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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Sep 16. 2020

누군가의 장독을 닦아주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집 장독을 씻어주고 닦아주는 일이 꽤 어려운 일인 것을 묵묵히 해준 사람, 이번에 새로 오신 요양 선생님이다.


연세가 80대를 찍으시면서 부쩍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를 보살펴드리고자 내가 신청했던 나라의 쓸모 있던 제도로 감사히 요양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남편 없이 홀로 세상과 싸우며 가족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켜왔던 할머니가 어느새 나보다 약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마음이 너무 아려왔다. 결혼을 준비하게 되면서 몸이 성하지 못한 할머니를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었다. 그나마 남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겠지만, 요양 선생님의 존재는 내게 꽤 큰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내가 누군가를 무조건 그렇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믿고 싶었던 모양이다. 신뢰가 필요한 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로 만난 사이라 할지라도 인간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와 믿음, 신뢰는 깨뜨리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올해 여름 들어서 날씨 예보가 들리면 귀가 쫑긋해진다. 혹여나 태풍 소식이 들릴까 봐 마음이 조려 온다. 멀리 떨어져 지내는 가족들이 먼저 마음에 걸린다. 


20년도 태풍 9호 마이삭, 생각보다 꽤 큰 타격을 컸다. 동해안을 지나간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역시가 역시였다. 그탓에 20년이 넘어서도 끄떡없던 베란다 새시 문이 이상해졌다. 코로나 때문에 밖을 나가지 못하는데 창문마저 시원하게 열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던 중, 업체를 본격적으로 찾아봤다. 


태풍의 피해는 우리 집만의 일이 아니었다. 수해와의 힘든 싸움을 아직 이어가고 있는 분들이 있었던 사실이 떠오르더니 마음속에서부터 일어나던 요동이 숙연해졌다. 다른 집들에서도 태풍 피해로 베란다 유리를, 새시를 수리하고 교체하는 일들이 많아 어렵다는 것이다. 걱정이 앞서던 중 다행히 수리해줄 수 있다는 업체가 있어 모시게 되었다. 


견적 뽑으러 왔을 때 오래된 새시라서 부품이 없어 바로 수리는 들어가지 못하고 다음 날에 오기로 했었다고 한다. 곧 다가올 대공사가 벌어질 예정이었다. 베란다가 묵은 살림의 일부여서 앙증맞은 아기 화분들부터 어른 몸집만 한 큰 화분들까지 모여있는 데다 일반 주택들 못지않은 장독대가 좁은 베란다에 줄줄이 세워 있었다. 


할머니의 고된 인생을 같이 나눴던 간장과 된장, 고추장들... 아파트에서 거듭 실패하다 겨우 살려냈던 장들이 폭삭 썩어있었다고 한다. 할머니를 뵈러 갈 때마다 내내 맘에 걸렸던 일거리, 묵은 장을 처리했었어야 했는데 생각지 못한 자연재해로 급하게 정리해야 될 판이었다. 


그걸 선생님이 나서서 해냈다. 함께 몇십 년을 같이 살고 지낸 나도 못 본 장독의 속내를 봤고, 묵은 장을 건져 버리고 씻어내 주었다. 


  '남의 집의 장독 속을 보는 일은 참 드문 일인데, 그걸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집안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장독만이 알고 있던 고단하고 쓸쓸한 깊은 속내는 낯선 존재인 요양 선생님에게 스스럼없이 보였다. 참 고마우면서도 부끄러웠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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