아이디어 탓에 회의하러 가는 길은 가시밭을 걷는 것과 같았다.


 긴장의 연속이었다. 아등바등했던 시간. 지금 생각해도 숨이 턱턱 막히곤 한다.

 시간이 없었다. 그녀처럼 탄탄한 커리어도 모두 노력과 시간의 결과물이었으리라. 하지만 내겐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면, 잠자는 시간도 밥 먹는 시간도 줄여서 노력하면 되지 않은가?' 변명이 아니다. 여유롭게 1분이라도 책 한 장을 넘기고 있는 누군가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 해서 삶을 변화시킬 자신도 없었다.


 그래도 물러서진 말자! 

 밥 먹는 시간이라도 줄여보겠다고 점심을 굶어가며 일을 했었고, 입사 첫날부터 집에 일을 가져가서 했던 나는 열심히 해보겠단 마음으로 수당 없는 야근을 자초하며 했었다. 아무도 알아줄 리 없다는 걸 알면서 꿋꿋이 해냈다. 그렇게 매일 속 쓰린 일상은 계속되었다.

 

 잘하고 싶다 해서 갑자기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교대상이 되어 있을 뿐이었다. 잘한다고 인정받고자 했던 건 아니었지만 잘난 상사 같은 동료 덕분에 나는 능력 없는 직원이 되어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넘쳐나는 일감 덕분에 잡다한 업무에 치여 매일을 보내던 중, 숨을 크게 쉬고 싶어 졌다. 연차도 눈치 보여 쓸 수 없는 일개미로만 살아야 하는 회사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애씀에 호통이 되돌아오고 노력이 실수가 되고 있는 이곳 전쟁터에서는 아무리 아우성을 쳐도 소리 없이 허공에 사라질 뿐이었다.


 회사 내에 있을 때만 지켜주는 울타리, 그 안에서도 불안했던 시간. 밖으로 나가려 할 땐 더 날카롭게 치솟았었다. 나오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믿는 구석이라고는 하나 없는 '나' 하나만 믿고 퇴직서를 냈다. 어차피 불거질 감정의 산이라면 다이너마이트로 빨리 무너트리는 게 맞다 생각했다.


 그렇게 회사 사람들과도 결국, '마치 연애하다 헤어진 사이처럼, 다시 얼굴 볼 자신도 연락할 엄두도 내기 어려운 사이가 되어버렸다.' 




 한 번씩 궁금한 소식에 어쩌다 한번 뒤적여봤다. 나의 빈자리는 전혀 느낄 수 없게, 한결같이 잘 지내고 있는 이들의 안부에 한편으론 감사하며 아쉽기도 했다. 전에 없던 여유가 주어졌음에 감사하게 됐지만 언제부턴가 정해진 일정 없이 먹고, 치우고, 음식 하고, 청소하는 똑같은 패턴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이렇게 여유로운 일상에서도 아무 의미 없는 점심을 굶으며 여전히 나는 속이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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