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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Jan 20. 2024

눈가 옆 눈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틀간 시가족들과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 마냥 반갑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일 수 없었다. 편하지 않는 사이라는 건 확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눈치를 보다 말도 못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다 보니 억울한 점이 한두 가지 아니었던 사람이라 그냥 할 말은 하고 살자는 게 인생의 모토가 돼버렸다. 


이젠 몇 년간의 짬이 생긴 건지 무조건 잘 보이고 싶은 생각에 최선을 다해 친절했던 모습을 조금 내려놓았다. 완전한 포커페이스로 살았던 건 아니었지만 "어른답지" 못한 태도로 아주 솔직해져 버렸다. 


사회, 가정, 상황의 부조리함을 누구보다 인정하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인 게 확실했는데 그동안 아주 조용하게 살아온 건 "단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내 사람이 다칠 수 있다는 생각. 그래서 그 어떤 말도 쉽게 하지 못했던 지난 날들...  지켜야 할 게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무서움, 겁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 


© cdc, 출처 Unsplash

지켜주기보다 누가 나를 지켜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이기적인 걸까? 아직도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고 싶은 삼십짤의 아이는 할머니의 그늘이 그리울 뿐이었다. 그래서 막상 아기에 대한 이야기 나오자 설움이 북받쳐 나와버렸다.


그 힘들었던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2년 전에 받았던 악몽 같은 검사를 수면 위로 올려야만 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무서웠고 힘들었고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그런 경험. 그래서 아예 임신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더구나 생각하기 싫은 일이 펼쳐졌다. 할머니의 뇌수술. 그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서 스스로에게 지탱해서 외롭게 견디며 살아온 할머니의 인생이 너무나 허무하고 슬퍼졌다. 나는 단지 그 옆을 지켰을 뿐이다. 


이젠 모든 문제와 해결에 
앞장서 주시던 척척박사 할머니가 
아기가 되어 우리 앞에 있다... 



앞장서지 못하던 때에도 할머니는 내 곁을 늘 맴돌며 뭐 하나라도 도와주려고 애쓰셨었다. 그런 할머니께 나는 그녀를 위한답시고 가만히 있도록 다그쳤었다. "할머니 알아서 할 테니, 저기 앉아 계세요 제발~~~" '그런 할머니의 마음을 내가 한 번이라도 헤아렸었다면... 할머니의 서운함이 좀 덜어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 nci, 출처 Unsplash


병상에 누워있는 할머니, 휠체어에 앉아 아이처럼 쳐다만 보는 할머니의 모습은 아직도 낯설다. 입을 자꾸만 움직이지만 소리는 내지 못하는 모습에 마음이 타들어갔다... 그 어렵고 고통스러운 수술도 잘 이겨냈는데 세월을 뛰어넘는 게 불가능한 건지 회복은 생각보다 많이 더디고 힘든 것 같았다. 


© mugeinsky, 출처 Unsplash


얼마 전에 바뀐 간병인 분의 말씀에 의하면 가족인 줄 알고 밤중에나 새벽에 기저귀를 갈아주려고 하면 눈물을 흘리신다고 하였다. 병원에, 왜, 내가, 이렇게, 누워, 이런 신세가 됐나그런 생각이 들지 않길 바랐는데... 


© zelleduda, 출처 Unsplash

이젠 그때가 왔나 보다. 


할머니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덜 무겁고, 머리에 아픈 기억은 좀 잊히고, 몸은 고통 없기를 간절히 바랄 뿐... 그 이상 그 이하의 바람은 원할 수 없게 된 것 같다 이제는.    

© jessica_hearn, 출처 Unsplash

나 역시도 아기보다 할머니는 선택한 지금. 그 누가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을까? 단지 혼자서 그 마음을 읽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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