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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Nov 07. 2020

스스로 해결하는 눈치 인생은 고달프다

신혼생활의 맛은 언제나 마냥 달달하다?

나는 로망에 빠질 정도로 비현실적인 사고를 가진 편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할만한 알바 자리가 없던 탓에 일을 못하니 어디에서 떡하니 용돈이 나올리는 없었다. 일정한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 아니었기에 홑벌이를 하는 신랑에게는 특별한 이유 없이 전업주부의 삶에 정착한 내 입장에선 미안했던 마음이 컸다. 그래서 함부로 손을 벌릴 수 없었고, 오히려 뭐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인 지출은 결혼 전보다 두 세 배가 늘었는데도 내가 벌이는 수입이 그만큼 못 따르니 스트레스는 날이 갈수록 커졌다. 내가 나에게 부리는 짜증이 가끔 신랑에게 잘못 찾아가기도 했다.

결혼 후 여자에게는 행복을 위한 비상금이 필요하다

신랑은 필요 순위에 따라 지출을 선택하는 편이고 나 같은 경우는 필요하면 꼭 사서 당장 사용해야 하는 편이지만 이왕이면 저렴하게 사려고 열심히 시간 들여 알아보며 구입하는 본인 인증 알뜰 소비족이다. 결혼 후 내가 먹고 입고 사고 싶은 걸 사는 건 1/5도 안 되는 편이었지만 배보다 배꼽이 큰 소비가 됐다. 그래서 알뜰하게 혼수 장만 후 조금 남겨뒀던 돈은 결혼 후에도 티 나지 않게 계속 집안을 메워줬고 이래저래 크고 작은 역할을 하며 바닥을 보였기에 한 번씩 나를 찾아줬던 용돈들도 보태 썼다.

한 번은 큰맘 먹고 통장정리를 했는데 빠진 기록만 남아있는 것을 확인했다. 어디 썼는지 통장이 알아서 기록을 잘 남겨줬을 거란 생각은 착각이었고 구입할 때는 '필요'에 의한 소비였다며 구입할 때마다 고뇌와 시간을 부었던 선택이었기에 후회는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1년 가까이 잘 견뎠던 비상금 라이프(?)는 3개월 전 완전한 종료를 알렸다.

그러던 어느 날 좁쌀여드름이 얼굴 전체로 퍼졌다. 효과는 빠르지만 얼마나 지속할지 몰라 피부과에 가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치료에 나가는 돈이 엄청날 것 같아 다른 방법을 모색했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몰라도 갑자기 나도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내 기준에선 고가의 바디 스크럽, 속옷, 클렌저를 구입했다. 쉽사리 사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비싼 가격에 얘기할 엄두가 안 났다. 이로써 나는 반신반의하며 1년 정도 넣었던 종신보험을 시원하게 깨게 되었다. 반의 반도 못 챙기는 해약금이었지만 이마저도 가뭄의 단물이랄까...

여자의 '일'은 필수로 두 개여야 하는 걸까.

남자들은 바깥일을 하는 게 의무이고, 여자는 집안일은 의무이지만 바깥일은 자유의사에 따라 선택사항이다, 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위에서 써내려 온 글로 판단하자면 내가 손 큰 소비자 고객인 것 같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하루 만에도 몇 백만 원을 쓰는 이들이 있는 가하면 아껴서 3개월 생활비로 살아가는 이들도 있듯이, 나 역시도 쪼개고 아껴서 쓴 게 그랬다. 보면 사야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왕 사야 되는 거라면 빨리 사서 쓰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에 조금 이른 선택을 하는 편이었다. 신랑은 필요하면 사라는 편이지만 필요성이 명백하지 않다면 굳이 살 필요가 없어 구입을 미루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구입 리스트 중에서 내 맘에 드는 것은 성격 급한 나의 서프라이즈 물건이 되곤 했다. 의견은 받아지기 힘들기도 하고 개인의 취향은 존중되는 게 맞기에 서로의 마음이 편하려면 지속적인 비상금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일을 할 수 없다면 정말 어쩔 수 없다, 나 역시도 너무나 공감하는 바다. 하지만 1년 가까이 전업주부의 삶으로 지내본 바로는 일을 한다면 스스로의 자존감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무의미한 혼자만의 눈치 인생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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