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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Oct 28. 2020

음식 하다 문득 생각났다

나를 부르던 할머니의 목소리

오후나 저녁에 마지못해 주방에서 쫓기듯이 재료 손질에, 음식 하던 내가 웬일로 오늘은 오전부터 서둘러 반찬 하나를 후다닥 시도해본다. 음식을 하는 건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은 편, 맛을 보장하지 못하는 실험이라 그렇지... 그에 관련된 재료 손질부터 처리과정이 꽤나 귀찮을 때가 종종 있다


엊그제 마트에 들려보니 할인해서 사둔 어묵이 생각나 어묵볶음을 할 예정이었다. 재료는 매우 간단했다. 어묵, 양파, 당근 그리고 조화된 맛을 위한 소금과 식용유 이 정도면 된다. 


후다닥 하고 해치워버릴 마음에 쫓길 필요도 없지만 몸에 베인 습관성 성격으로 서둘러본다. 재료를 손질하는 김에 다른 반찬을 만들 때 용이하라고 자른 후 비닐에, 용기에, 따로 넣어두고 이제야 음식을 시작해본다. 식용유를 팬에 두른 후 재료를 한꺼번에 후드득 담아 주걱으로 살살 아기 달래듯이 손목 스텝을 자유자재로 재껴가며 볶아본다. 볶음요리, 왕년에 좀 했던 건 아니다. 


결혼 전, 할머니와 함께 살던 시절이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돌봐주셨던 할머니의 젊은 날부터 나는 보고 자랐다. 할머니는 혼자서도 척척 뭐든 잘 해내는 슈퍼우먼이었기에 나는 할머니의 그늘 아래 숨어 지냈던 것 같다. 그땐 그게 할머니가 내게 주는 유일한 배려였단 걸 몰랐었다 바보같이...  


팔, 다리 어디 하나 안 아픈 데가 없다고 들었는데도.. 누워서 한 번씩 앓는 소리를 냈는데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뭐든 해내는 할머니의 변함없는 모습에 걱정을 하다가도 안도하며 예전처럼 나편하자 마냥 아이처럼 지내곤 했다. 결혼할 쯤에야 나보다 나를 걱정하던 할머니는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요리에 1도 관심 없어 그나마 라면, 볶음밥, 유부초밥이 내 요리 주특기였다. 이런 나를 걱정했는지 한 번씩 요리학원에 등록해서 재미 삼아 배워봐라며 추천을 해주기도 하고, 요리 프로그램이 텔레비전에서 나오면 불러 같이 보자고 했다. 일하고 지치기 바빴던 그 시절에는 그 귀한 말이 귀찮게도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여기 와서 이것 좀 볶아라~" 이른 아침 할머니는 아기새에게 줄 먹이를 손질하는 어미새처럼 분주하게 주방에서 한참 움직이다가 나를 불렀다. 주말 아침이었기에 좀 더 누워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쉴만하면 가끔 부르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귀 딱지처럼 귀에 붙어 성가실 때가 있곤 했었다.


자발적으로 일어나서 먼저 챙겼어야 했던 것들이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안 하고를 떠나, 할머니가 세월 따라 약해진 모습을 보이기 전에, 스스로 할 수 있을 때 먼저 나섰어야 했다. 이렇게 철없던 시절이 아무 생각 없이 팬에 어묵을 볶다가 갑자기 할머니가 날 부르던 목소리가 떠올랐고 마음이 찡해졌다. 한때 귀찮았던 그 목소리가 얼마나 그리워졌는지 이제야 알아간다. 


마지못해 후다닥 볶아드리곤 할 일 다 끝났다는 듯이 주방에서 빠져나오기 바빴던 내가 좀 더 머물러 도와주길 얼마나 바라셨을까 싶은 마음이, 나만의 주방을 책임져 군림하는 한 가정의 주부가 되어보니 알게 되었다. 할머니께 미안한 마음이 주방 가득 메워졌다. 어묵볶음을 식힌 후 냉장고에 넣은 후 유유히 거실로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며칠간 낮잠을 거절하다 더 이상은 이기지 못할 며칠 동안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드는 바람에 안방 침대에 누워 낮잠을 청해 본다.


#일상 #요리 #가족 #어묵볶음 #할머니 #사랑 #애정 #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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