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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Nov 07. 2020

냉장고에서 싹을 피운 양파

조금 더 늦게 발견했다면

전업주부로써의 삶이 오래되지 않아 아직도 한 번씩 낯설게 느껴지곤 한다. 냉장고 속 사정은 전혀 알 수 없기에 가끔은 마늘이 섞여 가고 있는지, 잘라놓은 무의 단면이 메말라가고 있는지, 반찬 하려고 미리 깎아둔 남자의 색이 달라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채로 무심했던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수습할 수 없는 상태로 발견되곤 한다.


특히, 이번에 시댁에 내려갈 때 받았던 자색 양파 한 꾸러미를 매번 반찬 할 때마다 걱정 없이 내먹을 수 있었었다. 이번에는 수시로 들여다봤지만, 그렇게 잘 먹었던 중에도 꼭 썩어가고 있는 녀석들을 끝내 만나고야 말았다.  

싹을 피운 양파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주로 싹이 난 감자나 마늘을 봤었기에 이때는 양파의 싹을 보고 당황했던 마음이 커서 얼른 속상 황을 알려고 싹둑, 잘라버렸다. 다행히 물컹거리는 죽 같은 표면, 물을 한껏 머금고 있었다. 단단한 양파가 좋지 아니하던가. 그래서 과감하게 버리고 말았다... 아깝지만 속 아플 걸 생각하면 그냥 버리는 게 벌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냉장고에서 싹을 피운 양파를 내가 오랜 시간 동안 보지 못했더라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갑자기 무척 궁금해졌다. 또 다른 양파가 자라날까, 하며 상상으로나마 기대를 품어봤다.


옴팡져 보여도 속은 물러 터진 홍시 꼴은 보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뭐든 문제는 빨리 발견해서 처리하는 게 우선이라고들 하지 않던가. 매일 들여다봐도 몰랐던 냉장고 속 양파처럼, 매일 보고 잘 아는 사이의 누군가의 속마음을 단번에 알기 참 어렵듯이 말이다. 그래서 한 번씩 진솔한 내면을 같이 적당한 선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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