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아픈데도 함께 돌아다녀 주셨던 거였나요?
저는 치료받은 지 한 달도 채 안 된 소건막류 환자입니다.
무지외반증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쉽게 말하자면 발가락 뼈, 관절에 염증이 생겨 변형이 일어나거나 통증을 동반하는 질병이랍니다. 소건막류는 새끼발가락에 발생한 질병을 콕 집어 지칭하는 것이고, 무지외반증은 이외 발가락에 생기는 걸 통틀어 포괄해서 본다는 점에 굳이 비교할 수 있지만 비슷한 치료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질병이야 생길 수도 있다지만, 문제는 두 발로 서는 게 힘들어졌다는 거예요.
원래 사람은 두 발로 서야 하고 움직이려면 한 발씩 떼면서 걷거나 뛰어야 하잖아요? 근데 저는 서는 것조차 두려워 양말을 4개씩 신고 있답니다. 여름이 오기 전까지는 낫고 싶은 게 제 소망이랍니다. 현재 치료받으러 갈 때마다 10만 원씩 주사 값으로 충격파 치료라는 이름으로 병원에 상납하고 있지만 언제 끝날지 모를 병과의 투쟁 중인 전사와 같은 입장이죠.
아악! 두 발에 힘을 주는 순간, 한 발의 무게 중심이 새끼발가락에까지 힘이 가해지는 순간 저는 온몸이 저릿해지는 충격을 받아내는 듯, 맨 뼈뿐인 발바닥으로만 딱딱한 바닥을 걷는 기분이 든 달까요.
원인이라도 알자 싶어서 병원을 찾아갔는데, 특별히 원인이랄 게 없더군요. "뼈가 이상하게 생겼다고...?" 제 걸음의 문제라면 할 말이 없지만 제 발이 불편해서 구두를 아예 안 신는지 5년 넘는 사람이 바로 저랍니다. 마른하늘의 날벼락같은 상황이 바로 이런 걸까요. 답답하지만 그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습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에 겪게 된 불편한 질병.
저는 차보다는 대중교통을 좋아하고 뚜벅이 생활을 자처하는 사람이랍니다. 그런 제가 갑자기 발이 아프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제는... 차를 몰아야 하는 건가.'였습니다. 돈이 없고 시간이 부족해서 못 갔지 언제나 가슴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여행부심을 안고 살아왔는데 이젠 걷지 말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어찌나 충격적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올해는 신랑이랑 같이 등산도 같이 가고, 아직 가보지 못한 제주도에 만약 가게 된다면 한라산에 가서 컵라면을 먹어보고 싶다는 버킷리스트도 성취할 생각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질병이 찾아온 순간 허망하게도 다른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해낼 수 있는 것들마저 더 이상 꿈꾸면 되지 못하게 돼 버렸다는 사실을 체념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네요.
수술을 하지 않기 위해 견뎌내야만 하는 치료 중 하나는 체외 충격파 치료였습니다. 십여 분간 아픈 자리에 집중적으로 충격을 가하는 치료는 영혼의 고문과 마찬가지였기에 숨쉬는조차 힘겨울 정도로 진땀 쥐게 온몸의 세포를 긴장하며 받아야만 했었지요. 두 번 다시는 받고 싶지 않은 치료.
눈물 대신 내뱉은 소리가 치료가 끝나자마자 민망함으로 되돌아왔던 지난번의 진료에 이어 수술을 피해 받아야 하는 치료는 담당 의사 선생님이 아픈 발가락에 직접 쑤시는 주사 치료였어요.
침상 위에서 기다렸다 지쳐 잠들 무렵에 찾아온 다정한 목소리. 살펴본다셨다가 발가락 부위를 소독하자마자 찔리는 주사의 참맛. 사실 저는 소독하는 순간부터 긴장이 시작됐었죠~ 남들에 비해 촉감이 뛰어난 사람인지라 발끝이야말로 세포가 특히 살아있는 부위인지라 발바닥에 때 민다거나 간지럽히면 기겁을 하는데 주사라면 더하면 더 했겠지 덜 하진 않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처럼 발가락 부위만 뻐근하다가 발가락 끝에 전기 통한 듯이 찌릿하더니 발을 떼는 것조차 뻑적지근하게 느껴져서 십 분 정도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어요. '에라 모르겠다.' 평소에는 병원 치료가 끝나자마자 도망치듯이 계산하고 나오기 바빴다면 오늘은 좀 달랐네요. 삼십 분이 지나고 나니 시원한 듯 시린 듯이 민트향의 치약이 퍼지 듯한 기분이 발가락 부근에 퍼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렇다 해서 호전되는 것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움직여지는 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병원을 나왔고, 간사하게도 보이는 건물들 사이로 들어갈만한 곳을 물색하고 있었어요... 웬만해서 쉽사리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집순이인 저는 할머니와 비슷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나온 김에 뭐 하나라도 사 가야지!
밖에 나오면 한 가지 일만 보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가뜩이나 나오기도 힘든데~ 한 두 가지 일은 보통 몰아서 보고 들어가는 편인데요. 발가락이 아프니까 괜히 탈 날까 봐 무서워 걷다가 또 통증이 다시 튀어나올까 봐 걱정이 돼서 버스 기다리는 동안에도 수없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던 매장들 이름과 경로, 가격 등등 정말 그 많던 유혹을 발가락 통증 하나로 모두 물리쳐 버리고서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어김없이 할머니가 생각나더군요.
저희 할머니는 요~ 옷과 패션에 관심이 많은 멋쟁이이자 천생여자랍니다. 여기다 자랑 하나 더 보탠다면 세대를 뛰어넘는 감각과 안목까지 타고난 인물이지요. 그래서 작게 의류 사업을 하실 때도 소량의 옷과 매치 하나로 모두 매진시켜 버렸다는 소문을 종종 들었었는데요. 그 덕을 제가 좀 봤습니다.
옷부터 먹는 것, 소품까지도 상태와 가격 뭣 하나 소홀히 보지 않습니다~ 적정선으로 깎기의 진술도 할머니의 어깨너머로 봤지만 저는 여전히 어려운 고급 기술이죠. 저 같은 사람은 할머니 같은 사람이 제 평생 같이 따라다녀주시면서 모범사례를 보여주고 알려주셨건만 습득해내진 못했죠...
몇 주에서 석 달까지도 고통을 앓으며 견딜 때까지 견디다 못해, 가시던 정형외과에서 다리, 허리 주사를 맞고 나오는 할머니를 부축해 병원을 벗어나면 할머니는 병원 근처에 있는 아울렛으로나 한 달간 필요한 생필품과 기본 먹거리를 구비하러 마트에 같이 가자셨어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신 건지...
나와의 약속이자 우리의 계획된 일정이자 할머니의 유일한 취미 생활이었을지 모를 나와의 데이트. 그랬을 텐데 저는 할머니에게 핀잔을 드리기 바빴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건 뭐 하러 사요~ 할머니~
비슷한 거 집에 이미 있잖아요!
제가 오늘 버스를 기다리는 5분간 수십 번 들었던 생각들 중에 할머니의 용기가 언뜻 나올 뻔했는데, 갓 주사를 맞고 나서 무리를 하면서까지 할 일은 아니라고, 건강을 먼저 생각했던 나에 비해 할머니는 본인의 나이에 비해 건강상태에 비해 충분히 무리가 되는 일이었을 텐데도 나와의 일과와 약속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따라다니셨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깨닫게 됐네요.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도 다리를 절뚝거리며 이끌어 갔던 모습이, 아주 많이 먼 거리는 아니지만 목욕탕에서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의자에 앉아 잠시라도 앉았다 가야 걸을 수 있었던 할머니의 다리 상태가, 손가락에 이어 발가락 관절까지 휘어진 상태 때문에 수술까지 받았던 일들까지... 나는 할머니가 얼마나 아픈 건지 알 수 없었기에 예사로 봤던 통증을 내가 비로소 겪으면서 느껴봅니다. 그 시절 그날의 할머니는 본인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어린 손녀를 위해 이를 악물고 영혼까지 아프게 했던 통증도 견뎌냈다는 걸... 이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면, 어른이라 내색할 수 없이 참아내야만 했던 아픔이었다면,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을지에 대해 감히 이제야 헤아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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