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 시가족들과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 마냥 반갑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일 수 없었다. 편하지 않는 사이라는 건 확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눈치를 보다 말도 못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다 보니 억울한 점이 한두 가지 아니었던 사람이라 그냥 할 말은 하고 살자는 게 인생의 모토가 돼버렸다.
이젠 몇 년간의 짬이 생긴 건지 무조건 잘 보이고 싶은 생각에 최선을 다해 친절했던 모습을 조금 내려놓았다. 완전한 포커페이스로 살았던 건 아니었지만 "어른답지" 못한 태도로 아주 솔직해져 버렸다.
사회, 가정, 상황의 부조리함을 누구보다 인정하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인 게 확실했는데 그동안 아주 조용하게 살아온 건 "단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내 사람이 다칠 수 있다는 생각. 그래서 그 어떤 말도 쉽게 하지 못했던 지난 날들... 지켜야 할 게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무서움, 겁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
지켜주기보다 누가 나를 지켜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이기적인 걸까? 아직도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고 싶은 삼십짤의 아이는 할머니의 그늘이 그리울 뿐이었다. 그래서 막상 아기에 대한 이야기 나오자 설움이 북받쳐 나와버렸다.
그 힘들었던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2년 전에 받았던 악몽 같은 검사를 수면 위로 올려야만 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무서웠고 힘들었고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그런 경험. 그래서 아예 임신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더구나 생각하기 싫은 일이 펼쳐졌다. 할머니의 뇌수술. 그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서 스스로에게 지탱해서 외롭게 견디며 살아온 할머니의 인생이 너무나 허무하고 슬퍼졌다. 나는 단지 그 옆을 지켰을 뿐이다.
이젠 모든 문제와 해결에
앞장서 주시던 척척박사 할머니가
아기가 되어 우리 앞에 있다...
앞장서지 못하던 때에도 할머니는 내 곁을 늘 맴돌며 뭐 하나라도 도와주려고 애쓰셨었다. 그런 할머니께 나는 그녀를 위한답시고 가만히 있도록 다그쳤었다. "할머니 알아서 할 테니, 저기 앉아 계세요 제발~~~" '그런 할머니의 마음을 내가 한 번이라도 헤아렸었다면... 할머니의 서운함이 좀 덜어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병상에 누워있는 할머니, 휠체어에 앉아 아이처럼 쳐다만 보는 할머니의 모습은 아직도 낯설다. 입을 자꾸만 움직이지만 소리는 내지 못하는 모습에 마음이 타들어갔다... 그 어렵고 고통스러운 수술도 잘 이겨냈는데 세월을 뛰어넘는 게 불가능한 건지 회복은 생각보다 많이 더디고 힘든 것 같았다.
얼마 전에 바뀐 간병인 분의 말씀에 의하면 가족인 줄 알고 밤중에나 새벽에 기저귀를 갈아주려고 하면 눈물을 흘리신다고 하였다. 병원에, 왜, 내가, 이렇게, 누워, 이런 신세가 됐나, 그런 생각이 들지 않길 바랐는데...
이젠 그때가 왔나 보다.
할머니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덜 무겁고, 머리에 아픈 기억은 좀 잊히고, 몸은 고통 없기를 간절히 바랄 뿐... 그 이상 그 이하의 바람은 원할 수 없게 된 것 같다 이제는.
나 역시도 아기보다 할머니는 선택한 지금. 그 누가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을까? 단지 혼자서 그 마음을 읽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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